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소설
월요일.
새벽부터 설사가 양을 깨웠다.
병원에 온 뒤로 처음이었다.
양은 화장실을 들락거리느라 심해의 아침 회진도 놓칠 뻔했다.
“잠깐만요, 교수님!”
양이 화장실에서 소리치자 심해가 화장실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
“서두르지 마세요. 다시 들르겠습니다.”
그래도 양은 뛰쳐나왔고 심해는 회진을 끝내고 나가려다 다시 돌아왔다.
“하, 양 씨, 설사가 심한가요?”
“아직은 견딜 만해요.”
“배가 아픈가요?”
“아니오. 배는 괜찮아요.”
“흠. 항생제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목은 어떤가요?”
“많이 아파요. 너무 부어서 뭘 삼키기가 힘들어요.”
“발목도 한번 볼까요?”
“아야!”
“아프지요? 이럴 수 있습니다. 그래도 양호합니다. 지켜보지요.”
X-ray를 찍고 뭔가 문제가 발견되는 다른 환자들과 달리 난 아직 괜찮은 수준인가 봐. 양은 안심했다.
하지만 설사는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곧 배가 뒤집어지듯 아프면서 설사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바로 옆이 화장실이 아니었다면 가는 길에 못 참고 몇 번이나 실수했을지도 모른다.
화장실을 나서는 양의 다리가 후들거리고 손이 떨렸다.
“오전에만 벌써 6번째네요.”
손전등 간호사가 말했다.
내 변기통을 들여다보고 설사 횟수를 기억하는 사람… 간호사였다. 양은 새삼 간호사들에게 존경심을 느꼈다.
보고를 받은 원석이 와서 양의 배를 여기저기 눌러 보더니 말했다.
“어디 이상이 생긴 건 아닌 것 같군요. 장에 균이 들어갔을 수도 있습니다. 균이 들어간 거면 설사를 해서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게 제일 좋습니다. 하는 데까지 해 봅시다.”
“아… 선생님, 너무 힘들어요. 엉덩이가 쓰라려요.”
“아, 이런. 조금만 더 참아 봐요. 보통은 나올 만큼 나오면 괜찮아집니다. 지금 약을 쓰면 오히려 균이 못 나와서 배가 더 아플 수 있습니다.”
“…네.”
설사가 이어지면서 황당한 사건도 일어났다. 이젠 더 나올 것도 없는 물을 빼고 양이 일어서려는데, 갑자기 뭔가가 변기로 떨어졌다.
검붉은 덩어리였다. 크기는 엄지손가락만 했다. 뭐지? 너무 순식간인 데다 아무런 느낌이 없어서 양은 자기 몸에서 떨어진 건지 아닌지도 알 수가 없었다.
놀란 양은 화장실 안 비상벨을 눌렀다.
손전등 간호사가 달려와 양의 이야기를 듣고 변기 속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차마 꺼내지는 못하고 양에게 말했다.
“이렇게 봐선 뭔지 잘 모르겠네요.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변기로 떨어지기 전에 손으로 받아서 제게 주세요.”
“네? 손으로요?”
“네. 자세히 봐야 뭔지 알 수 있어요. 알아야죠!”
“…네.”
설사에, 복통에, 뭔지 모를 덩어리까지. 긴장한 금희는 누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그런 가운데 눈앞에서 못 볼꼴이 일어났고, 금희는 폭발하고 말았다.
“지금 뭐하는 거예욧!”
“수건 빨잖아요. 왜요?”
“아니, 환자용 세면대에서 2호의 똥오줌을 닦은 수건을 빨면 어쩌자는 거예욧?”
“환자 수건이니 환자용 세면대에서 빠는 건데, 왜 난리래? 어디 법으로 환자용 수건은 여기서 빨면 안 된다고 정해져 있기라도 해요?”
“그럼요! 정해져 있죠!”
“그런 법이 있으면 가져와 봐요, 어디!”
그러자 4호에서 기대가 뛰쳐나오며 소리를 질렀다.
“아니, 이 아줌마가 미쳤나? 여기 환자들도 쓰기 전에 알코올로 소독하고, 쓰고 나서도 다음 사람을 위해 소독하는 덴데, 그 더러운 걸레를 지금 어디다 대고 빠는 거야! 당신, 간병인 맞아? 제정신이야?”
기대까지 나서서 펄펄 뛰자 심 여사는 그제야 꼬리를 슬쩍 내렸다.
“아니, 아저씨… 그럼 이런 건, 어디서 빨아요?”
“이 아줌마야, 그건 저기 입구 쪽 비소독물질실에 가서 빨아야지! 누굴 감염시키려고 이래! 우리 연두가 저 세면대 쓰고 나서 아프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어?”
“그러니까 말이에요! 아휴. 진짜 불안해서 못 살겠네.”
시끄러운 다툼에, 서로를 바라보던 송화와 예진 모녀, 늘 누워 있는 복수와 용녀까지 고개를 빼고 내다봤다. 모두의 시선이 몰리자 심 여사는 머쓱했는지 중얼거리면서 병실 밖으로 물이 흐르는 수건을 들고 나갔다.
“다른 병동에선 다 여기서 빨던데, 여긴 뭐가 다르다고 이 난리야, 난리가. 내가 조선족이라고 이러나? 내 참 서러워서.”
심 여사가 나가는 길을 따라 다툼의 흔적이 남았다. 덜 짠 수건에서 떨어진 물 자국이었다.
금희가 알코올 분무기를 들고 가 세면대에 뿌리고 박박 문지르는 사이, 예진이 조용히 일어나더니 심 여사의 뒤를 따라가며 바닥의 물기를 엎드려 닦았다.
휴. 양은 한숨을 내쉬었다. 살얼음판이 따로 없었다.
양은 금희를 이해하고도 남았다. 금희가 잘못된 지적을 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꼭 그렇게 당장이라도 맞붙어 싸울 듯이 부딪쳐야 하는지, 양은 답답했다. 심 여사가 이 병동의 규칙을 잘 몰라서 그런 거니, 좀 더 부드럽게 알려 줄 수도 있잖은가.
언제 또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서 양은 불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