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통
여러분, 안녕하세요? 거의 반 년만에 다시 인사를 드리네요. 모두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시간이 참 쏜살같아요. 저는 잘 지내다와 못 지내다 사이에서, 그래도(아마도) 잘 지내고 있다 쪽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보내주신 사랑과, 지지와, 걱정의 조각들 덕분이겠죠. 한 걸음 떼고 나면 울컥 눈물이 쏟아지는 날들이 여전히 있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나아가고 있습니다.
재처럼 다 타 버린 회색 겨울을 보내고 나서 문득 눈을 돌려보니 꽃이 피었더라고요. 참... 모르는 사이에 그새 봄이 왔습니다. 이럴 때 사람은 결국 자연 속 일부일 뿐인걸까란 생각이 드네요. 내 상황, 마음과는 상관없이 주변 모든 것들이 그저 때가 되면 죽고, 다시 살아나고, 그렇게 물처럼 흘러간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해요. 문득 눈시울이 붉어질 때마다 나도 그 중 하나일 뿐이라고. 때가 되면 이 순간도 지나간다는 사실을 가슴에 욱여넣으며 버티고 있습니다.
몇 줄 되지도 않는 문장을 적는데 올라오는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입술을 꾹 깨물게 됩니다. 그러면서 아직 힘든 순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체감합니다. 그래도 몇 가지 변화는 있습니다. 예전처럼 길가의 작은 생명들에 귀 기울이고, 가슴 전체로 차오르는 따뜻한 감정들을 만끽하는 날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산책을 하다가 햇살이 따끈하게 비추는 그네 의자에 앉아서 생각하다 졸기도 합니다. 봄이 와서 저도 저절로 회복되는 과정인 걸까요. 잘 견뎌내줘서, 잘 버티고 있어줘서 스스로에게 감사하다 싶은 마음이 많아지는 날들입니다.
힘든 생활이 시작된 게 딱 작년 이맘때 쯤이었는데요. 컴퓨터 앞에 앉아 하루종일 자책만 하던 그 때, 이겨내보자고 일어섰다 한 걸음만에 주저앉아 흐느껴 울었던 그 때, 강해져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다 무너지기를 반복했던 그 때가 여전히 엊그제 같아 가슴이 먹먹합니다. 몇 개월을 매일같이 울던 저를 보며 조이가 '도대체 먹지도 못하는데 그 작은 몸 어디에서 계속 눈물이 나오는 거냐'고 물었었죠. 그 때 살면서 흘릴 눈물은 다 흘렸다 싶었는데, 여전히 눈물이 나오고 있습니다. 대체 뭐가 그렇게 힘든 건지 스스로도 궁금했어요. 이제는 지난 십여년간 경쟁에서 버티기 위해서, 홀로서기 위해서, 더 많은 일을 잘 해내기 위해서, 즐겁다고 생각하며 성취했던 많은 일을 이루어내는 동안 사실 내가 굉장히 힘든 부분이 있었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년 여름, 그쯤 되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야 한다는 친구들의 말에 강원도로 떠나는 짐을 쌌었는데요. 그때만 해도 이게 맞나? 싶은 마음이었는데, 이제는 참 잘했던 선택이라고 여겨집니다. 많이 웃었던 시간이었어요. 여전히 내일이 되어도 해야 할 일을 해내지 못하고, 아무리 좋은 시간을 보내도 즐겁지 않고, 밥 먹으라는 한 마디조차 스트레스와 압박으로 느껴지는 내 자신이 두렵고 무섭지만 이제 이 터널의 끝이 보인다는 확신이 듭니다. 아직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날보다 못하는 날이 더 많지만, 과거의 내가 조금씩 이루어 놓은 것들을 발판 삼아 계속 앞으로 나가고 있는 덕분이겠죠.
지나온 반 년의 시간이 삶에 꼭 필요한 성장통이었다고. 이 한 문장을 적을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이 필요했는지 모릅니다. 덕분에 나에 대해 알게 된 것들도 많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내 말이 옳았다는 걸 알게 될거야', '그게 아니야,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게 맞잖아'라고 말하면서 나를 다그치는 사람들 앞에 그렇다고 대답하며 나는 더 많은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는 것. 나는 결과와 상관없이 스스로 선택하고 즐거움에 파묻히는 과정 속에 가장 많이 웃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성공을 위해선 참고 인내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보다는 내 생각을 마음껏 꺼내놓고 뛰어놀다 지쳐 쓰러져도 괜찮다 말해주는 사람들 속에서 행복하다는 것.
4월의 서간문을 마치며 김형태 작가의 문장을 전해 드립니다.
"깊이 앓으십시오. 앓음답도록, 아름답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