실화 소설
다음날인 목요일 아침, 마침내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항암 치료를 시작한 지 23일 만이자, 탈모가 시작될 거라고 원석이 알려준 날보다 10일이나 뒤였다.
처음에는 우연 같았다. 이날 아침도 금희는 뜨겁게 적신 수건으로 양의 머리를 닦고 있었다. 히크만 때문에 고개를 숙여 머리를 감거나 목욕을 하기 힘든 양을 위한 금희의 노력이었다.
“엄마, 살살해. 아파.”
“조금만 참아, 이래야 머리에 세균이 안 생겨.”
밤새 땀을 흘린 양의 머리가 걱정돼 깨끗하게 닦으려고 금희가 힘을 준 순간, 양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얏!”
“아파?”
“아프지! 그렇게 세게 하는데 어떻게 안 아파!”
양은 짜증을 내며 따끔한 부분을 손으로 막았다. 어쩐지 느낌이 이상했다.
“에?”
“양아….”
“왜!”
금희가 내민 수건에 짧은 머리카락이 소복이 붙어 있었다.
“아….”
“미안.”
“엄마가, 엄마가! 너무 세게 닦아서 그래! 안 빠질 수도 있었는데! 오늘따라 왜 그랬어! 머리 닦는 내내 얼마나 아팠는지 알아?”
“…미안.”
금희의 잘못이 아니었다. 양도 잘 알았다. 그래도 인정하기가 싫어 자꾸만 눈물이 쏟아졌다.
“탈모는 2주 뒤부터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항암 치료를 시작하며 원석이 말했던 순간, 양은 받아들였다. 그래서 머리를 밀 때도 담담했다. 항암 치료를 받은 지 2주가 지나면서부터는 오히려 머리카락이 빠지기를 기다렸다. 어차피 있어야 할 증상이라면 제때 시작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날이 하루, 이틀 지나자 어쩌면 이대로 아무 일 없이 지나기를 기대하고 말았다.
이날, 양의 과립구는 40. 혈소판 1만 2천, 빈혈 수치도 7.4로 여전히 낮았다.
원인을 모르는 열은 오늘도 이어졌고 목과 발목이 욱신거리는 가운데, 빨간 피와 노란 피를 모두 맞아야 했다.
양이 기운 없이 누워 있는데, 간호사 둘이 들어와 창가 쪽 침대를 소독하기 시작했다. 분무기에 든 알코올을 뿌리고 침대와 탁자를 수건으로 닦는 수준으로 금세 끝났다.
간호사들이 나가고 보니, 어느 틈에 전기 포트가 사라지고 없었다.
“엄마, 여기 누가 오려나 봐.”
“응, 오늘 새로운 환자가 들어온대.”
“아, 엄마는 알고 있었어?”
똑똑똑.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누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네.”
금희가 대답하자 동그란 얼굴이 닮은 중년 부부가 병실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불안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여자와 남자의 손에는 커다란 짐 가방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멀쩡한 머리카락을 봐선 누가 백혈병 환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미자라고 해요. 잘 부탁드립니다.”
“아, 네.”
“그럼, 저흰 이만.”
남편이 꾸벅 인사를 하더니 아내를 뒤따라가 커튼을 쳤다. 곧 짐을 푸는 소리와 말소리가 들렸다.
“여보, 속옷은 여기, 수건은 저기 넣자.”
“알았어.”
“으휴, 자리는 넓은데 짐 넣을 공간이 생각보다 작다. 한 달 정도 걸린다기에 긴 해외여행을 가는 정도로 준비했는데… 여보, 우리 짐을 너무 많이 싼 거 아닐까?”
“그러게 말이야. 이런 일은 처음이라 뭘 알아야 말이지.”
“으휴, 그런데다 하필이면 오늘부터 파업할 건 뭐람!”
“그러게 말이야. 빨간 옷 입은 사람들 수백 명이 모여서 주먹을 흔들고 소리를 지르니 이거 원 여기가 병원인지 어딘지 참… 무시무시하더란 말이지.”
“나도 그랬어, 여보. 치료받는데 문제는 없을까?”
“글쎄… 아무래도 영향이 없을 수는 없을 거야.”
금희와 양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저, 정말로 파업인가요?”
양의 물음에 미자 쪽 커튼이 쫙 열렸다.
“아직 모르셨어요? 오늘 새벽부터 시작됐어요! 6년 만의 총파업이래요. 의사가 항암 치료를 당장 안 받으면 큰일 난다고 해서 들어오긴 했는데 이런 상황이니 너무 걱정돼요. 마음이 불안해서 그런가, 몸도 더 아프다니까요?”
“아….”
“알아보고 올게.”
말을 마친 금희는 서둘러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