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유진 Sep 18. 2021

웰컴 투 항암월드 35화

실화 소설

  다음날인 토요일, 금희의 신경은 더 날카로웠다. 일녀와 세녀, 혼자의 수다가 밤새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아침에 혼자가 수술실로 옮겨가서 다행이었다.


  점심에 나이팅게일 간호사가 적은 양의 과립구는 104.


  이틀째 맞았는데도 혈소판은 여전히 2만을 넘지 못했다. 그럼에도 아침 회진에선 심해가 양호하다는 말만 되풀이했기에, 금희는 가슴이 답답했다. 보호자가 무르기만 해서는 안 된다던 기대의 입바른 말도 떠올랐다.






  불안감은 곧 현실이 됐다. 오후 간식을 먹고 평소처럼 이를 닦던 양의 잇몸에서 피가 났기 때문이다. 


  윗니 중앙에서 살짝 내비치는가 싶던 빨간 점은 순식간에 길어졌다. 핏물이 세면대로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놀란 양이 금희를, 금희가 간호사를 불렀고, 원석이 달려왔다.


  원석의 침착한 지시에 따라 나이팅게일 간호사가 지혈제가 든 유리병을 가져와 큰 거즈에 적셔 양의 앞니에 대 주었지만, 금세 온통 빨갛게 물들 뿐 쉽사리 멎지 않았다.


  결국 지혈제 1병을 다 쓰고서야 피는 잦아들었다.


  핏물이 밴 거즈를 입에 댄 양을 보며 원석이 중얼거렸다.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군요.”


  혼잣말처럼 나온 이 말이 양을 아프게 찔렀다.


 그래, 이게 내 현실이야. 몰랐어요? 난 말기 암 판정을 받은 백혈병 환자라고요. 그래도 그런 말을 굳이 할 필요는 없잖아요?


  옆에서 어쩔 줄 모르던 금희가 원석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선생님! 우리 애가 정말 양호한 거 맞나요? 이렇게 피가 나는데 안심해 교수님은 계속 괜찮다는 말만 하시네욧!”


  “혈소판이 2만 이하로 내려가면 이럴 수 있습니다. 이제 이를 좀 더 살살 닦으십시오. 몸 내부에서 출혈이 일어나면 큰일이니 움직일 때도 더 조심하셔야 합니다. 복도 걷기는 이제 금지합니다.”


  “백혈구도 1,230이던 어제보다 오히려 조금 올랐는데요?”


  “어머님,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정도의 변화는 올랐다고 보지 않습니다. 머무르고 있다고 보는 겁니다. 백혈구는 0까지 안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과립구가 0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항암 치료를 시작한 지, 오늘로 18일째죠? 다른 사람보다 조금 느리긴 하지만 과립구가 0을 향해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교수님께서는 양호하다고 보시는 겁니다. 조급해하시면 하양 씨에게도 안 좋습니다. 어려우시겠지만 마음에 여유를 가지시고 조금만 더 기다리십시오. 반드시 0을 치게 돼 있습니다.”


  금희는 입을 다물었지만 여전히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대신 양이 입에 거즈를 문 채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웰컴 투 항암월드 34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