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곱씹는 아이

너를 만난 지 16년 차, 이제야 조금 아는 걸까?

by 삶은 사람

아이에게 오늘은,

내가 느끼는 오늘과 거리가 있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되었다.


시간이 오래될수록 기억도 감정도 조금씩 빛바래 지기 마련인데,

아이에게는 그 기준이 훨씬 넓다는 것을 말이다.


되도록 감정을 조절하려 노력하지만,

아이와 종일 같이 있는 우리 부부에게 감정 조절은 득도의 길과 같이 가는 길이 요원하다.


본의 아니게 희로애락이 드러나고

그중에서도 노여움과 슬픔은 유난히 강력하게 전달된다.


아이는 전혀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상대의 갑작스러운 어조의 변화와 높아지는 언성은 전혀 알 수 없는 그야말로 충격일 것이다.

좋은 부모가 어떠해야 함은 알지만,

나 역시 한없이 나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아이에게 안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의 힘든 감정을 이따금 조절하지 못하고 그만 내보이고 만다.


아이는 그날은 아무렇지 않은 듯 보내고

정작 내가 아무렇지 않아 진 며칠 뒤에

평화로운 한때에 갑작스럽게

뜬금없이 화를 내고 울고 짜증을 낸다.

마치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처럼.


그동안 아이의 마음을 알 수 없다며,

고개를 가로젓던 나는

이제야 아이가 어디에 머무르며 감정을 쏟아내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아이는

'아프다', '토했다'와 같이 뜬금없는 얘기들만 쏟아내며

갑작스럽게 꼬집거나 잡아 뜯기도 하지만,

그 안에

불안과 걱정과 두려움과 화가 있었음을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때론 일전의 자기 행동을 반성하기도 하고

(계속 꼬집었단 얘기를 수없이 쓰기도 하며)

때론 놀랐던 자기 마음이 얼마나 속상했는지 화를 내기도 하고

때론 그런 감정 때문에 잠도 이루지 못한다.


나는 다 쏟아내고 비웠는데,

너는 다 주워 담고 채우고 있었구나.

나는 시간에 맡기고 잊었는데

너는 시간을 넘어서 잡고 있었구나.


좋은 기억이든 힘든 기억이든

오래된 정도보다 강렬한 정도가

아이에게 중요한 기준이 되는 듯했다.


수년 전 해운대의 즐거움이 어제와 같고,

작년 겨울 롯데월드의 설렘이 오늘과 같고,

지난주의 엄마의 화가 지금의 일과 같고,

엊그제 자신의 실수가 당장의 일과 같다.


왜 그래?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되물었던 나는

이제야

그랬어?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라고

위로와 공감의 말을 건넨다.


참,

오래 걸렸다.


아이의 잠 못드는 밤, 그런 날에든 아이만의 긴 오늘에 그럴만한 사정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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