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소설
2호가 조용해지자 다른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4호에선 누군가와 통화하는 기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니, 식탁을! 주문할 때 적어 준 주소가 아니라 지금 불러 준 주소로 갖다 달라니까? 갑자기 배달지가 인천에서 서울로 바뀌면 어쩌냐니. 내가 왜 받는 주소를 바꾸는지까지 당신한테 설명해야 해? 뭐, 인마? 너한텐 고객이고 뭐고 없냐? 해보자는 거야, 어? 내 딸이 들어가 살려던 신혼집을 사위 놈이 멋대로 팔고 날아서 그렇다, 왜!”
“아빠….”
가냘픈 연두의 목소리가 울렸다.
기대는 아차 싶었는지 사과하며 전화를 서둘러 마무리했다.
“이봐요, 어쨌든 번거롭게 해서 미안합니다. 원래 배송할 날짜가 아니어도 괜찮으니 방금 전에 말한 주소로 배달해 주세요. 부탁합니다.”
“…아빠, 괜찮아?”
“휴… 그까짓 식탁이 와도 더 들어갈 데도 없는데. 네 신혼집으로 미리 보냈던 가구들이 전부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배 서방, 아니 그 자식이 보낸 사람에 제 이름을 떡하니 적었다. 에라이! 회를 떠도 시원찮을 놈의 새끼!”
“…미안해.”
“아냐, 아냐. 우리가 전부 사람 보는 눈이 없었던 거다… 아직 세탁기, 냉장고, 청소기… 새로 주문해 뒀던 가전제품의 배달 주소를 바꿔야 돼. 아빠가 나가서 하고 올게. 여기서 할 통화가 아니었는데, 갑자기 전화가 걸려 와서… 미안하다.”
“괜찮아. 아빠, 힘내!”
“그래, 그래.”
토닥토닥… 연두 씨도 힘내요! 응원하는 마음을 보내며 양은 눈길을 돌렸다.
조카며느리가 건네는 옥수수차를 마시는 송화의 모습이 보였다. 금희가 정성껏 끓인 차였다.
48시간 선고를 받은 지 35시간이 지나도록 송화는 아직 오줌을 누지 못했다. 계속 마신 차와 최대한으로 투여한 이뇨제 때문에 송화의 얼굴은 안쓰러울 정도로 퉁퉁 부어 있었다.
채송화 할머니의 신장아, 잘 버텨야 해!
할머니가 딸을 볼 수 있게 조금만 더 힘을 내 줘!
양은 바랐다.
6호에선 복수가 아이들과 영상 통화 중이었다.
“엄마, 엄마! 언제 와?”
“엄마, 너무 보고 싶어!”
“엄마, 나도, 나도.”
“엄마, 지난주에 할아버지랑 공원에 갔는데….”
“엄마, 엄마, 어제 어린이집에서….”
알록달록한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고 폰에 바짝 붙은 복수의 얼굴은 밝았다.
역시 아이들이 있으면 다르구나. 힘이 나는구나.
양이 생각하는 사이, 복수가 서둘러 통화를 끝내더니 침대에 풀썩 쓰러졌다.
깜짝 놀란 양이 금희를 부르려는 순간, 복수가 마구 흐느끼며 머리의 스카프를 끌어 내렸다.
“으흐흐흑. 이것들을 두고 내가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죽어… 흐흐흑. 살려 주세요,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 어떤 신이라도 듣고 있다면, 제발… 저 좀 살려 주세요. 뭐든지, 살려 주기만 하면… 뭐든지 다 할 테니까, 제발요….”
다행이야. 남자 친구가 없어서, 결혼을 안 해서, 남편과 아이들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양은 생각을 바꾸었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만약 남자 친구가 나를 버린다면, 그것도 내가 죽을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난 연두 씨처럼 견디지 못했을 거야.
아이들도… 아이가 있는데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무엇보다 내가 죽고 난 뒤에 아이들이 엄마 없이 살면서 겪을 세상을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지옥일 거야.
아무리 지방에 살고 남편이 직장을 다니며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고 해도, 아무리 내가 오지 말라고 했더라도 가족을 위해 간병인도 없이 홀로 입원하고 몇 주가 지나도록 남편이 한 번도 안 온다면, 나는 이해하지 못할 거야. 복수 언니와는 달리… 상처받을 거야.
연두와 복수, 두 사람이 애써 마음을 누르고 있음은 양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무너지면 모두가 부서져 버릴 걸 알기에… 가족이 모르게 혼자 가슴으로 우는 사람들.
양도 그들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