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 토론토에서 101명 만나기
살면서 하늘을 바라보는 여유가
점점 사라져 간다.
대기 저편으로 빨려 들어가는 구름의 움직임과
상쾌하고 신선한 바람과 비와 눈의 감촉,
파랗고 붉게 물드는 각양각색의 빛깔들과
밤과 낮을 넘나드는 빛과 어두움의 경계...
매일 머리 위로 펼쳐지는 축제의 무대,
그 안의 무한한 세계를 우리는 잊고 살아간다.
서울의 하늘은...
도시 위를 뒤덮고 있는 천장일 뿐.
나에게 하늘은 날씨를 나타내는
바로미터에 지나지 않았다.
캐나다에서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동네 놀이터 미끄럼틀 위에서
먹구름 사이로 떠오르는 쌍 무지개를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그때의 느낌으로.
눈부신 아침 햇살이 내리쬐는 창가에서...
거리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틈에서...
카페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길을 걷다 우두커니 서서...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표정과 몸짓을 보았다.
그것은 무척 오묘한 경험이었다.
문득 찾아온 삶의 여유와 자유 때문이 아니라
어떤 이끌림에 의한 관심이자 발견이었기 때문이다.
캐나다의 하늘은
추운 날씨의 변화만큼이나 역동적이고
건조한 공기처럼 가벼웠다.
Rain, Steam and Speed - The Great Western Railway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4.23 - 1851.12.19)
1844
National Gallery
어느 날의 하늘은
셀룰리안 블루와 코발트블루로 만든
캔버스 마띠에르 위에
징크 화이트와 티타늄 화이트를 교차하며
나이프로 펴 바른 듯한 모습이
영국의 화가인 William Turner의
그림을 떠오르게 했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
그림 달력으로 커버를 씌우곤 했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터너의 작품들이
실린 달력을 가져오셨다.
그 해에는 교과서를 펼칠 때마다
터너의 그림들을 보게 되었는데,
'Rain, Steam and Speed
- The Great Western Railway'라는
작품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 그림은 국어 교과서의 커버였는데,
그림을 바라볼 때마다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대기 중의 습한 공기를 뚫고
연무를 뿌리며 힘차게 달리는 기차.
폭우를 뚫고 쏜살같이 달리는 기차의
움직임과 함께 흩뿌려지는
물방울과 희뿌연 증기가 내뿜는
긴장과 흥분이 내 심장을
두방망이질 치듯 두드렸다.
영국의 산업혁명기를 살아간 터너는
템즈강을 건너는 증기기관차에 몸을 싣고
창 밖으로 몸을 내밀어 예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속도의 느낌을 오롯이 온몸으로 기억하고
화폭에 담아냈다.
디테일한 묘사를 생략하고
거친 터치와 색감으로 완성한
그의 독창적인 작품들은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살아있는 빛의 풍경들을 그리고 있다.
대기에 펼쳐지는 하얀 구름과 빛의 환희가
터너의 그림 속 풍경과 자연스럽게
오버랩되었다.
The empire of light
René François Ghislain Magritte (1898.11.21 - 1967.8.15)
1954
Royal Museums of Fine Arts of Belgium
마그리트 그림 속의 하늘이
어둠이 짙게 깔린 수풀 너머로 펼쳐졌다.
낮과 밤이 공존하는 듯한 이 풍경은
일종의 패러독스를 보여주고 있는데,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인 René Magritte는
이 작품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빛의 제국에서 다른 개념들,
밤의 풍경과 낮에 보는 것과 같은 하늘을 재현했다.
이 풍경은 우리로 하여금 밤에 대해,
낮의 하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내 생각에, 이 낮과 밤의 동시성은
우리의 허를 찌르고 마음을 끄는 힘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 힘을 시라고 부른다.
- 르네 마그리트 -
빛의 모순이 만들어내는 시의 풍경.
낮과 밤의 서사가 눈앞에 펼쳐지며
마치 그림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생경하면서도 익숙한 느낌이
전율처럼 온몸에 퍼져나갔다.
No. 14, 1960
Mark Rothko (19039.25 - 1970.2.25)
1960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SFMOMA)
나는 마크 로스코의
작품들을 정말 좋아한다.
그의 작품을 처음 본 것은
중학교 미술 교과서였다.
그의 그림 한 점이 실려 있었는데,
'이건 나도 그리겠다'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올 만큼
색면만 표현한 단순한 작품이었다.
그 뒤로 잊고 지냈는데,
우연찮게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에 갔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아무렇지 않게 그의 작품 앞에 섰는데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거대한 캔버스에 스며든 모호한 경계의
절제된 색면에 도취되어
뭔가에 홀린 듯 빠져들었다.
그림 너머에서 알 수 없는
파장과 기가 교차되면서
나를 관통하며 지나갔다.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한동안 발을 떼지 못했다.
그의 모든 작품들이 다양한 감정을
일으키며 나를 압도했다.
한순간 혼미했고,
한순간 경건해졌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Mark Rothko는 색면추상의 세계를 구축한
추상표현주의 화가이다.
그의 작품은 극도로 절제된 이미지 속에
숭고한 정신과 내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고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추상화를 부인했다.
“나는 색채나 형태나 그 밖의 다른 것들의 관계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비극, 황홀경, 운명 같은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내 그림 앞에서 우는 사람은 내가 그것을 그릴 때 가진 것과 똑같은 종교적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관객들이 작품과 교감하기를 원했고,
그림들이 각각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뭔가에 쫓기듯 빠르게 움직이는
구름의 흐름 속에서
나는 죽음의 그림자를 보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의 마지막 작품은
캔버스를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였는데,
슬픔과 두려움, 그리고 혼란과 광기가 어려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그의 원작을
꼭 갤러리에서 보길 권하고 싶다.
그의 작품에는 영혼을 뒤흔드는 힘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15FUp8aUmU
'Star Guitar'
The Chemical Brothers
2001
Michel Gondry
구름은,
바람은,
그리고 창밖의 하늘은
리듬을 타듯
연주를 하듯
머나먼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미셸 공드리가 감독한 케미컬 브라더스의
뮤직비디오는 풍경을 악보처럼 보여주며
박자를 시각화하고 있다.
그날의 하늘과 풍경과 하모니를 만들어내며
풍경을 통해 박자를 청각화하고
새로운 리듬을 들려주었다.
하늘과
구름과
바람과
풍경이
소리가 되어 들려왔다.
서울에 돌아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무표정한 회색빛 콘크리트처럼
천공을 메우고
푸르른 하늘빛 천장으로 장식된
돔으로 뒤덮여 있었다.
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