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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choice Aug 03. 2023

서퍼들은 늘 파도가 있는 곳으로 떠난다

가자, 다대포로!

서핑을 시작한 후 의도치 않은 여행길에 오르는 일이 많아졌다.


'네, 다음 주에 강원도에서 봬요'

'그래~ 다음주에 보자~'


불과 며칠 전의 안부인사가 무색하게도, 눈을 뜬 지 2시간 만에 강원도가 아닌 부산행이 결정되었다. 이번 주 목요일에 다대포에 아름다운 파도가 올라온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기존 목적지인 강원도에 예고되었던 파도는 사라지고 말았다. 나, 이렇게 갑자기 부산 가도 되는 거 맞아? 라는 의구심이 들 무렵, 부산행 버스표는 이미 결제 완료된 채 내 손에 들려 있었다.


처음으로 혼자 떠나는 부산 여행이다. 그것도 아주 갑작스럽게 결정된. 나는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는 내내 쭈뼛거렸다. 이미 결제된 버스표가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가슴 속에 턱 박혀 있었다. 당장 내일 아침 여덟 시에 혼자 부산으로 떠난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꺼낸단 말인가! 나에게는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일반적인 삶을 살아가는 가족들에게는 퍽 놀랄 만한 일일 것이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동그랗게 토끼눈이 된 가족들의 질문 세례가 이어졌다. 뭐? 내일? 당장? 왜? 꼭 내일 가야 해? 너무 더운데 가더라도 서핑은 안 하면 안되니? 수많은 질문에 답하며 생각했다. 서핑 하는 사람들이었다면.... '파도 있어서'라는 한 마디면 끝났을 텐데!




서퍼들은 늘 파도가 있는 곳으로 떠난다. 열정 있는 프로 서퍼들이 대표적이다. 서울에서 양양으로, 양양에서 고성으로, 고성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포항으로, 제주도로, 파도 없는 날엔 시흥 웨이브파크로. 오로지 파도를 따라 그들의 목적지가 정해진다.


일반 직장인 서퍼들도 예외가 아니다. 파도 예보를 따라 주말 행선지가 달라진다. 연차를 내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달려가고, 매 주말 강원도로 향한다. 때론 충청남도의 만리포로 떠나기도 한다. 수원의 한 오닐 매장에서 서핑 용품 할인을 했던 날엔 직장 반차를 쓰고 달려가는 사람들도 여럿 보았다. 그날 그 매장은 하루종일 전국 여기저기서 모여든 서퍼들로 북적였다고 한다.


서핑을 하는 사람들은 떠나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우리는 바다의 컨디션이 매일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세상을 휩쓸어버릴 듯한 쓰나미같은 파도가 들이친다 해도, 내일은 고요한 호수처럼 잠잠해 질 수도 있는 게 바다다. 좋은 파도가 예보된 바로 그 날이 아니면, 언제 다시 그런 파도가 올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좋은 파도가 거의 확정되는 날이면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같은 장소로 떠난다.


파도를 따라간다는 건, 인생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기회들 중 하나를 붙잡는 것과 같다. 우리는 왜 떠나야 하는지, 언제, 어디로 가야만 하는지를 명확히 알고 있다. 살아가면서 운명 같은 순간을 만나려면, 때로는 망설임 없이 행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지 않을까.


어떤 이에게 서핑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새로운 삶을 열어주는 통로가 된다. 지금껏 살아왔던 세상과는 다른 것을 볼 수 있는 삶을. 만날 일 없던 이들을 새로운 인연으로 연결짓는 삶을. 궤적을 벗어나 진짜 나에게 가까워지는 삶을. 파도를 통해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삶을.


그리고 내일 나의 삶은 처음 가 보는 부산 다대포에서 이어지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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