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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Sep 10. 2021

웰컴 투 항암월드 33화

실화 소설

  양과 금희가 각자 생각에 잠긴 사이, 노란 피의 수혈이 끝났다.


  이때 낯익은 얼굴이 병실로 들어왔다. 연두의 엄마였다.


  오늘은 금요일인데? 병원 근처에 일이 있어서 들르셨나? 양은 고개를 갸웃했다.


  연두의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 왔다. 보통은 주말에 왔는데, 병원에 머무는 기대를 대신해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지방을 오가며 작은 사업을 하던 기대는 연두가 쓰러지자 일을 접고 딸 옆을 지켰다.


  “엄마!”


  “연두야!”


  반갑게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에 이어 안부를 묻는 인사가 오가고 곧 말소리가 도란도란 들렸다. 


  “차라리 잘됐다, 연두야. 그런 놈은 어차피 살다 보면 돌아선다?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응, 엄마.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 그래. 불쌍한 내 새끼. 내 마음이 이런 데 넌 오죽하겠니?”


  “아니야, 엄마. 나 정말 괜찮아.”


  “아후, 아후! 이것아, 괜찮기는! 으흐흑. 배 서방이 그럴 줄 누가 알았겠니? 그런 놈을 매형이라고 불렀다며 연하가 울고불고 난리다. 그런 놈은 사람들 앞에서 먼지 나게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면서 흠씬 패 주려고 했더니 전화도 안 받고 피한다고 열불이 나서 하루 종일 씩씩거려. 저러다 뭔 일을 내지 싶어 걱정이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니? 바깥사돈이랑 안사돈… 아니, 그 자식의 부모란 인간들까지 결혼을 깨자며 너희 신혼집의 전세금까지 빼 버렸는데! 신남이 그놈도 지가 맞아 죽고도 남을 짓을 한 건 아는지, 우리가 찾아갈까 무서워서 그런지 그놈의 새끼가 휴가를 내고 회사에도 안 나온단다. 사는 집도 쥐새끼 한 마리가 없을 정도로 조용해. 아주 작정을 하고 다들 어디로 날랐나 봐. 아후! 아빠도 배신감이 엄청나. 배 서방이 그럴 줄은 몰랐다고….”


  “…….”


  “아휴, 내가 지금 뭐하는 거니? 네 속이, 속이 아닐 텐데… 다 잊어버리자, 연두야. 사람이 오래 같이 살다 보면 정말 온갖 일이 다 생긴다? 너는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어디 인생이 늘 좋은 날만 있겠니? 흐린 날, 궂은 날, 바람 부는 날이 오히려 더 많아. 솔직히, 네 아빠의 뒤통수를 한 대 탁 아프게 때려 주고 싶을 만큼 얄미울 때도 많다? 부부가 된다는 건, 그 모든 날을 함께하겠다는 약속인 거야. 그러니 지금 돌아설 놈이면 결혼을 하더라도 언젠가는 떠날 놈인 거야. 살다가 신남이 지가 지금 너처럼 아플 수도 있는 거다? 두고 봐라, 틀림없어! 남의 눈에 눈물 내면 제 눈엔 피눈물이 흐를 걸?”


  그랬구나, 그래서 주치의가… 그런 말을 했구나. 이해가 가는 양이었다.     


  똑똑똑… 양은 한 방울씩 끊임없이 떨어지는 수액을 바라봤다. 그러자 복잡하던 마음이 차츰 고요해졌다.     






  어느새 잠이 든 양을 깨운 건, 다급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발소리였다. 혼자의 침대에 원석과 손전등 간호사가 와 있었다. 검사 결과가 나온 모양이었다.


  “지혼자 씨, 지혼자 씨. 제 말 들리세요? 아, 이런! 보호자께서 얼른 깨워 보세요.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언니, 언니! 일어나 보슈!”


  “아……야. 왜들 호들갑이야?”


  “지혼자 씨,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비장 비대로 인한 통증이 맞았습니다. 문제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상태라는 겁니다! 지혼자 씨는 연세가 많아서 장기의 탄력성이 떨어진 상태라 이 정도의 크기로도 비장이 터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교수님께 보고를 드렸더니 외과와 협의해서 비장을 줄이는 수술을 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내일 아침으로 수술을 잡았으니 지금부터 그때까지 철저하게 금식하셔야 합니다. 절대로, 물 한 모금도 드시면 안 됩니다!”


  “수술…? 하이고… 그러게 내가 뭐랬어? 아프다고, 죽는다고 했는데 귓등으로 넘기고 제대로 들은 척도 안 하더니만. 하이고, 나 죽는다, 아야, 아야, 아야. 야, 숙자야. 애들 불러라. 엄마가 다 죽어간다고 빨리 좀 와 보라고 해, 응?”


  “알았수, 언니.”


  “특히 둘만이! 둘만이 친구인 반대로 교수도 자리에 없는데 대수술을 한다니, 이게 웬 말이냐? 새파랗게 젊고 경험도 없는 주치의 나부랭이의 손에 이 병원 후원자인 나를 맡기다니, 이게 될 법한 소리냐고 둘만이한테 당장 전화해!”


  “지혼자 씨, 수술은 반대로 교수님의 지시 사항입니다. 검사 결과로 나온 모든 수치 변화와 영상까지 다 교수님께 보내드렸고 꼼꼼히 살펴보시고 결정하셨습니다. 그리고 비장 수술은 외과의 영역이라 저희 내과는 반대로 교수님께서 여기에 계신다 해도 직접 수술하진 않습니다. 저도 지혼자 씨가 걱정돼서 외과에 부탁해 수술실에는 함께 들어가기로 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야야, 숙자야. 둘만이 불러. 반 교수랑, 병원에 얘기해서 제일 좋은 외과 의사로 배정해 달라는 전화 넣으라고 말이야!”


  “알겠수!”


  “금식! 지키셔야 합니다. 수술이 미뤄지면 비장에서 출혈이 일어나 손쓰기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숙자야! 의사 선생, 가신단다. 인사해라.”


  “하아. 그럼 다시 오겠습니다.”


  다시 누으려는 양의 눈에 송화 곁에 앉은 낯선 여자가 보였다. 딸이 벌써 왔을 리는 없고, 조카며느린가? 근데 왜 조카는 얼굴도 안 비추고 조카며느리가 와서 간병을 하지? 아픈 아기가 엄마를 찾을 텐데… 그런 궁금증을 가지며 양은 다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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