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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Sep 01. 2021

웰컴 투 항암월드 29화

실화 소설

  하루가 다르게 병실 곳곳이 전쟁터로 변하고 있었다.


  혼자는 계속해서 배가 아프다며 원석을 불러 댔고, 복수는 하루 종일 토하느라 기운이 빠져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다.


  양보다 며칠 먼저 항암 치료를 시작한 연두는 4일째 열이 40도 가까이 오르면서 각종 검사를 받느라 비상이 걸렸다. 면역력이 0으로 떨어져 침대 밖으로 나가기 힘든 연두를 위해 X-ray 기계와 각종 검사 장치들이 밤새 병실을 들락거렸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얕은 잠에 들었던 양은 새벽 3시쯤, 복도를 울리는 고함 소리에 놀라서 깼다. 연두의 아버지, 기대의 목소리였다.


  “이 개새끼야, 네 딸이라면 그럴 수 있어? 열이 펄펄 끓는데 온갖 검사를 다 시켜 놓고 의사라는 놈들이 자빠져 자냐? 이 씨팔놈아! 너, 이 새끼, 당장 안 튀어 오면 내 손에 뒤질 줄 알아!”


  으르렁거리는 기대의 입에서 쏟아지는 쌍욕이 누군가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휘둘렀다. 놀란 간호사들이 뜯어말리는 소리가 들리고 분을 삭이지 못한 기대가 간호사 데스크에 발길질을 하며 식식거렸다.


  잠시 뒤 부스스한 얼굴의 당직 의사가 달려와 연두를 살피면서, 그제야 기대는 멈추었다. 복도는 아무 일도 없었듯 조용해졌다. 양은 땀에 젖은 환자복을 갈아입고 누웠지만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새벽 6시. 졸린 상태로 양이 채혈을 당하는데, 원석이 처음 보는 의사와 함께 들어와 송화의 침대 앞에 섰다. 원석만큼이나 젊어 보이는 의사는 송화를 쳐다보며 자기의 말소리가 들리느냐고 물은 뒤, 큰소리로 말했다.


  “환자 분! 48시간 남았습니다! 준비하세요! 보호자가 아무도 없어요? 큰일이네.”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그대로 몸을 돌려서 휘적휘적 걸어 나갔다. 원석이 움찔 놀라며 얼른 그를 뒤따라갔다. 의사는 병실 문 앞에 서서 얼굴을 찌푸리며 원석에게 말했다.


  “48시간 안에 오줌이 안 나오면 죽습니다. 백혈병이 뇌까지 침투해서 가망이 없어요. 보호자가 필요하니 누구라도 부르세요. 간호사한테 지시하면 됩니다. 그럼 전 바빠서 이만.”


  잠시 송화를 돌아보며 멈칫거리던 원석의 발목을 혼자가 재빨리 붙들었다.


  “하이고, 선생님! 선생님… 저 좀 봐 주세요! 나 죽는다, 아야, 아야, 아야.”


  “하아. 그러게 제가 어제 요구르트 제품은 안 먹는 게 좋겠다고 보호자 분께 말씀드렸습니다만, 배가 아프면서도 결국 드셨군요!”


  “안 먹는 게 좋겠다고 하셨지, 먹으면 안 된다고 하지는 않았다면서요… 하이고, 나 죽는다. 아야, 아야, 아야, 아야, 아야.”


  “어디가 아픈지 손으로 짚어 보십시오.”


  “여기요오.”


  “여기요?”


  “하이고오오오오오… 거기요, 거기! 나 죽는다. 아야, 아야, 아야.”


  “아, 이런! 일단 검사를 좀 해 봐야겠습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꼭 음식을 가리십시오! 병원에서 나오는 것들 외에는 하아, 제발! 아무것도 드시지 마십시오!”


  옆에서 듣던 양도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지혼자 할머니는 왜 자꾸 저러지? 4호나 5호 할머니, 6호 언니처럼 정말 심각한 사람들 앞에서… 자칭 의사라면서 몸에 해로운 행동만 하고.


  혼자는 요즘 낮에 자고 밤에 깨어 있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밤새 동생과 떠드느라 낮에는 피곤해서 곯아떨어진다는 말이 더 맞지만. 과일을 깎아 먹고 과자를 나눠 먹고 컵라면에 치즈를 곁들여 온갖 수다를 떨면서 쓰레기는 그대로 내버려 뒀다. 111병동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격리 병동인 이곳은 독립적인 공기 관리 시스템을 통해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며, 침대마다 하나씩 천장에 설치된 필터를 통해 깨끗하게 거른 공기만 내려보냈다. 백혈병에 걸리면 면역력에 문제가 생기고, 치료 과정에서도 몸의 면역력을 완전히 없앴다가 다시 회복시키는 강한 항암 치료를 받아 감염이 잘 되기 때문이다.


  백혈병 환자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아주 약한 세균으로도 폐렴에 걸릴 수 있다. 원석의 표현대로면, 면역력이 0이 된 상태에서는 균이 옆을 스치기만 해도 죽을 수가 있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이 안에서 보호자나 간병인은 무엇도 먹어서는 안 됐다.


  혼자와 동생은 지난 6년 동안 격리 병동을 자주 들락거려서 이곳에서 지켜야 하는 규칙과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깡그리 무시했다. 시끄러운 수다는 기본이고 썩어가는 과일 껍질에, 먹다 남은 과자 봉지, 국물이 담긴 컵라면을 뚜껑도 안 닫고 그대로 놓아두었다. 그러다 보니 이젠 병실에 하루살이까지 날아드는 지경이었다.


  그렇게 뒀다가 다시 먹으니… 양이 보기에, 혼자의 배는 아플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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