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옳았다 19화

실화 소설

by 홍유진

9월의 마지막 날. 골수 검사를 한 지 4일째 되는 날 아침, 아침도 먹기 전에 원석이 찾아왔다.


“결과가 만성으로 나왔어요! 이제 마의 20퍼센트만 안 넘으면 집에 갈 수 있어요! 아마, 그럴 겁니다. 그럼 이따가 또 봅시다.”


하지만 점심 무렵 회진을 온 심해의 얼굴은, 뒤에서 싱긋거리는 원석과 달리 어제와 같았다.


“하, 양 씨? 오늘은 좀 어떤가요?”


“괜찮습니다.”


“골수 검사 결과가 만성으로 나와서, 오늘 아침부터 약을 글리벡으로 바꾸었습니다. 문제없이 잘 먹었나요?”


“네.”


“글리벡의 부작용으로 구역질이나 설사, 근육통 등이 흔하게 나타납니다. 8알이면 좀 고용량인데, 괜찮은지요?”


“아… 다른 사람들은 보통 몇 알을 먹나요?”


“4알에서 8알까지 처방합니다.”


“제가 양이 좀 많은 편이네요? 그래도 전, 아직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양호합니다. 힘을 내세요.”


“네, 감사합니다.”


오후에는 산부인과 진료가 있었다.


“졸라덱스가 난소를 잘 잠재웠는지 확인하는 겁니다.”


원석의 설명대로였다. 산부인과 의사는 양의 속살을 비집고 들어간 카메라를 통해 난소의 상태와 주사의 효과를 확인했고, 결과에 만족스러워하며 피임약이라는 안전장치를 추가로 처방했다. 백혈병은 골수 검사와 수혈처럼 양에게 첫 경험을 잔뜩 만들어 주었는데, 피임약 역시 마찬가지였다. 평생 처음으로 먹는 피임약이 남자 때문이 아닐 줄은 상상도 못했어. 양은 쓴웃음을 지었다.


양이 숨쉬기가 힘들어진 건 산부인과를 다녀온 뒤부터였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자꾸만 숨이 찼다. 증상을 들은 간호사는 모니터가 달린 기계를 양의 엄지손가락에 연결하더니 원석에게 전화로 수치를 보고했다. 잠시 뒤, 간호사는 작은 물통 세트를 들고 돌아왔다.


“하양 님, 산소 호흡기예요. 이 통에 깨끗한 물을 넣고 콘센트에 꽂은 다음에 이 줄을 목에 걸고 코에 끼우면 되세요.”


“산소… 호흡기요?”


“네.”


“간호사님, 우리 애한테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일시적으로 산소 포화도가 떨어져서 그래요. 이걸 하고 계시면 괜찮아지실 거예요. 대신 잘 때도 하고 계셔야 해요.”


이날 밤 11시가 넘을 무렵, 세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몸은 좀 괜찮아? 입원한 병원이 어딘지 알려 줘. 면회 갈게.”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양은 한참을 고민했다.


“세하야, 여기… 면회가 안 돼. 어쩌면 곧 퇴원할 수도 있으니 마음만 받을게. 고마워.”


“응? 면회가 안 된다고? 심각한 건 아니지? 별일이 아니길 바랄게.”


“응…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양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 뜬눈으로 격리 병동의 밤을 맞았다. 어둠 너머로 흐린 불빛이 커튼에 어른거리는 가운데, 맞은편에서 젊은 여자가 앓는 소리와 속이 타서 간호사실과 환자를 오가는 보호자의 종종걸음 소리가 들렸고, 또 다른 누군가 훌쩍이는 소리가 구석에서 눈치 보듯 새어 나왔다.


양은 자신이 완전히 다른 세계에 들어섰음을, 아파서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해 그동안 지나치게 무심하게 살아왔음을 문득 깨달았다. 이제는 이곳을 벗어나더라도 지금까지의 삶과는 같을 수 없으리란 예감이 들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양은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고 믿었다. 강한 의지가 있다면 아무리 어려운 길이라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믿었기에, 몸을 변명거리로 삼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은 정신력의 문제가 아닌가. 사람은 쉽게 죽지 않아! 양은 그런 가치관을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 증명하고자 몸이 보내는 신호들을 엄격하게 다스렸고, 젊은 나이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많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다 올 것이 온 거야. 이건 몸의 자살 시도나 다름없어. 암도 결국은 우리 몸이 만들어낸 세포가 아닌가. 비로소 성찰의 시간이 찾아왔다.


맨 처음 머리를 스친 건 술이었다. 양은 술을 즐겨 마셨다. 한국 사회에서 술은, 단순한 기호품을 넘어선 사회적인 매개체였다. 타인과 어울리기에 술자리보다 좋은 곳은 없었다. 대학 시절엔 친구들과 새벽까지 자유롭게 술잔을 기울이면서 서로의 고민과 진심을 나눌 수 있었고, 사회생활에 뛰어들면서는 짧은 시간에 되도록 많이 오가는 술잔의 끝에 상대로부터 필요한 정도의 신뢰와 협력을 얻어낼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벌써 10년이 넘도록 몸에 딱히 좋을 게 없는 술을 들이부은 셈이었다. 술이 담배처럼 위험한 1급 발암 물질이란 기사들이 심심찮게 나왔지만 설마설마했다. 세계보건기구(WHO)나 국제암연구소(IARC), 대한간암학회(KLCA)에서 아무리 떠든들 담배에 하듯 국가가 나서서 끔찍한 사진을 붙이진 않잖아. 그래서 양은 가끔 퇴근한 뒤에 혼자 캔 맥주를 마시며 머리를 식히기도 했다, 남들처럼.


그러면서 식사에는 소홀했다. 양은 재단 사람들과 함께 먹는 점심 외에는 삼각 김밥이나 컵라면, 샌드위치나 도시락으로 간단히 때우는 경우가 잦았다. 아침은 출근 시간에 쫓겨 자연스레 굶을 때가 많았고 저녁엔 간단하고 편리하다는 이유가 컸지만, 솔직히 경제적인 사정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월급에서 매달 집세에 전기세, 가스비, 통신비처럼 고정적으로 나가는 비용을 빼고 나면 양이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빠듯했다. 그런 양에게 혼자 먹는 밥값은 생활비에서 가장 크게 차지하는 부분이자 줄이기 쉬운 사치였다.


더구나 자신의 몸에 한국식 밥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에, 나물과 국이 어우러진 한 끼를 갖추어 먹는 일은 드물었다. 과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혼자 사는 사람이 꾸준히 챙겨 먹기에 과일은 지나치게 비쌌다.


그런데도 즐겨한 운동이라고는 숨쉬기가 전부였다. 출근하고 퇴근할 때 지하철을 타기 위해 걷는 시간, 하루에 30분에서 1시간. 그 정도면 충분하다 여겼다. 젊으니까 몸을 어떻게 다뤄도 괜찮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였던가.


백혈병은, 청춘의 자만에 빠져 몸을 돌보지 않은 죄의 대가였다. 이제 여기서 나가면 앞으로는 생활을 완전히 바꿔야지. 양은 새로운 다짐들로 뒤척이다 새벽 4시쯤 겨우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