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이건 주말이건 바다에 떠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전국 해변의 CCTV를 볼 수 있는 어플들이 있다. 서핑을 시작한 이후, 나는 바다에 가지 못하는 날이면 휴대폰 화면으로라도 바다를 들여다보고 섭섭한 마음을 달래곤 했다. 실시간으로 살아 움직이는 바다를 보고 있으면 마치 거기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어플을 사용하면서 발견한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낮이고 밤이고 평일이고 주말이고, 서핑보드와 함께 바다를 둥둥 헤엄치는 사람들이 수십 명이라는 것이다. 정말 매일 모든 곳에 서핑하는 사람들이 떠 있다.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그런 장면을 보고 있으니 이런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서핑하는 사람들은 일 안 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서퍼들도 서로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한다. '저 사람은 일 안 하나?'라는 생각. 다만 서로 소리내어 묻지 않을 뿐이라고.
이번에 부산 다대포로 서핑트립을 갔을 때의 일이다. 평일 새벽 5시에 일출 서핑을 나온 수십 명의 서퍼들을 보면서 이 사람들은 다 뭐 하는 사람들인가 싶었는데, 그 중 몇 명과 우연히 친해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내가 만난 노랑이 씨와 귤모자 씨에 따르면 부산 로컬들은 새벽 서핑 후 출근을 통해 서핑과 일의 균형을 맞춘다고 한다.
� 본인의 노란색 왈든 보드와 같은 색의 농구티를 입고 서핑을 즐기는 노랑이 씨는 거의 매일 5시부터 7시까지 두 시간 정도 서핑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 샤워한 뒤 바로 출근해야 한다고. 서울에서 새벽 수영을 하는 직장인들과 비슷한 삶인 것 같았다.
��♂️ "아~~~ 하나만 더 타고 출근해야 하는데 큰일났↗네!" 귤처럼 생긴 모자와 구수한 부산 사투리로 라인업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귤모자 씨는 유연근무가 가능한 회사에서 일한다. 출근 시간을 10시~10시 반 정도로 정해두고, 새벽부터 출근 전까지 아침 서핑을 즐기는 것이 낙이라고 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서핑한다고. 그런데 자신은 아침 서핑을 해도 해도 충분하지 않다며, 오늘 하루종일 서핑할 수 있는 내가 부럽다는 말을 덧붙였다. '출근 늦었는데 큰일났네, 저는 딱 하나만 더 타고 갑니다'라며 호탕하게 웃던 그는 무려 1시간을 더 바다에서 머무른 후 유유히 출근길에 나섰다. (딱 하나라면서요....)
노랑이 씨와 귤모자 씨를 보면서, 문득 도시와 바다가 공존하는 부산에서의 삶이 부러워졌다. 서핑과 출근이 함께 이루어질 수 있는 삶. 서울에서라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부산에서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
반면 강원도에서는 서핑을 위해 본인의 삶을 더욱 익스트림한 방식으로 전환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서울에 있는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바다 앞의 주택을 구입해 사는 사람. 서핑샵을 차린 사람. 서핑샵에서 직원으로 일하는 사람. 보드를 수리하거나 만드는 사람. 강원도에서 공무원이나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아침-저녁으로 서핑을 즐기는 사람. 완전 재택근무가 가능한 회사를 선택한 사람. 연차를 내고 평일 서핑을 즐기는 사람.
매일 바다에만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서퍼들도 일을 한다. 다만 K-직장인으로 대변되는 일반적인 삶과는 조금 다른 모습일 뿐이다. 이들은 책임감 있는 삶과 서핑을 동시에 지속하기 위해서 특별한 삶의 형태를 감당하고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