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나는 오늘도 아이를 가르친다
뜨거운 모성애가 아닌 처절한 이기심으로
ㅡ종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면 집에 오면 말수도 적어지고 기력이 달린다.
어떤 이에게는 참 쉬운 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 일이 단 한 번도 가벼운 적이 없었다.
아이들 앞에 선다는 것, 아이들의 삶에 영향을 준다는 것.
매일 아이들과 함께하면서도 익숙해질 수 없는 참 무겁고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퇴근하면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싶은데,
집에도 떡하니 학생이 기다리고 있다.
화장실 가는 것부터 밥 먹는 것, 옷 입는 것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손이 가는
온 신경을 써야 하는 아주 초고난도 학생.
심지어 관찰학습도 안 되고,
당연히 독학도 안 되고,
게다가 놀이시간까지도 챙겨야 하는,
아주 까다로운 학생이 우리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
○○엄마, 진짜 대단한 것 같아.
어쩜 그렇게 열심히 해?
비슷한 상황의 아픔이 있는 엄마들도 나를 보면 한 마디씩 보탰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적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어디든 그렇겠지만,
여기도 무척 다르다.
자폐라고 다 같은 자폐가 아니다.
지능이 높은 아이,
신변자조 독립이 되는 아이,
말이 통하고, 말귀를 알아듣고 사회성이 어느 정도 형성된 아이 등
저마다 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는 것이 다르다.
내 아이는 그중에서도 더욱더 특출 났다.
뭘 해도 중간은 없었다. 늘 최고였다.
처음 치료를 시작할 33개월 무렵에는 지능 및 언어평가은 평가 비협조로 검사 자체가 불가능했고, 대략적인 수준을 가늠해야 했다.
스스로 하는 말이 거의 없었고, 과거에 몇 개의 단어를 한 번씩 해본 게 전부였기 때문에 모두 불능에 해당했다.
성대를 이용해 내는 소리는 거의 없었고, 손을 끌어당기는 거 외에는 별다른 의사표현을 할 줄 몰랐다.
쉽게 화를 냈고, 상대를 꼬집거나 깨무는 공격적인 행동이 많았다.
이런 아이를 흔쾌히 받아줄 치료실은 많지 않았다.
받아준 곳에서도 아이가 선생님 지시에 잘 따르지 않고, 실랑이를 벌여
수업다운 수업을 받기도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아이가 발전하려면 치료실 가는 것을 기대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나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만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아이를 매일 가르쳤고, 오늘도 가르치고 있다.
아이를 가르치는 건,
어쩌면 뜨거운 모성애가 아닌
처절한 이기심에서 비롯되는 것일지 모른다.
부모가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아이의 손발이 되어줄 수 없을 때,
그때 아이가 편하게 잘 자란다면,
나는 조금 더 여유롭게 늙어갈 수 있을 것이다.
외출할 때마다 다 큰 아이를 제어하지 못해 발을 동동거리고,
아이가 걱정되어 몇 날 며칠 집을 비우지 못해 수술을 미루다가 중병이 걸리고,
아이가 해코지할까 싶어 집 안에 꽁꽁 숨겨놓고 키우고,
그런 끔찍한 노후에서 벗어나기 위한 이기심 때문일 것이다.
많은 부모들은 아이의 삶과 미래를 위해 지지하고 지원하고, 가르칠 텐데.
나는 나의 삶과 미래를 위해 이렇게 아이를 가르친다.
조금 씁쓸하지만, 그렇게 나는 가르친다.
또 시간이 날 때면 무엇을 가르칠지 고민하고 또 준비한다.
이게 아이에 대한 사랑이고
이게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대한 책임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