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이 엄마, 자책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스물여덟에 아이를 낳았다.
그냥 낳은 게 아니고 아주 공들여 낳았다.
결혼 전부터 엽산을 먹었고, 결혼 준비기간부터 금주했다.
술 한 잔이라도 하라며 권하는 직장 동료들한테, 임신할 거라 안된다며 유난을 떨었다.
근 7년을 연애한 남편과 결혼 3개월 차에 임신을 준비했고 두 달 뒤에 임신에 성공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불킥이지만, 남편과 나는 아이를 보내달라고 기도를 했다.
<우리에게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내주세요>라고 말이다.
그 유난스러움이 하늘에 닿아서였을까?
너무 공들여서였을까?
아니면 이미 정해진 거라 뭘 한들 상관없었던 것일까?
임신할 때부터였을까?
출근만 하면 자궁수축이 빈번하게 일어나던 그때부터였을까?
임신해도 다 할 수 있다면서 이일 저일 벌이고 다닌 것 때문이었을까?
출산할 때부터였을까?
분만촉진제를 맞고 유도분만을 하려다가 심박동이 불안하다고 급하게 전신마취 후 제왕절개를 했다.
그때 심박동 이상 때문이었을까?
여러 이벤트를 고민해 봤지만 뾰족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러니,
마음을 곱게 안 써서 그런 것일까?
내가 살면서 상처 준 사람들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일까?
학창 시절부터 조금은 별나고 독특하다고 들었던 내 성격 때문일까?
별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원인이 나에게서 나오기를 바란 듯 끊임없이 나 스스로를 괴롭혔던 적이 있었다.
내가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게 가장 아프면서도
차라리 원인이 있는 게 속이 편할 것 같았다.
그러면 왠지 해결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문제를 해결하면 아이도 뿅! 하고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면서
자책을 하고, 원망을 하고, 후회를 하고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뭐가 되었든 지금 바꿀 수 있는 건 없잖아."
그랬다.
원인이 뭐든 지간에, 그게 해결책을 줄 수 없었다.
이유(Why)가 아닌 방법(How)을 고민해야 했다.
소모적인 생각과 자책으로 제자리에서 우울하게 주저앉아 있을 만큼 한가롭지 않았기에,
무엇이 되었든 간에
이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개선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에 온 힘을 기울여야 했다.
힘든 아이였기에 장애 통합 어린이집임에도 불구하고 두 시간도 채 맘 편히 맡기지 못한 날들이 있었다.
한 시간도 채 맡기지 못하고 어린이집 근처를 서성여야 했던 나는
불안이 엄습해 오고 무력감이 나를 압도할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다.
그것을 찾고 해내면서 나의 불안을 조금씩 덜어냈다.
그렇게 단 몇 분이라도 공부했고, 준비했고, 아이를 챙겼다.
아이와 관련된 책을 보고, 강의를 듣고, 공동체 문을 두드렸다.
조금이라도 귀동냥을 하고 발품을 팔아
내가 뭔가를 하고 있음을 나 스스로가 느껴야 당장 현재의 고통을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장애아이 부모가 모두 자책할 필요 없다.
자책해서도 안 된다.
그 누구의 탓도 아니고, 스스로를 좀먹는 헛된 망상일 뿐이다.
자책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나 자신부터 일으켜 세워야 한다.
무력감에서, 고통에서
주저앉아 스스로 더 고통스럽기를 자처하지 말고,
그곳에서 털고 나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HOW를 고민해봐야 한다.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다.
요리,
운동,
독서,
쇼핑,
수다, 그 무엇이든 좋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서 출발하고 힘을 내라.
그래야 첫 발을 뗄 수 있다.
아이와 함께 가는 그 길의 첫걸음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