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틀 뒤.
양은 자신이 백혈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비상계단으로 나가 하대양에게 전화를 걸었다. 금융 회사의 위기관리팀 대리인 대양은 이날, 언제나처럼 바빴다.
“오빠.”
“어, 왜?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오빠, 나….”
“짧게. 지금 좀 바쁘다.”
“나… 백혈병이래.”
“뭐라고?”
“지금 동네 내과에 왔는데… 만성골수백혈병이라고, 큰 병원으로 가래.”
“뭐? 백혈병? 만성이라고?”
“응. 만성골수백혈병.”
“부모님께는 말씀드렸나?”
“아니, 종합 병원에서도 확실하다고 하면 그때 연락하려고.”
“후, 그려. 그게 좋겠음. 만성이면 괜찮을 거여. 지금은 바로 회의가 있어서 내가 정신이 없으니까 이따가 전화할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있어.”
“응.”
일단은 병원비를 계산하고, 출근도 해야 했다. 양이 빨개진 눈으로 내과로 돌아가자, 간호사가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양이 나간 사이에 의사가 휘갈겨 쓴 짧은 진료 의뢰서와 검사 결과지들이 안에 담겨 있었다.
CML이 의심됩니다.
정밀 검사를 의뢰 드립니다.
양 또래의 간호사가 안됐다는 표정 위로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내일 아침 10시, 대한대학교병원 혈액암센터의 혈액종양내과 안심해 교수님으로 특진 예약을 넣었어요. 원래는 적어도 2주일은 뒤로 날짜가 잡히는데, 운이 좋으셨어요! 이렇게 바로 다음날이 되는 경우는 드물거든요. 한 달 가까이 기다리신 분도 있어요. 내일은 10분 전까지 1층 수납 창구로 가셔서 서류를 접수하고 올라가시면 돼요.”
틀림없는 암이라는데, 단지 예약이 차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종합 병원 의사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만 2주일이 넘게 기다려야 한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하지만 방금 백혈병이라는 소리를 들은 양은, 운이 좋았다며 축하해 주는 간호사에게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고 선 간호사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양은 작게 우물거렸다.
“감사합니다.”
돌아서 나오는 양의 머리에, 저 간호사를 꽤 오랫동안 혹은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스쳤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