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옳았다 17화

실화 소설

by 홍유진

이날 밤, 양의 맞은편 환자가 열이 오르며 기침을 했다. 간호사들이 X-ray 기계를 몰고 와 찍고 밤새 살피며 오가느라 금희를 포함한 온 병실의 사람들이 잠을 설쳤지만, 양은 세상모르고 잤다. 균 검사 후 간호사가 가져다 준 해열제 덕분이기도 했고, 월요일에 동네 내과를 방문하면서부터 시작된 일들의 무게가 양의 의식을 통째로 집어삼켰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음날인 일요일. 이른 아침, 원석은 양의 앞에 다시 나타났다. 맛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는 병원식을 양이 반도 못 먹고 내놓은 직후였다.


“잘 잤어요?”


“네.”


“얼굴을 보니, 정말로 잘 잔 것 같군요. 아, 이런. 그것보다 골수 검사 결과가 중요한데, 그제 응급실에서 했죠? 이삼 일 정도면 기본 결과가 나오니까 곧 치료 방향이 정해질 겁니다. 하양 씨의 경우는 지역 내과에서 만성골수백혈병으로 결과가 나왔으니,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겁니다. 만성은 보통, 먹는 약으로 치료해요. 사오 일 정도 지나야 나오는 골수 조직 검사 결과에서 나쁜 암세포의 비율이 20퍼센트만 안 넘으면, 아마 집에 갈 수 있을 겁니다. 다행히 만성은 20퍼센트가 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20퍼센트를 넘는지 아닌지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만약에 21퍼센트면요? 1퍼센트의 차이로 치료법이 완전히 달라지면 억울하잖아요?”


“어쩔 수 없어요. 그 1퍼센트의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겁니다.”


“아… 네.”


“그럼 쉬고 있어요. 이따가 교수님께서 회진 돌 때 다시 올게요.”


“네.”


이 병동의 의사들은 일요일에도 안 쉬나? 심해의 회진이 있으리란 말에 양은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1시간 뒤에, 회진이 있었다. 진료실에서 받았던 첫인상과 달리 다부져 보이는 심해가 뒤에 원석을 세운 채 양에게 물었다.


“하, 양 씨? 오늘은 좀 어떤가요?”


“어제 열이 좀 났는데, 해열제를 먹었더니 내렸어요. 그거 말고는 괜찮습니다.”


“양호합니다. 골수 검사 결과를 기다려 보지요.”


“네, 감사합니다.”


다른 환자에게 가기 위해 심해가 돌아서자, 진지한 표정으로 서 있던 원석이 양에게 눈을 찡긋하더니 얼른 뒤따라갔다. 금희는 심해에게 인사하기 위해 허리를 굽히느라 원석의 윙크를 보지 못했다. 양은 원석이 지금까지 만난 의사들과는 정말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금희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엄마, 골수 검사 결과가 다 나오려면 4일에서 5일은 걸린다니까, 앞으로도 며칠은 더 여기에 있어야 하나 봐. 집에 가서 내가 읽던 책하고 일기장 좀 가져다주세요. 책상 위에 있어요.”


“그래, 아버지께 말할게.”


“그리고… 책상 옆 프린터기 안에 든 종이 사이를 보면 제 예금 통장이 있으니, 엄마가 보관해 주세요.”


“그걸 왜 나한테 맡겨. 난 싫어.”


“엄마, 다른 뜻은 아니야. 아직 결과를 봐야 안다잖아요, 일단 이번에 치료비도 꽤 나올 텐데, 그걸로 내세요. 내가 가지러 갈 수가 없어서 그래요.”


“그래도 난 싫어. 이번 치료비는 엄마, 아버지가 알아서 해. 그러니 쓸데없는 소리 마.”


“그럼 통장이 거기에 있다고만 알고 계세요. 내가 잊어버릴까 봐.”


“알았어.”


금희는 19%와 21%의 운명을 가르는 20%라는 의학적 잣대에 의문을 품고 양과 이야기를 나누다, 수상과 늦은 아침을 먹기 위해 나갔다. 응급실처럼 격리 병동에서도 보호자는 1명만 머물 수 있었기 때문에 주로 금희가 안에 있고 수상은 대한대학교병원 근처인 양의 옥탑방과 111병동 바깥의 휴게실을 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