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5 토론토에서 101명 만나기
숙소가 Burlington에 있었기 때문에
Toronto에 가기 위해서는
항상 Gotrain이라는 기차를 타야 했다.
배차시간이 자주 들쭉날쭉해서
항상 'Sucks!'라고 욕을 먹는
Toronto 지하철에 비하면
대체로 시간을 잘 지키는 편이었다.
Burlington에서 Toronto까지는
45분 남짓.
기차를 타고 이동하다 보면,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Tony는 비어있던 내 옆좌석
건너편에 앉아있던 Canadian이었다.
대부분의 승객들이 그렇듯이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메트로를 펼쳤다.
젊은 사람들은 핸드폰을 보지만,
중장년층 이상의 사람들은 대부분
메트로 뒷면의 낱말 맞추기나
스도쿠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또한 스도쿠에 열중하고 있었다.
"저기... "
초상화를 그려주고 싶다고 말을 건넸다.
기차 안에서 말을 건넨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표정의 변화 없이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마음대로 하렴."
표정에서 완고함이 느껴지고,
말투에서 깐깐함이 배어 나왔다.
당연히 'No'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그는 다시 스도쿠의 세계로 돌아갔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는 내가 그를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그림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건너편 자리에는 기차에 타자마자
끊임없이 수다를 떨던
3명의 할머니와 1명의 아주머니가 있었다.
공공장소에서 저렇게 떠드는 건
매우 드문 일인데,
뭐 할머니들이니까.
"Brian이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 누가 알았겠수?"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어요.
다들 눈치를 못 챘을 뿐이죠."
역시 어딜 가나 남의 이야기는
수다라는 술에 좋은 안주가 된다.
할머니들의 수다가 너무 적나라해서,
Brian이 친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Brian은 Hamilton에 사는 30대 남성으로,
얼마 전 마을이 떠들썩할 만큼 큰 사건을 일으켰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모두가 그를 싫어했던 느낌만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다른 승객들이 할머니들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눈치를 줬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할머니 중 한 명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나와 Tony,
그리고 스케치북을 번갈아가며 보더니
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머, 저 여자 좀 보우. 그림을 그려주나 보는구먼."
"난 재능 있는 사람들이 참 부럽더라."
"우리도 그려달라고 해보면 어떻겠수? 호호호."
졸지에 내가 안주가 돼 버렸다.
다른 승객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그림이 완성되었다.
덜컹거리는 기차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대상을
그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Tony에게 그림을 건넸다.
그리고 내 초상화를 그려줄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괜찮아. 난 곧 내려야 해."
그는 역시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한다면 그림을 주고 싶다고 말했지만,
괜찮다고 말하며 그는 자리를 떠났다.
그가 떠난 자리에
메트로만 덩그러니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