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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Sep 19. 2021

웰컴 투 항암월드 36화

실화 소설

  잠시 뒤, 수술을 받은 혼자가 병실로 돌아왔다.


  곧 원석도 들어왔다. 마취에서 잘 깨어났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아까는 위에 가운을 입고 있어 몰랐는데, 원석은 양이 처음 보는 푸른 수술복 차림이었다.


  “아야, 아야, 아야, 아야, 아야.”


  “지혼자 씨, 제 말 들리세요? 지혼자 씨!”


  “아야, 아야, 아야.”


  “언니! 괜찮수?”


  “엄마! 제 말 들려요?”


  “하이고. 시끄러워. 왜 이리 호들갑이야.”


  “지혼자 씨, 깨어나셨군요. 수술은 잘 됐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제가 직접 지켜봤으니 안심하십시오. 비장의 한쪽 귀퉁이를 묶어서 자연스럽게 그쪽이 죽어서 쪼그라들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당분간 통증은 계속될 겁니다. 만약 많이 아프시면 혹시 수술 부위에 문제가 생겼을 수 있으니 바로 간호사에게 말씀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는 무슨! 둘만아, 반 교수가 있었으면 내가 이런 수술까지 가지도 않았어!”


  “어머니, 제발요. 비장 비대는 며칠 사이에 생긴 게 아니잖아요. 몇 년 동안 대로가 온갖 치료 방법으로 애썼는데도 막을 수 없던 일이에요. 선생님, 죄송합니다. 저희 어머니가 원래는 이런 분이 아닌데, 병에 오래 시달리다 보니 너무 지치셔서 그래요. 이해하세요.”


  “하이고오, 배야. 아야, 아야, 아야.”


  “이해합니다. 보호자 분도 힘내십시오. 지혼자 씨, 당분간은 침대에만 누워 계셔야 합니다! 절대로 돌아다니지 마세요. 보호자 분, 수술 부위가 아물 때까지는 화장실을 출입할 수 없으니 성인용 기저귀를 사용하셔야 할 겁니다. 그 뒤로도 한동안은 대소변을 받아 내야 합니다. 곧 간호사가 안내해 드릴 겁니다.”


  원석이 나가자 불편한 침묵이 2호를 채웠다.


  누가 혼자의 기저귀를 채우고 뒤처리를 할 것인가.





  떠밀리듯 먼저 말을 꺼낸 건 일녀였다.


  “이모, 둘만이는 출근해야 하고 세녀는 곧 그림 전시회를 앞두고 있고… 난 집을 비울 수가 없으니, 지금까지처럼 엄마 좀 잘 부탁할게요.”


  “그래요, 이모. 내가 전시회가 코앞만 아니면! 아휴, 몇 주 뒤에 전시회만 무사히 끝나면 내가 계속 당번 설게요.”


  “…….”


  숙자는 말이 없었다. 그러자 둘만이 옆에서 조심스레 거들었다.


  “이모님, 고생이 많으시겠지만, 저희가 누구를 이모님처럼 믿고 어머니를 맡기겠어요?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입을 꼭 다물고 있던 숙자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가방을 챙기고 겉옷을 입으며 말했다.


  “아유, 언니… 내가 언니를 간병하느라 벌써 몇 주 동안이나 집을 비웠잖수. 이젠 여기에 언니 애들도 와 있고, 나도 좀 쉬어야 되겠수. 얘들아, 알다시피 내 나이도 벌써 칠십이야. 요즘 들어 사는 게 부쩍 힘에 부쳐.”


  “아휴, 이모가 고생하는 거 왜 몰라요, 그래서 우리가 매달 간병비를 섭섭잖게 챙겨 드리잖아? 그걸로 부족하세요?”


  “언니도 알겠지만, 이게 어디 쥐꼬리만 한 돈을 몇 푼 쥐여 준다고 될 문제우?”


  “이모님, 돈이 문제시면 저희가 좀 더 넉넉히 챙겨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너희가 자식이잖아! 니들 어미가 대수술을 했어, 이놈들아!”


  숙자가 꽥 소리를 질렀다.


  금희는 깜짝 놀라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일을 하면서도 자기 손으로 똥오줌 기저귀를 갈아 가며 물고 빨고 새끼 셋을 키운 니들 어미라고! 우라질 연놈들!”


  지혼자 할머니의 마음이 어떨까. 양은 마음이 쓰였다. 어쩐지 이 모든 대화를 듣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미안했다. 


  숙자의 지청구 이후로 말없는 미루기가 수없이 오가는 사이, 혼자의 한마디가 사태를 마무리지었다.


  “세정 애미야. 네가 있어야겠다. 아들이라고, 내 재산의 반은 둘만이한테 주기로 했으니 너도 이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둘만이는 대학교에서 애들을 가르쳐야 하니 강의를 빠질 수도 없고, 일녀랑 세녀는 일이 있고, 너 밖에 더 있냐? 숙자는 그동안 고생했다. 몇 주 동안 여기서 지내느라 힘들었을 텐데 집에 가서 좀 푹 쉬어라.”


  “어머님, 저도 세정이를 신경 써야 하고 집안일도 많은 데요….”


  “세정이를 왜 들먹거려! 뉴욕에 유학 가서 잘 지내는 애를! 그래서, 지금 못 하겠다는 게냐?”


  “어머니, 집사람한테만 그렇게 밀어붙이실 일이 아니라….”


  “그래? 그럼 나도 유언장을 다시 써야겠구나.”






  묘한 침묵을 깬 건 숙자였다.


  “그럼 언니, 나 가우! 자주 보러 올게.”


  “그래, 살펴 가.”


  “이모!”


  “이모님! 그렇게 가 버리시면….”


  “한숨 자야겠으니 조용히들 해. 일녀랑 세녀는 그만 돌아가고. 오늘밤은 세정 애미가 있을 테니.”


  “응, 엄마. 우린 그럼 가우.”


  “새언니, 엄마 잘 부탁해요.”


  “아, 아가씨들…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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