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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희 Dec 14. 2023

눈물의 밤

어떤 밤은 무척이나 괴롭습니다.

제희에게는 습관이 있었다. 울고 싶을 때 그녀는 수건을 들고나가서 화장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마치 영화 <친절한 금자 씨>의 금자 씨처럼 울었다. 안 그러면 숨이 가빠져 패닉어택이 올 때가 있으니까 그 점을 조심했다. 그녀가 첫 직장에서 일할 때 그렇게 우는 방법을 배우고 나서 요긴하게 쓰는 방법이었다. 턱이 아프다는 것 빼고는 괜찮았다. 조금 여유가 있으면 가족에게 자동차 키를 빌려 거기로 나가서 차에 들어가 문을 닫고 울었다. 운전도 할 줄 모르지만 그녀는 자동차에 혼자 앉아있는 걸 좋아했다. 차에 앉아 문을 닫으면 비명을 지르던 오열을 하던 바깥에서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제희는 그때 처음 알았다. 자동차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라는 것을.


그녀는 인생에 두 가지 종류의 삶이 있다는 걸 알았다. 카약에 비유하자면 첫 번째 인간들은 물살을 타고나서 시간이 지날수록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종류의 인간과, 역물살에 휘말려 아무리 노질을 해도 뒤로 후퇴해서 제자리에 있는 사람. 그리고 그 물살이라는 건 노력이나 극복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일찍 깨달았다. 운의 문제일까, 태어난 시각의 문제일까, 아니면 이름이 나빠서 그런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제희는 왜 사람은 이렇게 나누어져 살게 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제희는 후자의 인물이었다. 후퇴하는 삶에 대한 것은 비단 커리어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주위에 만나는 사람, 사게 되는 물건들, 사회에서 대우받는 위치 등등이 그랬다. 그런 걸 견딜 수가 없는 날이 있었다. 그녀는 슈퍼마켓에서 가장 싼 물건만을 골랐는데 그녀의 수중에 남은 돈은 점점 줄어만 갔다. 아르바이트로 모인 자신의 인생도 디스크 조각 모음을 할 수 있으면 좋을 걸. 그녀가 새벽 세 시까지 일을 해도 도통 커리어가 모이질 않았다. 그녀가 이룬 모든 일들은 닥치는 대로 한 것들이라 제대로 방향성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 제희에게 사람들은 현명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제희는 생각했다. 현명할 수 있는 삶을 산다는 건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고,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산다는 건 행복한 사람들의 몫이라고.


당연하겠지만 제희는 실명이 아니다. 제희라는 이름은 제희가 직접 지었다. 사람은 이름을 따라간대. 누군가가 말해주었고 그렇다면 꿈을 담아 만들자고 제희는 생각했다. 모두 제諸에 기쁠 희喜를 썼다. 모두가 기쁘다. 입안에서 굴려본 말의 어감이 나쁘지 않았다. 


일부러 성은 뺐다. 성을 특정하는 순간 제희는 한 사람의 인간이 되고, 제희는 그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안개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지하철에서 스쳐 지나가 이름도 얼굴도 기억이 안 나는 그런 사람 1이 되기를 바랐다. 그냥 모두가 기쁠 수 있으면 그걸로 좋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녀의 삶이 너무 비루해서 명성이나 이름같은 건 상관없이 아무것도 죽을 때 남기지 말고 글만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카약에서 노를 젓지 않아도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점점 성취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어. 언젠가 제희는 자신의 친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걸 위해서는 내 카약이 조금 더 뒤로 가도 괜찮아.


그렇지만 실제로 카약이 뒤로 물러서는 건 다른 문제였다. 제희에게는 병이 있었는데 겨울만 되면 망상장애에 시달렸다. 누군가가 자신을 해칠 것 같은 이유 모를 두려움에 휩싸여 방 밖으로 나가질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병식은 있는지 물어보면 병식은 있는데 망상이 너무 심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그 삶이 너무 무섭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녀의 가족들은 이렇게 그녀의 상태가 심할 때가 되면 집안에서 날붙이를 모두 치웠다. 아직도 제희는 집안에서 칼을 잡지 못했다. 그러면 제희는 내가 목숨만 붙어있으면 되는 건가 하는 자조감에 또 화장실에 수건을 들고 갔다. 


제희는 지금 키보드 앞에 앉아 수건을 물고 있다. 순간을 버티면 산다는 말을 되뇌면서.




병식의 밤은 괴롭습니다. 일부러 3인칭으로 쓴 이유는 친구의 아이디어이자 제가 감정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좋아요 구독 댓글 모두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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