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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하 Jan 07. 2023

#4

의식의 흐름 기록 : 룰다깨

# Grand prix > Not Today > 수영 > 후회 > 괜찮아 > 코끼리 > BREAK ALL THE RULES


망설이지 않기 돌아보지 말고 Diving 가쁜 숨을 가다듬고 Let's go

Grand prix - CRAVITY 


크래비티의 앨범의 수록곡 중에 좋은 노래가 많다. 사실 요즘은 좋은 노래가 참 많다.

그런데 방탄소년단을 좋아할 때도 그러했지만, 나는 어떤 가수가 좋으면 가수 곡들의 가사가 마음을 흔들어놓는 순간에 입덕부정기를 끝내고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고야 만다.

나의 방탄소년단 입덕곡은 Not Today였다. 그때에 나는 심리상담을 받고 있던 때였다. 매일 밤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길 염원했고 염원하는 바를 실행시키지 않기 위해 싸우던 때였다. 그때 만난 곡이 Not Today. 그때 얻은 용기와 위로는 잊지 못한다. 

아무튼 이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전시하기로 하고, 최근에 크래비티에게 입덕하게 된 곡은 BREAK ALL THE RULES이다. 십오야를 통해 입덕 루트에 들어섰지만, 진정한 입덕엔 나만의 자동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노래 가사, 그들의 관계성. 이후에 오랜 기간 동안 덕후로 지내려면 그들의 사회와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과 말과 행동, 실력의 발전을 보게 된다. 뭐 이건 사실 누구든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지만. 

서문이 너무 긴데, BREAK ALL THE RULES의 후렴구의 가사를 보면


Let's break all the rules
힘을 잃은 그 눈빛은 criminal
(Criminal, criminal, criminal)
Let's break all the rules
무기력한 목소리도 criminal
(Criminal, criminal 너를 깨워)

세상이 널 비추는 그 거울 속에
스스로 널 가둔 틀을 부수면 돼


이 부분의 가사가 서태지의 환상 속의 그대를 처음 들었을 때를 떠올리게 했다. 가사가 비슷하다는 게 아니라 내게 준 영감이 그러했다는 것.

산을 열심히 오르다가 골짜기 아래로 내려가 쉬다 보니 더는 산 오르기를 멈춘 내게 하는 말 같았다.

그리고 최근에 다시 산을 오르려 골짜기에서의 편안한 먼지를 툭툭 털고 일어나는 내게 응원의 메시지를 주는 가사가 


망설이지 않기 돌아보지 말고 Diving 가쁜 숨을 가다듬고 Let's go


이 가사이다. 망설이지 말고 돌아보지 말고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 이미 가쁜 숨으로 힘들더라도 완전히 골짜기에 머무르며 쉬어버리는 게 아니라 가쁜 숨을 가다듬고 다시 나아가는 것.


다이빙하니까 생각나는 게 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동해 쪽 바다에서 엄마, 아빠가 나의 양손을 잡고 바다수영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장난으로 아빠는 손을 놓았고 나는 그대로 꼬르륵-. 

덕분에 물에 대한 공포증이 너무 컸다. 바닷속에서, 물속에서 들리는 그 울렁이는 소리와 먹먹함, 짙은 녹색과 푸른색의 어두움. 그 이후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래서 이십 대 후반에 수영을 배우러 갔을 때에 남들은 유아풀장을 1주 차에 졸업하고 어른 수영장으로 갔지만, 나 혼자 무릎밖에 오지 않는 유아풀장을 한 달 동안 벗어나지 못했다. 선생님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유아풀장도 극복 못한 건 맞지만 그래도 어른 수영장에 들어와서 적응을 해보자고 했고 지금은 중급반정도 된다. 물론 코로나 이후로 수영을 하지 않았으므로 다시 수영수업을 받으러 간다면 초급반에서 한 달간은 자세교정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래도 이후로 나는 동남아 바다 수영을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호핑을 하러 가도 실내수영용 수경을 끼고 맨몸으로 깊이 물을 가르며 들어가서 바닥에서 유영하는 것을 즐긴다. 물을 가르면서 물질하는 걸 정말 사랑한다. 


서른이 한참 넘어서 아빠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기억하냐고. 그 이후에 내가 수영을 배우느라 힘들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물에서 노는걸 제일 좋아한다고. 이제는 무섭지 않다고. 이 말을 한건 아빠에게 탓을 돌리기 위해서가 아니었고 그저 나 스스로가 그걸 극복하고 이제는 즐기고 있다고 기특하다고 말한 것이었는데, 말을 마치자마자 아빠가 그러셨다. 평생 그런 말을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분이, 후회한다고. 정말 후회한다고. 가끔 생각났다고.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큰일 날뻔했던 거라고. 정말 크게 후회한다고.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난 아빠의 반응에 되려 놀랐다. 에.. 이게 아닌데. 


지금은 극복했으니 다 괜찮다.


그런데 모든 상처와 트라우마가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영구적 장애로 남을 수 있다.

코끼리처럼 엄청 큰 동물도 어떻게 길들이겠는가. 새끼 때부터 쇠사슬에 묶여 그 쇠사슬이 허락해주는 반경 밖으로 나갈 수 없고 나가서도 안된다고 길들이면 커서도 못 벗어나는 게 아닌가.


내가 겪어온 세상의 틀에 묶여있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회사에 있는 것만이 답이라 생각했던 내가 퇴사하고 프리랜서로 일하려 준비하는 것도, 다시 노래가 하고 싶은 것도, 다시 글을 쓰고 싶은 것도 모두 다. 이것 말고 또 하나의 다른 꿈을 갖게 된 것도.


BREAK ALL THE RULES. 

내 경험치가 전부가 아니다. 경험치를 올리려면? 부딪혀봐야지. 

이 도전과 모험의 한 발자국, 다시 산을 오르는 한 걸음을 응원한다. 대단한 장비를 모두 갖춘 채로 산을 오르면 참 좋았겠지만. 아싸리 처음부터 헬기를 타고 꼭대기로 바로 꽂아버리거나. 그런 게 아닐 거면 어쩌겠는가. 움직이지 않으면 죽은 것과 무엇이 다른가. 

골짜기에서 내 눈과 머리 위로 먼지가 한가득 쌓여가는데 엉덩이와 다리는 편했다. 눈, 코, 입, 귀는 불편하다고 화내고 숨쉬기 힘들다고 허덕였다. 일어서서 이를 털어낼 힘조차 내지 않은 나는 죽어가고 있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살아있음을 증명하려 일어나 걷는다. 산을 다시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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