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소설
일요일 새벽.
후폭풍을 알리는 바람이 불어닥쳤다.
양의 목이 처음으로 부었다. 양은 아파서 자다가 몇 번이나 깼다. 물을 삼키기도 어려워서 아침밥을 넘길 때는 그야말로 찢어지듯 목구멍이 아팠다.
오전에는 왼쪽 다리까지 부으면서 온몸에 열이 나기 시작했다. 38도가 넘는 고열이었다.
항암 치료를 시작한 지 19일째인 이날 양의 과립구는 0. 원석의 말이 맞았다. 백혈구가 910인데도 과립구는 0을 찍었다.
드디어 시작이었다. 그러나 이날따라 무슨 이유에선지 심해가 회진을 안 왔고, 원석 역시 자리에 없었다.
양은 낯선 당직 의사의 지시에 따라 혈액 배양 검사를 당하고 해열제와 항생제를 처방받았다. 의사는 두꺼운 안경을 고쳐 쓰면서 심각하게 말했다.
“아니길 바라지만 패혈증도 검사해 봐야 합니다. 열이 계속 안 내리면 큰일이에요. 이젠 책도 읽지 마세요.”
양과 금희는 떨었다. 부어 오른 목 앞에서 해열진통제는 별다른 힘을 못 썼다. 목은 여전히 아팠고 열도 저녁이 오고 땀이 나면서야 겨우 내렸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열이 계속 나는 경우, 예후가 안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죽음을 에두른 암 병원 안내지의 글.
“지금까지 이 병동에서 이렇게 땀 흘리는 환자는 없었어요!”
놀라던 간호사들의 말.
이 둘은 하나로 묶여 양의 무의식에 두려움을 심었다.
씻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걷잡을 수 없게 쏟아지는 땀은 또 얼마나 괴로운가.
양은 늘 하루빨리 땀이 사라지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면역력이 0을 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어쩌면 열을 낮추려고 몸이 스스로 땀을 내는 건지도 몰라.
내 몸은 자살 시도를 하는 게 아니야.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고 있어!
밤새 환자복을 여러 번 갈아입는 일은 더 이상 수고가 아니었다. 땀은 양에게 고마운 존재였다. 이런 생각을 하는 양의 옆에서 금희가 투덜거렸다.
“이번에도 배선실 사람들이 한 말이 맞았네? 의사들은 언제나 최악을 얘기해.”
송화의 딸 예진이 그 말을 알아듣고 동의하듯 미소를 지었다. 어젯밤 늦게 도착한 예진은 잠시도 엄마 곁을 떠나지 않았다.
조카며느리는 아침 일찍 자기 아이에게로 돌아갔고, 예진이 송화의 곁을 지켰다.
예진은 잠시 뒤 양의 자리로 찾아와 미국에서 가져온 과일차를 건넸다. 송화의 소식에 정신이 없었을 가운데에도 챙겨 온 배려가 느껴졌다.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저희 엄마가 아주머니께서 끓여 주신 옥수수차 덕분에 살았다고 계속 말씀하세요. 꼭 인사드리라면서요. 제가 엄마를 볼 수 있게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큰 도움, 받았습니다.”
금희와 예진은 어느새 손을 맞잡고 함께 눈물을 글썽였다.
“내가 뭘 한 게 있나. 어머니가 예진 씨를 보려고 기다리신 거지. 다행이야.”
“…아버지가 돌아가시곤 줄곧 엄마랑 저 둘 뿐이었거든요. 문중 사람들은 종갓집 재산이 어디로 넘어가는지만 관심이 있지, 엄마한텐 저 밖에 없어요. 그런데 제가 미국으로 떠나 버려서….”
“아휴. 이렇게 왔으니 됐지.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네.”
“그나저나 미국에 남편과 아이를 두고 왔으니 곧 다시 돌아가야 할 텐데, 얼마나 머무를 계획이에요?”
“실은, 5일을 생각하고 왔어요. 주치의 선생님께 전화로 말씀을 듣고… 어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장례식까지 제 손으로 치르고 재산을 정리하면 되겠다 싶었거든요.”
“그렇구나. 그래요. 잘 생각했어요.”
“네, 그럼 당분간 계속 신세 좀 지겠습니다.”
“아휴. 신세는 무슨. 어머니가 내 친정엄마를 닮으셔서 남 일 같지 않아요. 지내다 궁금하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 얘기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