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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Sep 06. 2021

웰컴 투 항암월드 31화

실화 소설

  점심을 먹고 나자 피 검사 결과가 나왔다.


  과립구는 221로 어제와 별 차이가 없었지만 혈소판이 또 2만 아래로 떨어져 노란 피를 맞아야 했다. 


  복수는 1차 항암 치료 때 혈소판이 연결된 주삿바늘을 꽂자마자 쇼크가 와서 기절했었다며 다 맞을 동안 안전하게 침대에 머무르라고 금희를 통해 조언해 줬다. 양이 잔뜩 긴장한 상태로 노란 피를 맞고 있는데, 원석이 병실로 들어왔다.


  원석은 송화에게 다가가 꾸벅 인사를 하더니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채송화 씨, 지금 따님이 미국에서 오고 있습니다! 조금 전, 비행기 표를 끊었어요! 사는 지역에서 한국으로 바로 연결되는 비행기가 없어서 비행기를 타고 큰 공항으로 가서 다시 한국행 비행기로 갈아타고 와야 해서 언제 도착할지는 확실치가 않습니다. 그러니까, 따님이 오실 때까지 온힘을 다해서 버티셔야 합니다! 아셨죠? 저도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리겠습니다.”


  “어… 어떻게?”


  송화가 쉰 목소리로 힘겹게 물었다. 듣고도 못 믿겠는지 두 눈이 깜빡거렸다.


  “보호자 연락처에 있는 조카며느님께 따님의 미국 전화번호를 물어봤습니다. 채송화 씨가 꼭 만나고 싶으실 것 같았습니다. 갑자기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면 따님이 너무 놀라실 것 같아서 제가 직접 찬찬히 설명을 드렸습니다.”


  송화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멍든 눈에 눈물이 고여 반짝거렸다. 


  “참, 조카며느님도 곧 오시기로 했습니다. 아무래도 혼자 계시기는 힘드실 겁니다. 바로 옆에서 도와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어제 오려고 했는데, 어린 아기가 아파서 출발이 늦어졌다고 하시더군요. 늦어도 오늘 저녁까지는 도착하실 겁니다. 따님이 오기 전까지 옆에 계시기로 했습니다.”


  “의사 양반… 고마워요.”


  “의사로서 제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그러니 채송화 씨도 계속 힘내 주십시오! 무엇보다 따님을 보겠다는 채송화 씨의 의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환자의 굳센 마음은 의사의 예측을 틀리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내 딸이… 꿈에 그리던 아이가 날아오고 있다! 송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석은 깊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연두에게로 갔다. 원석을 맞는 연두의 밝은 목소리가 울렸다.


  “선생님! 오셨어요?”


  “이연두 씨, 오늘 몸무게가 55킬로그램을 찍었던데요? 드디어 제가 바라던 몸무게가 됐습니다!”


  “쉿! 선생님, 목소리가 너무 커요! 힝! 제 키에 이 정도 몸무게면 돼지란 말이에요!”


  “누가 그럽니까? 딱 보기 좋아요! 처음 왔을 때는 너무 말라서 사람 같지 않았습니다만.”


  “너무해요, 힝.”


  “이 정도 몸이면 항암 치료를 잘 이겨낼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은 다른 건 생각하지 말아요. 다시 건강해지는 거, 그게 목푭니다. 알겠죠?”


  “네!”


  4호를 나온 원석은 혼자에게 들렀다. 


  “지혼자 씨, 배는 좀 어떠세요?”


  “하이고, 선생님! 갈수록 더 아파요오. 아야, 아야, 아야. 나 죽는다아.”


  “오전에 사진을 찍었으니 곧 결과가 나올 겁니다. 힘드시겠지만 조금만 참으세요. 비장이 워낙 커져서 그동안 계속 크기를 확인하고 있었습니다만, 아무래도 더 이상 두면 위험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검사 결과에 따라서 결국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이고, 반대로 교수님이 계셨으면… 반 교수는 귀국했나요오?”


  “미국 학회 일정이 아직 며칠 더 남으셨습니다.” 


  “하이고. 내가 이렇게나 아픈데 이번 주 내내 회진도 안 오다니… 아들 친구가 아무리 유명하고 잘난 의사라도 소용이 없구나아. 아플 때 옆에 있어야 좋은 의사지. 아야, 아야, 아야.”


  “미국에 계셔도 실시간으로 문자와 이메일, 전화로 모두 보고받고 지시하고 계셔서 지혼자 씨의 증상이나 변화를 다 알고 계십니다. 저희는 내과라서, 비장 수술은 외과 의사들이 진행하기 때문에 반대로 교수님께서 계셔도 직접 수술을 하시는 건 아닙니다. 결과가 나오면 바로 교수님과 상의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이고, 하이고.”


  2호를 나온 원석은 손을 흔들며 양에게로 걸어왔다.


  “하양 씨, 오늘은 책 안 읽어요?”


  “네. 조금 긴장돼서요. 함복수 언니의 말씀이, 처음에 혈소판을 맞았을 때 노란 피가 팔로 들어가자마자 쇼크가 와서 쓰러지셨대요. 그래서 꼭 침대에 기대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으라고 하더라고요. 전 다행히 정신은 멀쩡한데 얼굴이 좀 화끈거리는 거 같아요.”


  “보기에도 좀 울긋불긋한데요?”


  “앗. 정말요? 거울이 어디 있지?”


  “여기에 있군요?”


  원석이 웃으며 양 발치의 거울을 들어 건네주었다. 


  “그런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음부턴 혈소판을 놓기 전에 예민 반응을 줄여 주는 약을 먼저 놓으라고 하겠습니다. 후끈거림이 좀 나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채송화 할머니의 일도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제 코가 석자니까 남을 걱정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마음이 많이 쓰였거든요… 따님이 오고 계시다니 정말 잘됐어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선생님!”


  “하양 씨처럼… 내가 힘들 때 다른 사람까지 배려하는 사람은 드물죠. 저도 제 마음을 따랐습니다. 따님을 꼭 만나게 해 드리고 싶었거든요. 제가 채송화 씨의 아들이라면 어머니를 못 보면 평생 후회로 남을 것 같았습니다. 근데 이렇게 하양 씨의 칭찬까지 받으니 기분이 좋은데요? 전화기가 뜨겁도록 붙들고 있길 잘했군요? 시차 탓인지 전화를 안 받아서 오전 내내 걸어댔습니다만.”


  “아하. 그런데 병원에서 국제 전화로 그렇게 오래 통화해도 괜찮으세요? 선생님께 통화료 청구서가 어마어마하게 날아오고 그러는 건 아니겠죠? 하하.”


  “안 그래도 원무과의 잔소리에 귀가 따가울 것 같아서 아예 제 개인 휴대폰으로 했습니다만. 하양 씨의 말을 들으니 이번 달의 전화 요금이 벌써부터 걱정되네요. 아, 이런! 간호사들이 또 엉뚱한 짓을 했다며 사차원이라고 놀리겠는데요?”


  “괜찮아요, 선생님. 이번엔 멋진! 사차원이세요!”


  원석과 양은 함께 웃었다. 그러다 원석이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물어볼 게 있습니다.”


  “저한테요?”


  “네. 중요한 질문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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