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추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by 반향의 기록




선명하게 남은 뒷자리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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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차를 운전하실 때 라디오 대신 직접 골라 담은 플레이리스트를 틀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 노래의 주인과 제목도 몰랐다. 다만 매번 재생되는 동일한 플레이리스트는 시간이 지나고 내가 자라면서도 바뀌지 않았다. 어느새 나는 제목도 모르는 노래의 인트로와 후렴, 기타 솔로까지 모두 들으면 척 알게 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레트로한 사운드, 여운이 긴 보컬. 평소에 내가 듣던 음악과는 전혀 다른 장르의 노래. 그런데도 난 그 노래를 흥얼거리고 따라부를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놀랍게도 그 시절 들었던 곡 몇 개는 지금 내 플레이리스트 어딘가에 숨어 있다.

문득 꺼내들을 때면 나는 자연스럽게 다시 그 시절의 뒷좌석으로 돌아간다.

그 노래는 멜로디보다도 기억을 먼저 불러온다.


”그냥 좋아서”

돌이켜보던 당시 플레이리스트는 어린 자식이 듣기에 제법 거칠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깊은 뜻을 가진 음악도 있었고, 궐기의 정신을 품은 기백 넘치던 노래도 있었다. 나는 자라면서 몇 번씩 그 노래를 들었지만 가수의 다른 노래를 찾아 듣거나 장르에 대해 더 알아보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아버지의 플레이리스트는 사회초년생이 가지기엔 올드한 취향으로 남았다. 그 노래를 좋아하는데 ‘어린 시절에 들었다’라는 말 외에 별다른 끌림을 말하지 못했지만, 굳이 이유를 붙이지 않아도 되는 어떤 끌림이 있었다. 음악은 그렇게 현재 속으로 돌아온다. 어릴 적 스며든 한 곡의 음악, 한 권의 책, 한 장면의 영화는 쉽게 낡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것들은 어느 틈엔가 우리 안에 자리 잡는다. 언젠가 다시 문을 두드릴 때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기억은 여전히 작동 중이다



과거에 좋아하던 걸 다시 접하면 그 시절에 가졌던 감정까지 되살아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문득 떠오른 멜로디 하나가 잊고 있던 장면을 통째로 불러온다거나, 어릴 적 봤던 애니메이션이 여전히 즐겁게 보이는 것 같은 순간. 우리는 과거의 취향을 마주할 때 그 시절의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이런 경험은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다.


실제로 사람의 뇌는 좋아했던 걸 다시 만나면 과거에 느꼈던 감정이 다시 재생된다. 이를 자서전적 기억 회상*(Autobiographical Memory Retrieval)이라고 하는데 이 방식이 무척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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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기록은 글자와 그림, 음성 파일이나 영상으로 기록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도 기억을 떠올릴 때면 머리에 영상으로 재생되거나 텍스트처럼 남은 정보를 찾는 행위를 떠올린다. 그러나 기억은 시간 속에 기록으로 저장되지 않는다. 그 순간의 공기, 냄새, 감정, 그리고 음악 같은 감각들이 함께 묶여 뇌 어딘가에 보관된다. 글로 담아낼 수 없었던 사람의 표정, 영상으로 남길 수 없던 그때의 향기와 감정 같은 것들. 그래서 하나의 자극만으로도 묶여 있던 기억 전체가 되살아난다. 연합 기억*(Associative Memory)의 작용이다.


기억은 시간 속에서 낡지 않는다.

바랜 것처럼 보이는 추억도 돌이켜 보면 여전히 선명한 감정으로 남아 있다. 그걸 알기 때문에 사람들은 한때 좋아했던 것을 다시 떠올리고, 그리워한다. 감정과 맞닿은 기억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나’를 이루는 조각이다. 익숙한 일상 속에서도 문득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별 기대 없던 만남이 어느 순간 오래된 추억을 되살리기도 한다. 취향은 그런 식으로, 조용히 현재를 떠받친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앞으로 남은 현재를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을 가진다. 지금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미래의 나를 지탱해줄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나도 과거의 내가 만들어온 현재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좋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꽤 괜찮은 방향을 갖게 된다.


*_ Conway & Pleydell-Pearce (2000), Rubin & Schulkind (1997), Schacter (1996), Herz & Schooler (2002), LeDoux (2000), Phelps (2004) 내용 참고.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때로는 시간을 내야 한다. 살아온 시간만큼 내가 무엇을 좋아할지 안다는 말은 내가 무엇을 싫어하는지도 잘 안다는 뜻이다. 그리고 싫어하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걸 고르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내 취향의 작품이 생각보다 흔치 않다는데에서 소소한 좌절감을 준다.


그렇게 좋아할 법한 일을 찾아도 그 다음은 여전히 쉽지 않다. 좋아하는 가수의 컴백 소식에 잠을 못 잘 정도로 기뻐했던 건 학생 시절 때뿐이지 성인이 되고 난 이후에는 그렇게까지 하나의 소식에 큰 희비를 표출하지 않게 됐다. 감정이 없어지거나 무뎌진 건 아니다. 그저 성인이 될 수록 여러 감정을 받아들여왔기 때문에, 그 감정을 밖으로 표출할 때도 이전보다는 다듬어졌다 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때때로 나를 슬프게 한다. 이전처럼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하기 어려워졌다는 생각이 들 때에는 내가 나이가 먹었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좋아함의 깊이를 더해가는 방식’이라고 믿는다.

더 이상 격정적으로 휘몰아치지 않더라도, 그저 묵묵히 곁에 두고 오래 지켜보는 감정이야말로 성인이 된 나의 애정이다. 성숙한 감정은 때때로 조용하다. 그 조용함이 감정의 진심을 약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오래 남아 있다는 의미



나는 믿는다.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를 좋아할 수 있다.

어릴 적처럼 작은 소식에 들뜨지 않아도, 뜬 눈에 밤을 새지 않아도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나의 새로운 취향을 늘려갈 수 있다. 단지 좋아함이 조금 더 조용하고, 단단해졌을 뿐이다.


취향은 시간을 먹지 않는다. 그것은 여전히 우리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때로는 과거의 추억이 되어, 때로는 지금의 일상 속 무심한 기쁨이 되어 우리를 버티게 해준다.


그리고 언젠가, 오늘의 덤덤한 ‘좋아함’조차 미래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줄지도 모른다.

그러니 설레는 감정이 아니어도 괜찮다.

꼭 무언가에 푹 빠지지 않아도 된다.

그저 곁에 오래 두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그것이야말로 여전히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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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그리고 그 말은, 지금의 당신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Credits
Writers Choi Ahra, SeukA
Layout Design Park Minjae
Editor Hum
Thumbnail/pic 1,2 한국저작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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