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 토론토에서 101명 만나기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골목길에서 잠시 팔짱을 끼고
서 있던 나의 시야에
High Line 표지판이 들어왔다.
'맞아! 하이라인이 있었지.'
잘 둘러보면,
곳곳에 하이라인과 연결된 계단이 있고
계단 입구마다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계단은 지상에서 약 10미터,
아파트 3층 높이에 위치한
옛 고가철로로 안내한다.
하이라인에 올라서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High Line은 버려진 고가철도를
개조해 만든 공원이다.
1930년에 만들어진 고가철로는
당시 교통혼잡으로 인한
운송 지체 및 교통사고 등을 방지하고
물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당시 기차와 자동차, 마차 등이
뒤엉킨 도로는 도시의 골칫거리였다.
웨스트사이드의 거리는 사건사고가 많아
'Death Ave'라고 불렸을 만큼 악명이 높았다.
이에 등장한 것이 웨스트사이드 카우보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을 타고 기차 앞을 달리며
적색기를 흔들어 교통정리를 하는
카우보이의 모습이 웃기기도 하지만,
그만큼 기차의 안전한 운송이
중요한 이슈였을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화물 수송량은 늘어나고
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
시도된 것이 지상으로부터 10미터 상공에
고가철도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전체 길이 약 20km,
22개의 블록에 걸쳐 건설된
화물전용 산업철도였다.
기찻길을 기존 도로와 분리함으로써
지연되기 일수였던 운송시간과
빈번했던 사고로 인한 안전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공장과 창고를
기찻길과 연결해 운송의 효율성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됐다.
1934년 이 철도로 기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하이라인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Meat Packing District와 Chelsea,
West 34th st부터 Gansevoort st까지.
맨해튼을 가로지르는 기차는
이곳의 산업을 주도하는 견인차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미트 패킹 디스트릭트에서
도축 및 가공된 육류 또한
모두 이 철도를 따라
도시 곳곳으로 운반됐다.
하지만 전성기도 잠시,
1950년 자동차의 발달과 도로망 확충으로
자동차 중심의 교통정책이 시행되고,
자동차 도로를 활용한 물류시스템의 변화로
화물열차의 존재는 점차 위기를 맞게 된다.
그로부터 10년 뒤,
주변 공장들이 도시 외곽으로 이주하며 문을 닫고
미트패킹 디스트릭트의 육류 산업이 쇠퇴하면서
1980년 철도는 결국 운행을 멈추고 말았다.
철로는 그 후로 30여 년간
버려진 채 방치되었고 폐허가 되어
도시의 미관을 해치는 흉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미트패킹 디스트릭트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1980년대 이 주변 지역이 재조명되면서
부동산 소유주들과 개발업자들은
고가철도의 철거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곳의 부동산 가치를 높이고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며 재개발을 요구했고
결국 고가철로 폭파가 결정되었다.
하지만 두 시민의 운명적 만남이 이뤄지며
이 철로는 새로운 운명과 마주하게 된다.
Robert Hammond와
Joshua David가 그들이다.
1999년,
로버트 해먼드는 하이라인이
철거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하이라인의 미래를 논의하기 위한
커뮤니티 위원회'를 만들었고
이 모임에서 조슈아 데이비드를 만났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하이라인을 보존하기 위한 커뮤니티인
'Friends of the High Line'을
공동 창립해 본격적인 행동에 나섰다.
이들은 구 산업 유물의 보존과 재생을 통해
하이라인에 대한 가치를 재발견하는 기회를
만들자는 생각에서 고가철도를 공원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하이라인 폭파에
찬성하는 측과의 팽팽한 대립으로
이어졌고 결국 소송이 진행되었다.
2002년, 소송 결과 법원은
'Friends of the High Line'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이라인의 가치를
뉴욕 시민들과 함께 나누자는 취지의
하이라인 공원화 프로젝트는
많은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고 있었기 때문에
반대 측의 재산권을 보장하는 일정 권리를
인정해 주는 것으로 전쟁은 일단락되었다.
이듬해 'Friends of the High Line'은
하이라인 공원의 설계 공모전을 개최하며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36개국, 720여 개 팀이 참가했고,
2004년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JCFO)'의
최종 설계도가 선정되었다.
컨셉은 ‘아그리텍처(agri-tecture)'.
자생하는 자연과 인공의 통합을 의미하는,
agriculture와 architecture의 합성어이다.
도시의 과거와 미래,
보존과 개발 등
상반 관계에 있는 가치들의
공존을 조화롭게 추구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하이라인의 디자인 방향은 아래와 같았다.
단순하게
야생 그대로
조용히
천천히
30여 년간 버려진 철도는 이미
공원이 되기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철로 곳곳에 잡초와 야생화가 피어나
그들만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하이라인에는 300여 종의
야생화가 자라고 있다.
2006년 기공을 시작한 하이라인은
1, 2, 3 구간별로 점진적으로 시공되었다.
2009년 6월 8일,
미트패킹 디스트릭트에
하이라인의 제 1구간이 공식 오픈했다.
옛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면서
야생의 모습을 최대한 살린 모습으로.
시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21세기의 센트럴 파크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1년 6월, 2구간 완공에 이어
2014년 9월, 34번가까지
2.3km에 이르는 모든 구간이 완공되었다.
나는 2011년 7월에 갔기 때문에
운이 좋게도 2구간까지 걸을 수 있었다.
자... 이제 걸어볼까.
공원을 걷다 보면,
하이라인의 설계 컨셉과 디자인 방향이
페이퍼로만 존재하는 허울 좋은
말장난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자연 생태와 인공적 구조물이 이루는 조화와
도시 및 거리와 활동적으로나 시각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간결한 구조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기획의도가 공원 곳곳에 녹아있어
형상화된 컨셉을 스케이핑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공원은 공원 그 자체로만 존재하지 않았다.
도시와 생태와 사람을 연결하는 노드처럼
모든 것을 유기적으로 매개하며
또 다른 장면을 연출한다.
단지 지상에서 10미터 위로 올라왔을 뿐인데,
지면을 걸을 때와는 또 다른 시야로
도시를 바라보게 된다.
도시 속의 내가 아니라,
마치 제3의 공간에서 도시를 관조하는
방관자처럼 느껴진다고나 할까.
끝까지 걸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된 산책길.
드디어 종료 시점에 다다랐다.
2구간이 끝나는 지점,
공사 잔해와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었다.
1, 2구간의 예산만 약 1,600억 원에
이르는 대규모 프로젝트.
시민들은 어떻게 스스로
이런 공원을 만들 수 있었을까?
시민 2명으로 시작된
'Friends of the High Line'은
올해 70여 명의 상근 근무자와
6,000여 명의 회원을 보유한
시민재단으로 성장했다.
이들은 건설비용의 50% 이상을 조달하고
운영관리비의 70%를 감당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하이라인이라는 기적을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단순히 멋진 공원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만의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도록 영감을 불어넣는 일,
그것이 저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