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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Oct 03. 2021

웰컴 투 항암월드 41화

실화 소설

  오후 늦게야 하겠다는 사람이 겨우 하나 나타났다.


  연변에서 온 중국 동포였다.


  배선실 사람들은 심 여사가 격리 병동에서 일한 경험이 없을 뿐 아니라 간병 일을 시작한 지도 얼마 안 된 초짜라서, 뭘 몰라서 온 거라며 숙덕거렸다.


  세정 엄마는 그런 심 여사에게 혼자를 떠넘기고 홀가분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물론 혼자를 잘 돌봐 달라는 부탁은 남겼다. 






  111병동에 다른 중국 동포 간병인은 없었다.


  간병인들은 소속된 회사에 따라서 분홍색, 보라색 등 다른 옷을 입고 일했다.


  심 여사의 옷은 빨강색으로, 회사도 달랐다. 그래서인지 심 여사는 다른 간병인들과 어울리는 대신 혼자의 마음에 들려고 열심이었다.


  내 환자에게 정성을 다하는 간병인, 좋았다. 하지만 지나친 열정은 곧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중간 자리라 좁다며 혼자가 투덜거리자, 심 여사는 자신의 보호자 침대와 혼자의 침대 사이를 밀어서 공간을 넓히기 시작했다.


  틈날 때마다 은근슬쩍 일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처음에는 아무도 몰랐다.


  저녁때쯤 돼서야 양은 금희의 보호자 침대와 자신의 침대 사이가 부쩍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때쯤 용녀에게서도 불만이 터져 나왔다.


  “왜 이리 좁아졌지? 2호 간병인, 그만 좀 밀어요. 편하게 잠을 잘 수가 없잖아요! 왜 자꾸 침대가 흔들리나 했네!”


  심 여사도 만만치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그쪽이 자리를 너무 많이 차지해서 우리가 좁았다고요!”


  금희와 양은 조금 좁아졌지만 그 정도는 참기로 했다.


  사실 입구 쪽 벽에 위치한 용녀와 화장실 옆에 자리한 양에 비하면 보호자 침대와 환자 침대가 모두 커튼에 의지한 혼자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동안은 혼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음을 양은 이번에 깨달았다. 늘 떨어질 듯 불안하게 금희 쪽 침대 난간에 기대 앉아 있던 혼자의 행동도, 이제야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밤이 가까워지면서 간호사 카트가 들어오지도 못할 정도로 자리가 좁아지자 금희도 더 이상은 봐줄 수가 없었다. 곧 1호와 2호, 2호와 3호 사이에 침대 밀기와 실랑이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모두에게 굉장히 피곤한 일이었다.


  그나마 용녀는 몸이 거의 회복돼서 퇴원할 날을 기다리는 상태였지만, 금희는 말기 암 판정을 받고 항암 치료로 면역력이 0으로 떨어진 딸을 돌보고 있는 엄마였다. 안 그래도 팽팽한 금희의 긴장감이 슬슬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또 다른 갈등이 시작됐다. 수술로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으니 온몸이 쑤신다는 혼자의 말에, 심 여사가 혼자의 침대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심 여사는 근육을 마사지할 겸 욕창도 막는다며 환자 침대 위에서 자기의 손이며 발로 혼자를 1시간이 넘도록 밟고 주물렀다.


  생각해 보라. 어제 수술을 한 70대 노인이 누운 침대 위에 40대의 간병인이 올라가서 이리저리 걸어다니는 모습을.


  커튼 한 장을 사이에 두고 혼자의 침대 바로 옆, 50cm 아래에 누운 금희는 또 어땠겠는가. 혼자의 침대가 두 사람의 무게를 못 이기고 위험하게 흔들리며 삐걱거렸다.


  양이 보기에 금희는 혼자의 침대보다도 위태로웠다.     






  이날 밤, 둘만이 혼자를 찾아왔다.


  “어머니, 저 왔어요. 몸은 좀 어떠세요? 아, 새로 오신 간병인이시군요? 저희 어머니를 좀 잘 부탁드립니다.”


  심 여사가 꽤 마음에 들었는지 혼자는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늘어놓았다. 


  “우리 심 여사가… 거기 비하면 세정 애미는 시어미한테 그러는 거 아니다.”


  심 여사에 대해 칭찬하는 말끝마다 며느리에 대한 악담과 저주가 양념처럼 얹혔다.


  1시간이 넘게 묵묵히 아내에 대한 험담을 듣던 둘만은 슬그머니 일어섰다. 조금 더 있다 가라며 혼자가 잡았지만, 둘만은 내일 아침에 강의가 있다며 자리를 털고 나갔다. 그 뒤를, 금희가 재빨리 뒤따랐다.


  금희는 5분 정도 지나서 들어오더니 양에게 조그맣게 속삭였다.


  “이제 됐어. 아들은 사람이 점잖고 그래도 말이 통하더라. 간병인은 좋은 의도로 한 거겠지만 어제 수술을 받은 백혈병 환자한테 무리하게 안마를 하다가 어디가 잘못되면 어쩌느냐고, 같은 보호자로서 걱정이 돼서 말하는 거라고 했더니 바로 알아듣더라. 침대를 자꾸 밀어서 옆 사람들이 불편하다는 얘기도 했어. 간병인에게 조심해 달라고 듣기 좋게 말을 하겠대.”


  잠시 뒤, 심 여사가 둘만의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렸다.


  “네, 네. 네.”


  심 여사의 볼멘 대답 소리에 궁금해진 혼자가 물었다.


  “둘만이가 뭐래?”


  “아드님이 이제 마사지를 해 드리지 말라네요.”


  “뭐야? 그리고?”


  “침대를 양옆으로 밀지 말라고요.”


  “하이고. 지가 뭘 안다고. 어미가 수술을 했는데도 이제야 1시간 앉았다 간 녀석이… 자리가 좁아서 내가 얼마나 불편하고 온몸이 쑤시는지 지가 뭘 알아! 병원비 아끼려고 제 어미를 6인실에 처박아 놓고선.”


  “그래도 아드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저도 어쩔 수가 없네요.”


  그 말을 끝으로 심 여사와 혼자는 조용해졌다.


  자리 밀기와 침대 위 마사지도 일단은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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