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인배의 군자로 거듭나기
나의 바둑에 대한 기억은 부모님의 싸움으로 귀결된다.
바둑을 너무나 좋아했던 우리 아버지는 기원에만 갔다 하면 귀가하는 것을 잊어버리시곤 했다. 80이 넘으신 지금도 온라인 바둑게임에 주무시는 걸 잊어버릴 정도이니까, 젊은 시절은 말해 뭣하리.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바둑이 그렇게 좋으면 나가서 바둑으로 돈을 벌어 오라고~!!!”
바로 거기. 어머니의 잔소리. 나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바둑’은 어머니 말씀처럼 돈 안 되는 놀이었던 것이다. 물론 바둑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며 이름을 드날리고 돈을 버신 분도 많지만, 그들은 특수한 경우이고, 바둑은 역시 평범한 어린 나에겐 그저 돈 안 되는 놀이이자, 가정의 불화를 일으키는 몹쓸 게임이었다.
어쨌거나 이런 환경 덕에 바둑을 너무나 사랑하는 아버지가 곁에 계셨지만 우리 남매는 ‘돌’을 정말 ‘돌’ 보 듯이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 내가 갑자기 바둑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한 이유.
세상을 살아가는 데 좀 더 현명한 판단을 하는 데 그저 도움이 될까 싶어서이다. 이제 와서 시작하기엔 너무 단순한 이유인가? 하. 하. 하.
나는 무협 드라마를 무척 즐겨 보는 편인데, 늘 빠짐없이 나오는 장면이 바로 바둑 두는 장면이다.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판세가 어쩌고 저쩌고…’, ‘바둑돌이 어떻고 저떻고…’
그렇다. 드라마 속 대단한 군자들과 선인들은 늘 바둑판을 앞에 두고 인생과 세상을 논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들은 해답을 찾아내고 만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둑을 두면 그 속에 정말 지혜가 있을까? 복잡한 이 삶에서 보다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데 진정 도움이 될까?
어릴 때는 내가 자라면 정말 대단히 똑똑한 사람이 될 줄 알았다. 세상을 멋지게 살 거라고 믿었다. 30대가 되자 중년이 되면 그래도 좀 더 현명해지지 않을까 기대하며 지혜롭게 모든 난관을 헤쳐 나가는 나의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인생의 난이도는 나이와 함께 계속 올라간다. 답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어려운 인생 숙제가 한가득이다.
밑도 끝도 없는 선택의 순간에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냐며 하늘을 원망하는 일도 한 가득이다.
식견이 좁고 소심한 소인배인 나에게 세상살이는 이처럼 너무도 어렵다.
바둑판 안에 인생이 있다고들 말한다. 바둑판 안에서 이리저리 맴도는 소인배가 아니라 판을 읽을 수 있는 현명한 군자로서 살고 싶다. 무협 드라마 속 선인들처럼 말이다.
물론, 바둑을 그토록 열심히 두셨던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지혜롭게 세상을 사셨는가를 되짚어 볼 때 바둑과 인생의 관여도에 대해 깊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지만, 그래도… 내가 알지 못하는 그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기대를 가져본다.
적어도 지금 보다야 더 현명해지지 않을까? Better me를 꿈꾸며 '군자'로서의 삶을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