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소설
항암 4주 차. 후폭풍은 죄다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병실을 옮긴 지 이틀째, 양의 과립구는 21.
2인실이 병과의 전쟁까지 막지는 못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높은 열과 찢어지듯 아픈 목, 디딜 때마다 비명이 절로 나오는 발목은 모두 그대로였다.
그래도 사람과의 싸움은 일단 멈추었다.
2인실은 분위기부터 사뭇 달랐다.
무엇보다 자리가 널찍해서 다툴 필요가 없었다.
드나드는 간호사 팀도 바뀌었다. 새로운 간호사들은 양을 방해하지 않으려 조심했다.
6인실에서는 누군가 늘 한 사람은 아팠고 그래서 앓는 소리와 바쁘게 오가는 온갖 기계음과 의료진과 보호자의 말과 움직임 속에 다른 환자에 대한 배려를 기대하기 힘들었다면, 여기는 아예 간호사가 잘 안 왔다. 원석도.
어쩌면 이 방에 다른 환자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창가 쪽 침대는 어제 양이 왔을 때부터 줄곧 비어 있었다. 탁자 위에 놓인 전기 포트로 봐서, 빈자리는 아니었다.
무슨 일이지? 양은 궁금하지만 참았다. 사람에 시달린 뒤라 지금은 이대로 충분히 좋았다.
금희가 자리를 비우면 양은 오롯이 혼자였다. 그러면 잠시나마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저녁에 금희가 나간 사이, 양은 절뚝거리며 창가로 갔다.
어둠이 내린 병원을 조용히 내려다보던 양은 가슴으로 떨어지는 눈물을 느끼고서야 자신이 울고 있음을 알았다.
바보 같이… 얼마 만에 찾은 평화인데, 이 좋은 밤에 왜 이러지? 마음을 추스르려 고개를 돌리다 양은 보았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존재감이 뚜렷한 암센터와 바로 옆에서 빨간 빛을 내뿜는 장례식장 간판.
부르르, 몸이 떨렸다. 추웠다.
창가에 머무른 지 5분 남짓. 이 정도도 무리였던가. 양은 아픈 다리를 끌며 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침대에 누워서 두꺼운 이불까지 끌어다 덮었는데도 몸은 점점 더 떨렸다. 양이 금희에게 전화했을 때는, 너무 추은 나머지 이가 딱딱 마주쳐서 말이 제대로 안 나오는 상태였다.
“어, 엄마! 어, 어디, 야! 나, 나 지금… 빨, 빨…리 좀!”
“양아! 무슨 일이야! 엄마, 지금 가! 가고 있어!”
금희는 날듯이 뛰었다. 드디어 병실에 도착해서 문을 열자 억지로 웃는 양의 일그러진 얼굴이 보였다. 이불 아래의 몸은 제멋대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금희는 곧바로 비상벨을 눌렀다. 간호사들이 달려와 혈압기를 팔에 둘렀지만 몸이 계속 들썩이는 바람에 소용이 없었다.
딱딱딱딱딱딱. 양의 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금희의 심장을 때렸다. 간호사들도 긴장한 표정으로 빠르게 말을 주고받았다.
“안 되겠어! 손으로 재!”
“맥박이 너무 빨라요!”
“신경안정제! 빨리!”
“네!”
주사가 들어가자 차츰 몸의 떨림이 멈췄다. 혈압도 곧 정상으로 잡혔다. 간호사들은 침착하게 자리로 돌아갔다.
“엄마, 미안… 놀랐지?”
“가슴이 철렁했어! 다음부턴 무슨 일이 생기면 나한테 전화하지 말고 비상벨을 눌러! 내가 어디에 있을 줄 알고! 어디든 오는데 시간이 걸리잖아! 1초가 급한데!”
“응. 앞으론 그럴게.”
“창가에도 다시는 가지 말고.”
“응.”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죽음은 여기에 있었다. 양의 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