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전 피와 권력의 드라마를 쓰다 '화랑세기'

by In My Library

[화랑세기]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신라시대 화랑도의 우두머리였던 32명의 풍월주의 출생과 일대기를 다룬 기록이다. 저자는 28대 풍월주를 지낸 오기공이나 그의 아들 김대문이 이어받아 681년 687년 사이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화랑세기는 삼국유사 그리고 삼국사기와 더불어 한반도의 고대 3국 시대의 사회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역사자료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 진실성 여부에 대하여 비판을 받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화랑세기가 발견된 곳은 한국이 아닌 일제강점기 일본에서였다. 아마 도굴꾼들을 통해 일본으로 팔려 나간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1923년에서 1944년 사이 어디쯤 궁내성 서릉부 도서료의 조선관계 전고조사 담당자의 촉탁을 받은 박창화라는 사람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어느 일본인의 집에서 발견한 책을 필사한 것이라고 한다.


현대의 시각으로 보자면 자유로운 사회상에 다소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과거 한반도에 위치했던 초기 국가의 귀족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고 생각한다. 그 묘사는 생각보다 구체적이며, 이상하게 계속 읽게 되는 묘미가 있었다.

과거나 지금이나 권력은 막장 드라마와 다르지 않다. 인간의 속성이 변하지 않는 한 그 시작과 끝도 다르지 않다기에 결국 역사는 언제나 반복된다.

신라를 한반도 삼국시대 통일의 주역으로 이끌었던 화랑. 우리는 화랑도를 인재양성기관으로 배웠지만, 그건 외형적 목적이었을 뿐, 국가 권력의 중심을 차지했던 그들은 군인이자 정치인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 비교하자면 육군사관학교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심지어 권력과 분파의 서사 또한 현대의 그것과 절대 다르지 않다.


젊은과 아름다움을 신봉했던 '선도'

이 책을 보고 적쟎이 충격을 받았던 부분인데, 고대 신라의 자유분방함이었다. 내가 받는 충격은 아마 서양인들이 고대 로마시대의 실상을 보고 충격을 받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배웠던 그것과는 사뭇 다를 수 있다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불륜, 동성애, 정치, 음모 모든 것이 당연한 듯이 자행되었던 곳. 그곳이 바로 신라의 서라벌이었다. 물론 그 중심엔 ‘왕궁’이 있다.


화랑은 ‘선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 시작은 고대 중국의 연나라 부인들이 선도를 좋아하여 미인들을 양육했는데, 그 풍습이 동쪽으로 건너온 것이라고 하며, 화랑 전에는 여자로 이루어진 ‘원화’라는 집단이 있었다.

원화는 법흥왕의 딸이자 진흥왕의 어머니였던 지소태후에 의해 폐지되고 여자 대신 남자로 이루어진 화랑이 세워지게 되었다고 한다. 원화의 폐지에는 질투와 살인이라는 원인이 있다.

이처럼 1대 위화랑의 이야기부터 ‘이런 막장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현대 사회에서는 TV에서 조차 보기 드문 사건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들의 드라마에는 악의가 아닌 명분이 있다. 바로 신라시대 골품제에 얽혀 있는 ‘피’.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정말 1500년 전 신라에 꼭 들어맞는 말이다.


대원신통 그리고 모계사회

고대 신라의 여자의 역할은 요새 말로 하자면 ‘하찮고도 소중했다.’

바로 혈통과 골품제 때문이었는데,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로 유명해진 미실은 진정 신라시대 초기 시대의 권력가로 부, 자, 손, 즉 아버지 아들 그리고 손자까지 3대에 이르는 왕을 모셨다. 실제 아내의 역할로 모셨다는 말이다.

미실의 역할에서 알 수 있듯이 신라시대의 여자의 가장 큰 역할은 여느 고대사회와 다르지 않게 아이를 낳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귀족층에서 그림자 권력으로서 여자들의 힘이 막강해진 데에는 바로 혈통을 지키고자 하는 풍습이 그 바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

‘대원신통’이라는 핏줄을 지키기 위함이었는데, 대원신통이란 왕과 결혼을 할 수 있는 여자를 공급하는 혈통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왕을 만들어 내는 여자들이다. 모든 막장 드라마는 바로 왕의 피와 대원신통의 혈통을 지키기 위함이었으며, 그 대원신통 권력의 정점에 군림했던 사람이 바로 미실이다.


인물열전 혹은 가족 잔혹사?

혈통에 대한 집착이 워낙 강했던 것일까? 그들의 모든 권력 또한 혈연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신라시대 최고의 인재라고 볼 수 있는 풍월주들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결국 하나의 큰 가족의 이야기였다.

태초부터 왕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정해져 있고 그 왕비가 될 수 있는 혈통이 정해져 있었으니 32대 마지막 풍월주까지 따지고 보면 모두 같은 조상 아래의 후손들이다.

과거에는 근친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지만 신라 같은 경우는 그 유례를 찾기 쉽지 않을 것 같다. 근친을 뛰어넘어 그냥 ‘피의 역사’라고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혼맥’은 곧 권력과 직결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선덕여왕의 남편이었던 13대 풍월주 용춘공에 이르러서야 골품이 아닌 능력 위주의 인재 채용이 이루어졌으며 그럼에도 용춘공 또한 첩에게서 얻은 딸이 18명이 있었다. 15대 풍월주 유신공의 두 여동생은 한 명은 무열왕 (18대 풍월주 춘추공)의 정실부인으로 또 한 명은 무열왕의 첩으로 시집을 갔다.

이 대목은 권력이혼맥을 통해 유지 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는 현재에 이르러서도 다소 유효한 부분이라고 생각이 된다. 그리고 훗날 반정을 일으키며 화랑도를 폐지시킨 가장 큰 원인을 제공했던 김흠돌은 김유신 장군의 여동생의 아들, 다시 말하면 여동생이 춘추공에게 첩으로 들어가기 전에 얻은 아들이다. 무열왕은 자신의 아들이었던 문무왕의 부인 자의, 즉 자신의 며느리의 어머니와 후에 정을 통해 아들을 낳기도 한다. ^^;;;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가 정말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를 누렸는데, 화랑세기의 내용은 실제로 그 이상으로 자극적이며 놀라움의 연속이다.

화랑제도는 교육을 넘어 인맥을 만들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장소였다.


하지만, 여기서 이 책을 읽기 전에 가져야 할 자세 두 가지를 말해 두고 싶다.

지금 우리의 삶의 체계와 다르다고 하여 그들을 문란하다는 관점으로만 보면 안 될 것이다.

그 시절엔 그만큼 혈통과 골품이 중요한 가치였으며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최고의 배경이었던 것이다. 비록 시기 질투로 인한 비극적인 사건들이 많이 있었지만, 비정상이라는 것은 우리의 관점이지 그들의 관점이 아니라는 열린 마음이 필요할 것 같다.

두 번째는 족보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관계 하나하나를 이해하면서 보다가는 중도에 하차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구나’하며 이야기 책을 읽는 마음으로 가볍게 읽을 것을 권하고 싶다. 원래 팩션이나 대하소설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 등장인물이 너무 많다는 것인데, 화랑세기는 그 많은 인물이 심지어는 혈연으로 불륜으로 얽히다 보니 더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100년 권력의 끝

화랑은 32대 풍월주까지 배출하였으며 김흠돌의 난 이후 문무왕의 비였던 자의왕후에 의해 폐지된다. 하지만 지방에서는 그 명맥이 계속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나중에 ‘국선’이라는 이름이 다시 정계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 외형을 완전히 뿌리째 없애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100여 년의 시간 동안 화랑이라는 조직이 국가의 안보에 그리고 정치에의 기여도 또한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권력이 정점에 달하면 타락하기 마련이다. ‘권력’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권력을 탐하고 시기하는 인간의 욕망이 조직을 썩게 만드는 것이다. 현대사에서 우리는 이미 되풀이되는 권력의 속성을 수없이 겪어 왔다. 결국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사는 인간이 써내려 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신라시대에는 ‘혈통’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며 ‘파’가 나뉘었다.

요즘은 어떤가?

과거에 비해 현대의 이익 구조는 훨씬 복잡해져 버렸다. 세대 간의 이익이 틀리며, 성별 간의 이익이 다르고, 정당 간의 이익이 다르며, 업종간의 그리고 지역 간의 이익이 다르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다양화된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큰 혜택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현재를 불행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누구도 ‘피’나 ‘뼈모양(골품)’때문에 할 수 없다는 말을 듣지는 않는다. 적어도 아주 작은 기회정도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장담하건대 흙수저가 부자 될 가능성이 그 옛날 천민이 부자가 될 가능성보다는 훨씬 큰 것이다.


세속오계
첫째 사군이충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고
둘째 사친이효 효로써 부모님을 받들며
셋째 교우이신 믿음으로 벗을 사귀고
넷째 임전무퇴 전쟁에서는 물러서지 않으며
다섯째 살생유택 살아있는 목숨을 함부로 하지 말고 가려서 하라

화랑도의 세속오계는 귀산과 취항이라는 두 화랑이 원광대사에게 가르침을 청하여 받는 계율로 후에 화랑도의 근본사상이 되었다. 원광대사는 화랑도의 4대 풍월주 이화랑과 진흥왕의 왕비 숙명왕후의 불륜으로 태어났다. 뛰어난 인재였던 원광대사는 당나라에 유학을 다녀와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황룡사의 주지로서 신라불교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화랑세기', 과거의 인재가 궁금해서 읽기 시작한 책인데, 오히려 그들의 역사를 통해서 지금의 우리를 반추해 보는 시간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역시 무엇보다 ‘막장’의 요소가 책을 계속 읽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건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이거 뭐지?' 하면서 계속 읽게 되었다. 이 또한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일까?


지은이 김대문은 28대 풍월주 오기공의 아들이다. 화랑세기 외에 고승전이 유명하며 신라신대의 역사가 중 가장 알려진 학자이다. 성덕왕 3년 704년에 한산주의 도독이 되었으며, 4권의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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