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유진 Sep 21. 2021

웰컴 투 항암월드 38화

실화 소설

  저녁 식사 시간.


  금희가 잠깐 나갔다 온다며 가자, 대양이 병실로 쑥 들어왔다. 원석을 만나고 들르는 길이었다.


  반가워하는 양에게 대양은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양아! 이제 됐어!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내가 너랑 100퍼센트 일치해!”


  “에?”


  “안 믿겨? 내가 방금 사원석 주치의한테서 직접 듣고 오는 길이야! 원래는 A, B C, D. 4개 유전자의 조직적합성항원 검사만 하는데, 너랑 나랑 4개가 다 일치하니까 안심해 교수님께서 E와 F까지 다 확인해 보라고 해서 봤고, 그랬더니 그것까지도 같았다, 6개 중에 6개가 모두 일치해요! 축하합니다! 라면서 사원석이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하더라! 나도 얼마나 기쁜지 그 손을 덥석 잡고 감사하다며 계속 인사를 했다?”


  “아… 오빠. 정말 골수를 뽑아도, 괜찮겠어?”


  “당연한 말을 입 아프게 한다!”


  “…엄마랑 아빠도 아셔?”


  “어. 그러니까 너는 지금부터 무조건 잘 먹고 네 몸에 최선을 다하는 거다! 항암 치료만 잘 이겨 내면 되는 거야! 알았나? 빨리 이 밥 다 먹어!”


  대양은 웃으며 원석과의 만남에 대한 뒷이야기를 해 주었다.


  원석에 대한 첫인상과 느낌, 순식간에 쌓인 신뢰와 우정까지. 대양의 말을 듣느라 살짝 식어 버렸지만 곰탕은 오늘따라 더 맛있게 느껴졌다. 양은 금세 한 그릇을 비워 대양을 기쁘게 했다.     






  대양도 돌아가고 모두가 잠들 준비를 하던 밤 10시 무렵. 원석이 바쁜 발걸음으로 들어왔다.


  저 의사는 도대체 언제 쉬는 걸까?


  송화를 찾은 원석은 어쩐지 들떠 보였다.


  “채송화 씨! 방금 따님이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바로 병원으로 오는 택시를 탄 답니다!”


  “아… 아아.”


  송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뭔가 말하려는 손짓으로 자꾸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 소리에 보호자 침대에서 잠들었던 조카며느리가 부스스 일어나 송화를 이리저리 살폈다.


  “채송화 씨? 괜찮으세요? 왜 그러세요? 어디가 불편하세요? 아, 이런! 소변을 보셨군요! 정말, 정말 잘 하셨어요! 지금 당장 다시 의사를 불러오겠습니다! 잠깐만,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원석이 기쁘게 뛰어나갔다.


  어제 송화에게 48시간이란 선고를 내렸던 중환자실 의사가 다시 불려와 송화 앞에 섰다.


  어제보다 더 피곤해 보이는 의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하네요. 소변이 나오다니. 48시간 선고는 취소합니다. 환자 분, 일단 살았어요!”


  병실 문 앞에서 그는 어제보다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원석에게 말했다.


  “일시적인 호전입니다. 뇌까지 들어간 백혈병이 나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보호자에게 준비를 시키세요. 그럼 이만.”






  그래도 양은 기뻤다.


  신도 아닌 사람인 의사가 아직 살아 있는 한 인간의 사망 시간을 정확하게 예측하던 의학의 세계도 신기했지만 그 무자비한 예상을 뒤엎은 송화의 의지와 몸은, 놀랍도록 신비했다.


  송화가 죽음의 선고를 받은 지 40시간 만이자, 비극을 8시간 앞둔 시점이었다.


  문득 따듯한 손길이 양을 감싸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도… 라는, 어렴풋한 희망이었다.


  그래, 여기는 아우슈비츠와 달라.
밤낮으로 덤벼드는 죽음 앞에 갇혀 있다는 점은 수용소와 다를 바 없지.
 하지만 여기에는 나를 살리려는 사람들이 있어.
 이건 엄청난 차이야!

  양은 오랜만에 악몽 없이 깊은 잠에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웰컴 투 항암월드 37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