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서핑 트립 2일차
새벽 네시 반. 조용히 울리는 휴대폰 진동소리에 눈을 떴다. 게스트하우스의 다른 사람들은 아직 곤히 잠들어 있었다. 나는 최대한 발소리를 죽이며 이층 침대에서 내려와 선크림, 슬리퍼, 래쉬가드 등 필요한 물건을 챙겨 나왔다. 일출 서핑을 하려면 지금 바다로 나가야 했다.
서핑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매일 일출 30분 후, 일몰 30분 전이다. 이 규칙은 어느 계절이나, 어느 곳에서나 같다. 창 밖으로 잔잔하게 밝아 오는 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서핑은 어쩌면 정말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행위다.
서핑을 하는 데 있어서 사람이 관여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사람이 정한 기준이 아니라 오로지 해와 달, 바다의 움직임으로만 서핑을 가능케 하는 모든 환경이 조성된다. 해가 뜨면 바다에 들어가고, 달이 끌어당겨 만든 파도에 올라탄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태풍처럼 자연이 성나 있을 때는 바다에 들어갈 수 없다.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않고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 '자연(自然)' 그 자체에 몸을 내맡기는 것이 서핑의 의미 아닐까.
얼굴과 팔에 선크림을 바르고,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서핑샵에 내려가 리쉬를 하나 챙겼다. 혹시 늦을까 싶어 종종걸음으로 바다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라 공기가 꽤 선선했다. 아직 새벽 다섯 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미 열댓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바다 위에 있었다. 다대포는 일출 서핑을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 정말인 듯 했다. 나는 어제 미리 봐 두었던 자리에 라인업을 잡고 말랑말랑한 아침 파도를 탔다. 몸을 좀 더 앞으로 기울이고, 두 팔로 꾹 눌러주면 부드러운 파도가 나를 태우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몇 개의 파도를 잡아타는 동안 해가 뜨기 시작했다. 서핑을 하면서 만나는 수많은 순간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이 때만큼은 바다에 떠 있는 모두가 파도잡기를 멈춘다. 바다 한가운데 앉아서 수평선 너머로 둥그렇고 빨간 해가 떠오르는 걸 보고 있으면,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이 든다. 나는 그것이 어쩌면 '살아있다는 감각' 같았다.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되는 가슴 먹먹한 감각.
오늘의 일출은 더욱 특별했다. 해와 달이 정확히 반대편에, 동시에 떠 있었기 때문이다. 왼쪽 하늘에서 빨갛게 해가 떠오르는 동안 오른쪽 하늘에서는 보름달이 서서히 저물고 있었다. 그리고 해와 달의 바로 가운데에 우리가 있었다. 우리는 해와 달을 양쪽에 두고 계속해서 파도를 탔다. 이런 순간을 눈에만 담아야 하는 것이 아쉽다. 그러나 순간을 스쳐 지나가게 그냥 두는 것도 서핑의 일부일 것이다.
일출 파도를 타는 동안 나는 죽음에 대해 여러 번 생각했다. 조금 힘든 시기를 견뎌내고 있기 때문이다. 밀려가는 파도에 몸을 싣는 동안 이대로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핑을 시작한 이후 인생 전체가 파도 위에 올려진 것처럼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 울고, 웃고, 힘들고, 예상치 못한 여정이 계속된다.
그러나 안개 같은 삶 속에서도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히 느껴진다. 서핑을 통해 나는 진짜 나 자신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성공과 일을 좇았던 인생의 많은 기준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살면서 이렇게 힘든 시기를 만나본 적 없지만, 서핑 이후의 삶이기에 더욱 아름답다. 어쩌면 이 힘든 시간들은 서핑이 지속 가능한 형태로, 호흡처럼 자연스럽게 내 삶에 심어지기 위해 필요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살아갈 의지를 잃는 순간조차도 파도에 실어 보내자. 그저 내가 될 수 있는 시간들로 삶을 채워 나가자. 그런 마음에 화답하듯, 다대포 파도는 따뜻한 물살에 나를 몇 번이고 태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