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관장의 딸, 하이디

#043 토론토에서 101명 만나기

by reconceptor


토론토에 있는 갤러리들의 목록을 만들고

포트폴리오와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서를

만들어서 보냈다.


연락이 없었다.

당연했다.

6개월 내지는 1년 전에 컨택을 해야 하는데

당장 필요하다고 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여기는 캐나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말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정해진 룰과 원칙을 깨는 것은 금기에 가까운 곳이니까.


사실 그래서 손해를 본 적도 있고

억울한 적도 있었지만,

나는 캐나다의 이러한 문화와 사회분위기가

더 편하게 느껴졌다.


룰을 지켜봐야 소용이 없다면

누가 룰을 지키려고 할까.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민족이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에

더욱 철저하게 더욱 완고하게

지켜나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것이 이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아닐까.


한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올해 갤러리 대관이 끝났기 때문에

내년 공고기간에 다시 지원하라는 것이었다.


또 한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모두 대관이 되어 자리가 없다고

프로젝트가 잘 되길 바란다고.


아무래도 어려운 분위기였다.

갤러리보다는 공원이 낫지 않을까 싶어

시청 담당부서에 메일을 보내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냥 해도 상관없을 것 같았지만

혹시라고 문제가 될까 봐 확실히 하고 싶었다.


그때 한통의 메일을 받았다.


대관을 해드릴 수 없어 유감입니다만,
저희 관장님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어 하시는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토론토 Yorkville에 있는

Gallery Bespoke라는 곳이었다.


Yorkville은 갤러리와 명품 전문점들이 밀집한

우리나라의 청담동 같은 곳이다.


처음에는 관장과 함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라고 이해했는데,

갤러리에서 관장의 딸을 그려줄 것을 요청했다.


몇 차례 메일을 주고받고,

갤러리를 찾아갔다.


©RECONCEPTOR


©RECONCEPTOR


©RECONCEPTOR


©RECONCEPTOR


©RECONCEPTOR


©RECONCEPTOR



갤러리에는 중세풍의

코스튬과 오브제들이 진열돼 있었다.


갤러리 직원은 관장님의 딸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기다려달라고 했다.


갤러리를 구경하며 서 있는데,

곧 민머리의 남성이

조그만 여자아이와 함께 나타났다.

아이는 2~3살 정도 돼 보였다.


"Heidi~ 여기 와봐.

인사해야지."


Heidi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정신없이 돌아다녔고,

관장은 잡으러 다니느라 여념이 없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사랑과 애정으로 가득했다.

예뻐서 어쩔 줄 모르는 그는 딸 바보였다.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서

정신없는 와중에도 짜증이 나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아이의 모습을 캐취 해서

그려보고 싶었는데,

정말 쉽지 않았다.


초고난도의 모델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긴장됐다.

관장에게 주는 그림인데

못 그리면 안 된다는 압박감까지.


모든 세팅을 마치고 각 잡고 앉아서

잘 그려야지 하고,

마음먹고 그리는 그림이랑

학창 시절 수업시간에 선생님 눈을 피해서

교과서 끄트머리에 끄적끄적 대는

그림의 차이를 아시는지...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RECONCEPTOR



아쉽게도

현재 Gallery Bespoke는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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