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소설
항암 3주 차.
후폭풍은 거침없이 다가왔다.
이틀 동안 양의 면역력은 곤두박질쳤다. 1천대이던 과립구가 403으로 줄더니 목요일에는 251로 낮아졌다. 항암 치료를 시작한 지 16일만이었다.
그사이, 투표율 90.3%, 찬성 94%로 파업이 통과됐다. 노조는 일주일 뒤인 23일까지 최대한 대화를 시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장이 꼼수를 쓰며 숨바꼭질을 계속한다면 노조원 1천 5백여 명 중에서 응급실과 중환자실에 배치된 필수 유지 인력만 두고 24일 오전 5시부터 대규모 총파업에 들어가겠다고 예고했다.
노조의 요구사항은 의사 성과급제와 선택 진료제의 폐지를 비롯한 의료 공공성 강화, 호텔 매입 철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통한 인력 충원, 임금의 13.7% 인상 등이었다.
병실에도 변화가 있었다. 5호 원희의 퇴원이었다.
그림 모녀가 있던 자리에는 80대의 늙은 자매가 들어왔다. 양처럼 응급실에서 6인실로 바로 들어왔다는 얘기가 돌았지만 확실치는 않았다. 남들이 뭐라고 묻든 새로운 5호 채송화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다만 오른쪽 눈두덩을 넘어 이마까지 뒤덮은 시커먼 멍이 뭔가 예사롭지 않은 일이 있었음을 보여 주었다.
송화는 커튼을 활짝 열어 놓은 채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도 아닌 듯도 했다.
가족도 없이… 저렇게 아픈 노인을 혼자 둬도 되는 걸까?
친정 엄마를 닮은 모습에 금희는 자꾸만 눈길이 갔다. 그러다 송화와 눈이 마주쳤고, 금희는 멋쩍게 웃었다. 이때 갑자기 송화가 힘없는 손짓으로 금희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가자 송화는 자신의 얼굴 근처로 더 가까이 오라며 손짓했다. 목소리가 잘 안 나오는 듯했다.
송화는 금희에게만 들릴 정도로 겨우 입술을 달싹거렸다. 금희는 고개를 끄덕이곤 양의 자리로 와서 종이컵에 물을 따르더니 다시 돌아가 송화의 입에 대 주었다. 1잔을 더 마시고서야 송화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중에 금희가 송화를 대신해 양에게 말해 주었다.
“충청도의 종갓집에 시집 온 중국 동포시래. 남편이 돌아가시자 하나뿐인 딸은 미국인하고 결혼해서 떠나 버리고 혼자서 쓸쓸하게 종갓집을 지키다가 한밤중에 쓰러져서 실려 오셨대. 조카며느리가 간병하러 곧 온다는데 그때까지는 엄마가 좀 도와드려야 할 것 같아. 괜찮지?”
안 괜찮아.
마음속 말을 꾹 누르고 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희는 사연을 들은 일요일 오후부터 복수를 틈틈이 챙기고 있었다. 양의 밥을 받아 준 뒤, 밥그릇을 열어 보지도 않는 복수의 옆으로 가 숟가락에 반찬을 얹고 따듯한 말을 건네며 식사를 도와주었다. 거기다 5호 할머니까지?
밥도 잘 먹고 상태가 좋다고는 해도 나는 말기 판정을 받은 암 환자야!
뭔가 억울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이해해야 했다. 속 좁게 굴지 말자. 내가 엄마라도 당연히 6호 언니와 5호 할머니를 도왔을 거야.
그래도 마음 한편엔 서운함이 남았다. 엄마가 지금의 내 상황이라면 선뜻 도와주라고 했을까? 양은 금희가 그런 생각을 해 보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