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마 : 싸움의 규칙

오늘부터 바둑 (2일)

by In My Library

바둑판 위에서 돌의 움직임을 ‘행마’라고 한다.

기본적으로는 선들이 교차하는 교차점 위에 돌을 놓아야 하며, 움직이는 법으로는 뻗음, 마늘모, 한 칸, 날일자, 두 칸, 눈목자, 밭전자, 빈삼각 등 8가지가 존재한다.


튼튼하게 세를 불리고자 한다면 ‘뻗음’을, 발 빠르게 세를 넓히고자 한다면 ‘한 칸’ 혹은 ‘날일자’ 행마를…

‘두 칸’ 행마는 권하지 않는다지만, 분명 존재의 이유가 있을 터, 쉽게 말하면 이 들은 바로 싸움의 규칙들이다.

행마.jpg 바둑 : 행마


상황에 따라 목적에 따라 이를 적절히 응용해서 더 많은 세를 가지는 쪽, 즉 ‘집’을 더 많이 지은 쪽이 승리하게 된다. 이렇게 보면 바둑은 참 단순한 게임이다. 2500년 전 중국에서 시작된 이 게임은 10⁷⁶⁰ 만큼의 수가 존재한다고 하는데, 규칙도 목적도 그에 비하면 정말 단순하다.


‘돈’ 많이 버는 게 최고의 미덕일 수 있는 ‘사업’은 그런 면에서 바둑을 많이 닮아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사업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 그 또한 단순하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한 방법과 전략은 무궁무진하니 말이다.

사업에서의 행마라면 아마도 ‘장사’가 아닐까? 팔고 사는 과정에서 이윤을 남기는 것, 그리고 이윤을 통해서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것.

마찬가지로 ‘장사’에는 규칙이 존재한다. 관련법을 준수해야 하고, 공정하게 경쟁해야 하며, 사기 치면 안 되고 등등등...


하지만, 행마에 있어서 가장 중시되는 것은 이런 규칙들이 아니었다. 행마의 진정한 목적은 바로 ‘효율성’의 추구이다. 생각보다 바둑은 냉정한 게임이더라. 행마를 배우면서 바둑이 무엇보다 합리성과 효율성을 중시한다는 사실에 좀 놀랐다.


며칠 전 ‘소주전쟁’이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행마를 배우며 이 영화가 떠올랐다.

이 영화는 1997년 IMF외환위기 당시 ‘진로소주’의 실화를 다룬 이야기이다. 영화 중 등장하는 유명 외국 투자은행은 골드만삭스이며 그들은 비열하다면 비열한 방법으로 헐 값에 진로소주의 경영권을 확보하고 채권단을 선동, 비싸게 하이트(당시 크라운 맥주)에 팔았다. 영화에 따르면 5년 만에 그들이 남긴 수익은 600%, 10억 달러가 넘는 금액이라고 한다.


바둑식으로 표현하자면 그들의 행마는 대단히 효율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왜냐면 악수일지라도 그들이 규칙을 위반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많은 사람들이 모럴 해저드를 들먹이며 비난하지만, 싸움의 세계에서의 승부란 그런 것이다. 때 늦은 비난은 그저 그때 ‘다른 수를 뒀어야 하는데’ 하며 후회하는 것이 전부이다.


내 인생 처음으로 두어 본 9줄짜리 판에서 '당연히' 패했다. 동시에 행마의 8 규칙에 연연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행마의 목적은 규칙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효율적으로 집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다. 그런데 왜? 난 돌의 움직임에 그렇게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되었을까! 결국 싸움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이기는 것인데 말이다. 한 칸이든 두 칸이든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소주전쟁’에 이런 말이 나온다.

"좋은 사람이 되던지 돈을 벌던지 둘 중 하나만 하라고! 둘 다 하려고 하지 말고…"


진짜 행마의 목적은 잊은 채로 그 규칙에 사로 잡혀 전체를 놓치는 것처럼 우리들 대부분은 이것저것, 어쩌면 너무 많은 것에 신경을 쓰면서 살아가느라 정작 무엇이 중요한지는 까맣게 잊고 있을지도 모른다.

행마를 통해 배운 싸움의 최고 규칙, 바로 ‘효율성’이다. 그리고 효율성은 생존을 위한 삶의 최고의 규칙이기도 하다. 사는 것도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 나의 에너지를, 자원을 잘 분배하고 낭비 없이 사용해야 한다. 그래야 이번 판에서 이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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