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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Oct 02. 2021

웰컴 투 항암월드 40화

실화 소설

  정다운 송화 모녀와 달리, 혼자는 외로웠다.


  혼자의 며느리는 하룻밤 만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뒤로 자빠졌다.


  그뿐인가. 수술한 자리가 아파서 앓고 누운 혼자가 듣든 말든 바로 옆에서 당당하게 전화를 걸었다. 재산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 시어머니의 똥 기저귀 수발은 못 하겠다며 혼자의 자식들에게 똑 부러지게 쏴붙였다.


  “세정이 큰고모, 나한테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아가씨들도 어머님의 유언장에 불만이 많았잖아요? 이번 기회에 와서 점수 좀 따지 그래요? 이런 일은 아들이라고 세정 아빠랑 나한테 미루면서 재산은 똑같이 달라는 거, 좀 염치없지 않아요?”


  “지금 뭐라고 했어요? 작은 아가씨, 엄밀히 말하면 당신들의 엄마 아니에요? 자식들도 마다하는 어머님의 똥오줌을 지금 누구한테 받아 내라는 거야?”


  “여보, 난 어머님의 성격 도저히 못 맞춰. 간호사실에 간병인을 구해 달라고 했으니 그런 줄 알아. 그리고 저녁에는 당신이 좀 와 봐. 오늘은 일요일이잖아! 강의 핑계 대지 말고 당신 어머니한테 얼굴이라도 비추라고!”





  금희가 아침을 먹으러 나간 사이, 양이 책을 읽고 있는데 2호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대신 …했다는 거지?”


  “…네.” 


  누군가 낮게 다그치자 다른 누군가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 잘못이니… 일단 보호자에게 말해야….”


  “쉿! 조용히 해. 인턴 주제에 어떻게 책임을 진다는 거야.”


  “그래도….”


  “이 주사는 …밀리리터 정도 맞아도 생명에 지장 없어.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그럼 큰 문제없을 거야. 알았어? 아니면 이대로 옷 벗을래?”


  “…아니오!”


  잔뜩 겁먹은 목소리.


  두 간호사는 잠든 혼자를 두고 살그머니 빠져 나갔다.


  그러니까, 어제 비장 수술을 한 백혈병 환자에게 놓아야 할 주사가 아닌 다른 주사를 잘못 놓았고, 숨기자는 얘기였다.


  남 일이 아니었다. 이 병실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송화나 복수, 연두나 용녀였다면 바로 알렸을 양이었다. 하지만… 혼자였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길길이 날뛸, 혼자였다.


  정확히 어떤 주사 대신 무슨 주사를 얼마만큼 놓은 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말을 전해 봤자 오히려 양의 말을 안 믿고 간호사들에게 일러 양만 미움을 받을 수도 있었다.


  큰 문제는 없다니까… 지켜보자. 만약 혼자에게 나쁜 일이 생긴다면 당연히 증인으로 나설 양이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며느리의 바람과는 달리, 혼자의 간병인은 쉽사리 구해지지 않았다.


  오전에 서너 명의 지원자가 왔지만 혼자 옆에 잠시 있어 보곤 하나같이 손사래를 치고 돌아갔다.


  안 그래도 지킬 게 많아 일하기 까다로운 격리 병동에서,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똥오줌까지 받아야 하는 환자를 돌보기는 싫다는 이유였다.


  나중에, 혼자의 며느리는 돈을 더 주겠다며 왔다 간 간병인들에게 일일이 전화했지만 하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혼자의 성격에 대한 소문이 이미 퍼져서 아무도 안 맡으려 한다는 이야기가 배선실에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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