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실은 남고, 무대는 사라진다?

우리는 어떤 문화를 남길 것인가

by 반향의 기록




음악은 언제나 시대의 소리를 품어왔다.


박수 소리 하나, 나무를 깎아 만든 현악기, 전기를 머금은 신스, 그리고 이제는 AI의 알고리즘까지.

우리는 음악을 더 새롭고 더 창의적인 것으로 끊임없이 확장해왔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미래의 음악을 상상할 때 더 기발한 악기와 더 빠른 연결 속도, 더 놀라운 기술을 떠올린다. 기술과 음악의 발전은 이제껏 발걸음을 같이 했기에,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미래를 상상한다. 그러나 그 찬란한 상상 앞에 하나의 이질감이 떠오른다. 지금 우리가 딛고 선 이 땅이 과연 그런 미래를 견딜 수 있을까? 기후 위기, 자원 고갈, 에너지 불균형, 그리고 갈수록 벌어지는 문화적 격차…


본문 사진_01.jpg 배영환, 「인왕산인근_인왕산_00005」, 한국저작권위원회 제공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인류가 기록한 역사의 어느 때보다 기술적 발전을 이룩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며, 흐름은 불평등에 밀려난 사람들을 하나하나 고려하지 않는다. 창작의 영역에 있는 음악은 그런 문제에서 메인스트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곤 한다. 혹시 우리는 음악을 만드는 ‘기술’은 진보시키면서 음악을 함께 듣고 나누는 ‘문화’는 서서히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지속 가능한 문화를 꿈꾼다면, 우리는 이제 음악을 이야기할 때, 환경도 함께 말해야 한다.








음악 산업, 이제는 '소리'보다 '방식'을 말해야 할 때



오랫동안 음악 산업은 ‘무형의 문화’로 여겨져 왔다. 감성과 창의, 자유와 표현의 영역이라 믿어졌지만 그 실체는 놀랄만큼 물질중심적이다. CD와 LP, 굿즈와 포스터, 무대장치, 조명, 대형 스크린, 대규모 운송까지. 하나의 공연이 열리기까지 소모되는 자원과 배출되는 탄소는 결코 적지 않다. 디지털 시대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한 곡의 스트리밍에도 클라우드를 돌리는 서버와 전기 에너지가 필요하다. 음악은 본질적으로 자유롭고 감성적인 예술이지만, 그것이 소비자에게 닿기까지의 과정은 놀라울 만큼 산업적이다. 기획과 녹음에는 전기와 장비, 스튜디오 공간이 필요하고, 음반 제작은 플라스틱과 종이, 잉크를 소모하며, 유통 과정에서는 물류 운송을 위한 연료와 포장 자원이 사용된다. 그렇기에 지금은 음악의 감성과 자유를 누리기 위해 ‘지속 가능성’이라는 단어를 바라보아야 하는 시대가 왔다. 더 오래, 더 널리 음악을 전하고 싶다면 무엇부터 바뀌어야 할까?



음악 산업의 친환경적 시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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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그린플러그드 서울 (Greenplugged Seoul)

2009년부터 시작된 이 음악 페스티벌은 ‘음악을 통한 환경 실천’을 테마로 내걸었다. 다회용 컵, 일회용품 최소화, 대중교통 이용 유도 등 페스티벌 자체를 친환경 플랫폼으로 설계했다. 공연장을 찾은 관객은 음악을 듣는 동시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함께 고민하게 되었다.


해외


Billie Eilish의 ‘Happier Than Ever’ 투어

빌리 아일리시는 환경단체 Reverb와 협력해, 일회용 플라스틱 금지, 친환경 머천다이즈, 식물 기반 식사 제공 등 투어 전반을 ‘녹색’으로 전환했다. 단순히 메시지를 던지는 데서 끝나지 않고, 팬의 실천까지 유도하는 설계가 돋보였다.


Massive Attack의 ‘탄소 중립 투어 실험’

이들은 투어 자체를 과감히 중단하고, 기후 과학자들과 함께 탄소배출 없는 공연 운영 모델을 연구했다. 공연의 형태를 ‘다르게 창작’함으로써, 음악은 곧 사회적 제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국내외에서 음악 산업의 환경적 책임을 고민하고, 작은 실천부터 구조적인 변화까지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페스티벌의 운영 방식이 바뀌고, 투어는 이제 더 나은 세상을 함께 생각하는 방식으로 기획되기 시작했다. 무대 위 메시지가 무대 밖 삶의 방향으로까지 확장되어 타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음악은 예전부터 사람을 모으고, 생각하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힘이었다. 그리고 그 힘은 이제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는 데 쓰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하지 말고 우리는 한 걸음 더 생각해야 할 가정이 있다. 이러한 실험과 의지가 아무리 의미 있더라도 많은 사람이 동참하지 않을 수 있다. 당연스럽게 여기던 행동을 변화시키는데엔 불편함이 뒤따르며, 기업과 개인은 그런 불편함을 ‘굳이’ 채택할 이유가 없다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의 음악 산업이 그런 시도 없이 발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창작은 남지만, 체험은 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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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음악은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말을 쉽게 한다. 하지만 우리가 진심으로 사랑해온 음악은 단순한 소리나 데이터가 아니었다. 그건 누군가와 함께한 ‘경험’이자 ‘현장’이다. 무대 위에서 떨리던 목소리, 수천 명의 관객이 한 목소리로 부르던 떼창, 밤하늘을 배경으로 울려 퍼지던 마지막 곡. 그 모든 장면은 공기, 공간, 온도, 바람, 흙냄새처럼 ‘환경’이라는 살아 있는 무대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기존의 흐름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음악은 점차 이어폰 속에만 머무는 기록물로 변해갈지도 모른다. 녹음실은 남겠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울리던 ‘현장감 있는 소리’는 조용히, 아주 천천히 줄어들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 연결을 다시 묻고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떤 문화를 남길 것인가



친환경적인 음악 산업은 선택이 아니라, 문화유산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것은 단순한 곡 하나가 아니라, 어떻게 만들었고, 어떻게 나누었고, 어떻게 함께 들었는가라는 이야기다. 음악이 지속되려면 환경도 지속되어야 한다. 음악 산업은 이제, 좋은 노래만이 아니라 좋은 방식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사실 이런 흐름은 이제 막 시작된 일이 아니다. 이미 몇몇 아티스트들은 먼저 그 길을 열기 시작했다.


본문 사진_05_.png 콜드플레이 콘서트_LIVE NATION PRESENTS COLDPLAY : MUSIC OF THE SPHERES DELIVERED BY DHL


콜드플레이는 태양광과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활용해 무대를 만들었고, 빌리 아일리시는 식물 기반 식사와 다회용 시스템을 공연에 적용했다. 매시브 어택은 투어 자체를 멈추고, 탄소 중립 공연 모델을 연구하며 완전히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이들은 음악 산업이 외면했던 문제를 직시하고 지속 가능성을 위해 새로운 방식을 도입할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 움직임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걸어가는 일이다.






Credits
Writers Choi Ahra, SeukA
Layout Design Park Minjae
Editor H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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