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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의미

Education for ALL

by rechoice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꿈이 있으신가요. 제게는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변하지 않았던 꿈이 있는데, 혹시 너그러운 마음으로 끝까지 읽어주실 수도 있을까요. 간단하게는 다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Education for ALL

2) 더 많은 사람들이 명확한 자아정체감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형성하고, 높은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가지며, 자신의 삶에 자랑스러움과 보람을 느끼면서 살아가도록 지원하는 것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최근에 제가 의미있게 읽은 책 중에「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라는 책이 있었어요. 거기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가난을 겪는 학생들의 삶에서 공부나 성장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p.9)

우빈 같은 가난한 청소년들에게 "겨우 그것밖에 꿈이 안 되냐", "대학은 가야 한다", "더 크고 긴 안목으로 생각해야지", "현재에 안주할거냐"고 얘기하기 어렵다. (p.208)


저는 중학교 때부터 저소득층 가정 아동, 어린이병동 환우, 장애아동, 입양아 등 소외계층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봉사활동을 거의 쉬어 본 적 없습니다. 그런 저에게 위 문장들은 책 속의 글자가 아니라, 제가 직접 보고 듣고 만나온 어떤 아이들의 생생한 얼굴로 그려져요. 중학교 때부터 아픈 부모님을 대신해 막노동을 뛰어야 했던, 학원은 꿈도 못 꾸고 밤 9시까지 학교에 남아 저를 튜터로 삼고 공부해야 했던 아이들이요.


당장 눈앞의 삶을 위협하는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에게, 교육에서 말하는 '학습', '성장', '모두를 위한 맞춤형 교육'과 같은 키워드는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합니다. 정서적인 상처로 인해 학습 또는 삶 전체에 대해 무동기 상태가 되는 경우도 흔해요. 언젠가 저도 '모두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꿈을 꿔 본 적 있지만, 제가 피부로 겪어 온 아이들 앞에서는 '원하는 것을 찾으세요', '재능을 발견하세요' 따위의 생각조차 오만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사람으로 먼저 다가서자


학부 시절 전공으로 사범대의 교육계통이 아닌 발달심리학을 선택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습니다. 더 많은 아이들에게 다가서고, 그들 안에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교육, 공부, 성장' 키워드가 아니라 다양한 심리 상태에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자는 말보다, 마음 속 상처를 먼저 이해해 주고 나와 신뢰 관계를 형성하면 그제서야 아이들은 반응을 보이곤 했습니다. 우리 사회에 이들을 위한 더 나은 사회적 네트워크, 포용력, 관심, 인내심, 너그러움이 필요한 이유예요.


저는 어렵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사람은 결국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고 믿습니다. 인간적으로 다가서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고, 이것의 확장성을 높이기 위한 다음 스텝이 교육이라고 믿고 있어요. 정치와의 유착이 심한 한국 교육계에 때로 환멸을 느끼면서도 결국 교육을 사랑하게 되는 이유인 것 같아요. 돌아서려 해도 결국 제 길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이고요.


많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치유해오면서, 제 꿈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정리되었습니다. 더 많은 아이들이 모범적이지 않고 공부를 못해도 되니까, 한 '인간'으로서 자아정체감을 잘 형성하고 삶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으로 자라는 것. 하고 싶은 일을 안 찾아도 되고, 환경적 이유로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되었을 때에도 자신의 삶에 자랑스러움과 보람을 느끼면서 꾸준히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것. 실패하더라도 금세 회복하고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것이요. 아이들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라면 더 좋고요.



더 나은 사람들을 키워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저는 평등이란 단어를 별로 좋아하진 않습니다. 태어나고 주어진 환경과 조건이 다른데, 평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평등하지 않은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에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높은 회복탄력성을 갖출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저는 그게 '스스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크고 작은 성취감의 지속적인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설계할 수 있다면, 무의식적으로 삶에 배어들 수 있도록 seamless한 설계가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저에게 그런 경험의 설계는 결국 모든 사람에게 성취의 장벽을 섬세하게 낮춰주는 일, 즉 성취의 '접근성'을 높여주는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예를 들면 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는 다른 아이들과 비슷한 수준의 성취를 혼자 할 수 있도록 보조 기술을 제공한다던지, 시니어 학습자의 학습 경험을 설계할 때 신체적, 인지적 한계를 구체적으로 고려한다던지요. 또 특별한 어려움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맞춤형(adaptive) 경험의 설계가 더 섬세해졌으면 합니다.


이런 일이 가능하려면 교육과 학습의 경험을 설계하는 사람이 더 섬세하고, 작은 것을 볼 줄 알아야겠죠. 제가 UX 분야, 일본의 장인들, 애플 디자이너들의 관점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입니다. 접근성과 포용성을 섬세하게 고려해 도시 축소를 시도한 일본의 도야마시 같은 사례를 눈여겨보는 이유입니다.


언젠가는 제가- 더 다정한 마음과 감도 높은 섬세함을 기반으로 모두를 위한 학습 경험을 설계하고, 그 설계를 통해 사람들이 긍정적이고 회복탄력성이 높아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마음에 여유가 많아진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 기꺼이 손 내미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너무도 그러고 싶습니다. 어쩌면 세상에 대단한 사람은 없지 않을까요. 원하는 것을 못해도,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더라도 행복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여유가 많은 세상이면 좋지 않을까요. 저는 그저 그런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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