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되어서 이루고 싶은 '방향성' 보다, '자리' 그 자체에 집착하게 하는 이 문장이 싫다.
계속 듣다 보면 "마치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 내가 부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고 "인생의 목표를 부에 두도록" 지향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듣고 싶지 않은 문장이다.
나는 "돈이 무작정 많을수록 좋다"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관리할 수 없는 자본을 소유하는 것'은 부담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그 가치에 대한 '생산성이 없는' 사람에게 '자본의 소유' 행위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지키고 숨겨야 하는' 신경 써야 할 일에 불과하다.
사람을 돈으로 바라보고 접근하는 인간관계가 형성된다면 얼마나 슬플까. 본인이 소비할 만큼의 돈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날파리가 붙을 일도 없고 '돈을 위한 이해관계'가 아닌 '사람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있는 그대로를 보려는' 인간관계가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간다."
나는 어릴 적부터 설치고 내 존재를 티 내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만큼 촐싹거리다가, 안 해도 될 일을 자초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고, 그래서인지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간다."라는 식의 말을 자주 들었던 듯하다.
그럼에도 '생각의 실행'보다는 '실행의 결과'를 중시하는 이 문장이 싫다. 성공적인 결과에 집착한 나머지, 실행 그 자체를 망설이게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실패로 이어질 수 있는 시행착오' 그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내게 필요하다고 느낀다.
"왜 굳이 남의 문제에 나서서 피해를 보려고 하나."
나는 주관이 강한 사람이고 불공정이나 부당함에 대해서 참지 않고 목소리를 낸다. 사람들끼리 문제가 생겼을 때 참견하여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면서, 지인들에게 "당사자가 아니면 간섭하지 말라"는 식의 지적을 종종 듣곤 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는 비용이 따른다. 그리고 해결을 했을 때는 어떤 형태로든 '보람 있는' 가치를 느낀다. 이러한 비용 지불 없이 "다른 누군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라는" 인식은 '굳이 네가 나서지 마라' 식의 교육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사회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사가 앞에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도, 그러한 사람을 보기 힘든 것도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이가 해결사로 나서주길 바라는" 공통된 인식을 우리가 공유하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