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9 토론토에서 101명 만나기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본 적 있어?"
"영화는 아는데...
뮤지컬은 본 적 없어."
"그래? 그럼 우리 보러 갈래?
정말 재미있고 감동적이래."
오늘은 Corinna와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보기로 했다.
호스텔을 나서기 전,
호스텔 스태프인 Kiwayne에게
이 뮤지컬을 어디서 볼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영국에서 온 Kiwayne은
Kiwi라고 불렸는데,
언제나 친절하고 협조적이었다.
이 호스텔의 스태프들은 모두
워킹홀리데이로 토론토에 온
젊은이들이었다.
호스텔에서 일을 잡은 것이다.
Kiwi가 열을 올리며
구글링에 돌입하자,
옆에 있던 여자 스태프
또한 구글링에 동참했다.

"어머~ 어쩌지!
공연이 이미 끝났어."
"진짜? 그럼 어떻게 하지...
음... 그럼 영화를 보려면
어디로 가는 게 좋아?"
Kiwi는 Dundas에 있는
Rainbow Theater를 알려주었다.
"오늘은 화요일이라서
5달러에 영화를 볼 수 있어."
극장 주소를 적고 있는데,
여자 스태프가 말을 걸었다.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는 어때?
나는 벌써 5편이나 봤어.
공연마다 너무 멋지고 환상적이야."
그녀는 자칭 태양의 서커스 매니아였다.
현재 토론토에서 토템이 공연되고 있다면서
관련 사이트를 보여주었다.
화려하고 역동적인 사진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혹시 몰라서 공연 정보도 적어두었다.

Corinna는 빌리 엘리어트 공연이
끝났다는 소식에 적잖이 아쉬워했다.
우리는 볼 만한 영화가 있는지
극장에 가보기로 했다.
Rainbow Theater 앞에 도착하니,
박스오피스를 안내하는 종이가 붙어있었다.
주변을 빙빙 돌았지만,
박스오피스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김이 샜다.
"에이... 아쉽다.
다른 영화관이라도 찾아볼까?
너 보고 싶은 영화 있어?"
Corinna의 표정을 보니,
영화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럼 어때?
한인타운에 가서
한국식 디저트를 먹는 거야."
"오~ 정말?"
며칠 뒤 우리는 Christie & Bloor에
있는 한인타운 앞에서 다시 만났다.
토론토에는 두 군데의 한인타운이 있는데,
Christie & Bloor가 먼저 생겼고,
Yonge & Finch가 뒤늦게 생겨
보다 현대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
Christie & Bloor의 한인타운은
8~90년대 거리 같은 모습이고
조금은 후미진 느낌이지만,
시내에 있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아
종종 찾아가곤 했다.
약속 장소로 향하면서
친구 집에서 만들어
먹었던 음식 몇 가지를 싸갔다.
낮에 일본인 친구인 Michiko가 지짐이
(일본에서는 부침개가 지짐이로 알려져 있다고...)
만드는 법을 알려달라고 해서,
부침가루를 사갔는데
넣을 재료가 마땅치 않아서
양파를 넣어 부침개를 부치고,
마트에서 햄과 단무지를
사서 산적꼬치를 만들었다.
냉장고에 돼지고기가 있어서
제육볶음 만드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Michiko는 유부초밥과
주먹밥을 만들었다.
모두 완성하고 보니,
둘이 다 먹기에는 너무나 많은 양이었다.
유부초밥과 산적꼬치를 받아 든
Corinna는 만면에 미소를 띠며
하나씩 맛을 보았다.
"와~ 이거 뭐야? 정말 맛있어."
그녀는 의외로 산적꼬치에 열광하며
오물오물 그 자리에서 다 먹어버렸다.
"단무지라고 무가 들어있는데, 맛이 괜찮아?"
"처음 먹어보는 독특한 맛이긴 한데, 진짜 맛있어."
거리를 걸으며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인타운에서 인기 있는 호떡집을 찾아갔다.
호떡과 호두과자로 유명한 곳이었다.
한국에서 팔아도 손색없을 정도로 본연의 맛을
잘 구현하고 있는 맛집이다.
"이건 호떡이라고 해.
한국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인데,
달콤하고 쫀득한 맛이 일품이지.
맛이 어때?"
"너무 맛있어."
Corinna는 호떡을 조금씩 뜯어먹으며,
재미있는 표정을 지었다.
"내일은 뭐 할 거야?"
"글쎄... 별 일은 없는데... 왜?"
"그럼 나랑 야구 보러 가지 않을래?"
"정말? 나 한 번도 야구장에서
야구를 본 적이 없어."
"야구장에서 보면 얼마나 재미있는데...
내일 같이 가자!"
Corinna는 연신 들뜬 표정으로
야구 이야기를 이어갔다.
Corinna와 내가 빠르게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서로를 잘 배려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말도 잘 통했지만,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컸다.
Diva처럼 나서서
자기 뜻대로만 하려고 하고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으면 피곤하다.
특히 여행에서는 최악이다.
나는 그런 사람을 New York에서 만났다.
Corinna와 나는
서로의 취향과 기분, 그리고 의중 등을
잘 살피고 맞춰갔던 것 같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서양인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녀는 나를 잘 배려해주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기꺼운 마음으로
함께 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관계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력은 일방이 아닌
상호작용에 의해 시너지로 바뀐다.
그 과정 속에서 신뢰가 쌓이면
깊이 있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짧고 가벼운 인스턴트적인 만남에서
서로를 신뢰하고 우정을 쌓는다는 것은
쉽게 얻을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첫인상과 겉모습으로 사람의 인격을
판단하고 재단하는 시대에
사람의 마음을 바라보고 헤아린다는 것은
얼마나 힘들고 버거운 일인가.
Corinna는
친구들과 허물없이 뛰놀던 어린 시절,
그때 그 기분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 준
정말 소중한 친구였다.
어떤 의도나 목적, 필요에 상관없이
그냥 만나면 재미있고 신나고
뭔가를 함께 하고 싶은 그런 친구.
우리는 다음날 야구장에서 다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