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들려오는 층간소음을 박자삼아 하려던 것을 이어간다.
조금씩 채우고 다듬어가는 원고를 보며 스스로를 다시 한번 다독이는 시간들.
쓸 수 있음에, 정리할 수 있음에 다행이다 싶은 마음으로.
-
나에겐 괜찮은 것들이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간극을 좁히기엔 누군가의 희생 혹은 인내가 필요할 수 있지만
유연한 쪽으로 서로가 조금씩 다가갈 수 있다면.
8.2
집이 너무 뜨겁다.
바깥보다 뜨거워서 숨이 막힐 때가 있다.
더운 나라에서도 에어컨 없는 방에 머물 정도로 더위에 무덤덤한데
지금의 집은 그것과는 다른 열기를 자랑한다.
어쩌겠는가. 그럼에도 고마운 나의 임시 주거지인 것을.
-
누군가 나를 짠하게 본다.
요즘이야말로 불편한 것도, 힘든 것도, 슬픈 것도 없는데 당황스러운 일이다.
각자의 짠함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이기에 누군가의 눈에는 내가,
내 눈에는 누군가가 짠해 보이는 세상이 아이러니했던 날.
8.3
무자비하게 햇빛을 마주했더니 살갗의 껍데기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꽤 오랜만에 벗겨져나가는 살갗의 표면을 보며 쾌감을 느낀다.
불필요했던 생각들이 같이 떨어져 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에게 주어진 어느 쪽지.
다른 이의 말과 행동은 나를 해칠 힘이 없다.
유일하게 힘이 있는 것은 나의 생각과 생각의 움직임이다.
8.4
지금의 여정을 사랑한다.
매일 보아도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들을 곁에 두고 있다.
바다와 요가, 그리고 커피.
그 속에서 때때로 올라오는 감정들을 감싸안는 게 조금씩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
배짱이 좋은 사람. 숨을 깊이 들이마실 수 있는 사람.
-
아주 오랜만의 플리마켓.
타로카드 줄이 너무 길어 비건타코를 먹었다.
운명을 점치는 대신 맛있고 정성스러운 음식을 만났으니
어쩌면 이게 더 행복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8.5
아주 오랜만의 세차.
아주 오랜만의 미용실.
아주 오랜만의 술자리.
굳이 해야 할까 싶었던 것들을 넉넉한 시간을 핑계 삼아 하나씩 해본다.
제어하려는 성질과 풀어주고 싶은 성질의 잦은 충돌.
8.6
활자를 읽고 쓰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고 싶지만
일차원적 재미와 도파민을 뿌리치지 못하는 날들이 훨씬 더 많아졌다.
무음모드가 필요한 곳, 자연 속에 파묻힐 수 있는 시간을 챙기게 된다.
벽과 천장이 주는 안정감보다 하늘과 바다가 주는 무한한 평온함이 좋아
집 밖으로 자꾸만 나가게 되는 계절.
8.7
직업 예술가도 아니건만 작업실을 얻고 싶은 마음이 든다.
냉장고와 침대가 없는 곳.
그 대신 글과 그림과 음악, 사유와 여유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단순히 먹고 자고 살림을 쌓아두는 것 외에
마음 안팎에서 꺼내고 싶은 것들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간.
-
5초.
나무 그늘에 앉아 더운 기운을 한 김 식히고,
주변의 바람을 서서히 느끼기 시작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
결코 길지 않은 기다림.
그걸 자주 잊어버려 시원한 바람 같은 행복한 순간을 때때로 놓친다.
가끔은 온몸으로 시원한 바람을 만끽할 수 있기를.
8.8
아무도 읽지 않을지라도 언젠가의 나를 기록하고,
삶의 느낌을 남겨두는 일을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끌어오게 된다.
나를 위해 기록하고, 그로 인해 조금 더 사유하고 넓어지다 보면
그게 곧 불특정다수에게도 스치듯 손을 뻗지 않을까.
-
하루종일 바닷가에 머물렀다.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태닝을 하고, 물속에 몸도 담근다.
결이 맞는 인연과 밀린 얘기를 나누고, 일몰을 보고, 간단한 저녁도 먹는다.
오늘의 에너지가 끌리는 대로 인센스를 한 통 사는 것을 마지막으로 하루가 끝났다.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는 내가 좋다. 그게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된다.
8.9
무슨 일이 생겨도 혼자 알아서 잘 살아남을 것 같아서,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 바짝 차릴 놈 같아서 나와 먼 곳으로 여행을 가겠다는
친구의 말에 한바탕 웃었다.
그런 놈이 나였다니. 신선하면서도 힘이 나는 기분.
나는 그런 사람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래서 호랑이보다 더 씩씩한 기운이 솟아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
나는 나를 위해 삶을 채워간다.
혼자여도, 함께여도 꼭 필요한 건 ‘나’라는 기둥이다.
기둥만 단단히 자리 잡고 있으면 주변이 흔들려도 살아남을 수 있다.
뼈대의 중요성.
이왕이면 그 기둥의 재질을 아주 튼튼한 걸로 세우고 싶어 꾸준히 재료를 모으고,
천천히 쌓아 올리는 과정에 놓여있다. 근육을 키워가듯 정성스럽게.
8.11
단순히 숫자를 재는 것을 떠나 몸을 가볍게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몸이 가벼우면 편한 점이 많다.
언제 어디서나 아무 옷이나 입을 수 있다는 것,
요가 수련에 도움이 된다는 것,
언제 어디로든 뛰어나갈 자신감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
주변의 것들이 더 깊고 진하게 와닿는 것.
몸과 마음을 가볍게 만들수록 느껴지는 것도, 편해지는 것도 많다는 게 신기한 요즘.
온도와 날씨, 계절의 변화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에너지도 더 세세하게 느껴질 정도다.
사람의 몸은 너무나 정직해서 먹은 만큼의 질량과 재료에 따른 기분을
때때로 다르게 느낄 수도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하고 흥미롭다.
8.12
살면서 먹지 않았던 것들을 하나씩 먹게 될 때마다 낯설면서도 흥미롭다.
이런 게 소위 말하는 나이가 들어간다는 느낌인 걸까.
입에도 못 대던 콩국수를 올여름엔 처음으로 한 그릇을 비워냈고,
머릿속에 한 번도 떠올라본 적이 없던 보리밥 비빔밥을 제 발로 찾아가 먹은 날도 있다.
성격만 변하는 게 아니라 입맛도 같이 변해가나 보다.
-
오랜 고민을 하다가도 결정 후의 기분을 떠올려보면
마음속엔 이미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그에 따르는 용기와 행동력이 아직 뒤에 서 있을 뿐.
8.13
여행을 다시 떠나기 위해 총알을 모으러 섬으로 돌아왔다 했지만,
어쩌면 그 총알은 단순히 물질적 의미만을 가진 게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얼마나 이곳에 머물진 알 수 없지만 짧지도 길지도 않을 시간 동안
물리적 그 이상의 정신적 총알을 함께 얻고 있는 듯하다.
장전을 위해 모으는 이 총알들이 부디 무해하게, 멀리멀리, 힘차게 쏘아지는 날이 오기를.
8.14
영혼과 마음의 일치.
나는 어디까지 가까워졌을까.
마음과 영혼, 생각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언제 어디서나 또렷하게 존재하기를 꿈꾼다.
빠른 합일이라거나 완전한 균형을 떠올리기보다는
세 가지 모두 온전히 나에게서 발생되어 흘러나온 것들이기를.
-
솜이불을 걷어낼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집구조를 탓하며 잠 못 이루던 나의 허술함을
발견한 날. 여름이 다 지나기 전에 발견한 걸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8.15
매 순간을 아낌없이 느끼고, 표현해야겠다.
이래서 안 하고, 저래서 미루기보다 살아있는 기분이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좋은 감정은 더 많이, 더 크게 드러내고
불편하거나 슬픈 감정은 차분하면서도 솔직하게 내놓아 보기.
지금처럼 가능한 만큼 숲과 바다, 하늘을 자주 마주하며 살아가고 싶다.
쌓아두는 것보다 털어내고 비워내는 것에 재미를 붙여 그 맛을 오랫동안 즐기는 사람이 되기를.
-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서 오는 무언가가
때로는 훨씬 더 깊고 진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가야지.
말로 설명되는 것들이 세상을 채우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이 결국 이 세상을 존재하게 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
숲 속에 가만히 앉아있는 동안
공기 중의 빛과 소리, 흘러가는 냄새 등에 수없이 많은 것들이 담겨 있는 기분이 들었다.
8.16
땀이 살금살금 난다라고 말하는 엄마의 귀여운 표현에 웃고,
하늘색 우산을 쓰고 푸른 바닷가를 걷는 소년 같은 아빠의 뒷모습에 웃고,
몸통이 뒤집어진 벌레를 차분하게 되돌려주는 동생의 손짓을 보며 웃는다.
우리는 숫자상으로의 나이를 하나씩 쌓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각자의 순수함은 마음 한편에 고이 품고 있음을 느꼈던 장면들.
해야만 한다고 고집부리거나, 서로의 맞지 않는 부분에 꽂혀 갈등을 키우는 대신
하고 싶은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뚜렷하게 말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건 평화와 안정이었다.
달라도 너무 다른 네 사람이 모여 이렇게 여행을 할 때마다 나는 물론이고 모두에게
크고 작은 배움과 부드러운 추억들이 하나씩 쌓여가는 것 같다.
점점 자연스럽게, 조화롭게 맞춰갈 수 있다는 게 희망적이고 멋졌던 시간들.
8.17
섬 속의 섬은 더 조용하고 깨끗했다.
고립이 주는 불편함과 평온함이 공존하는 곳.
8.18
엄마가 이른 아침 보내온 메시지를 옮겨 둔다.
//
긍정적 감정과 표현은 생명이다.
감정은 물과 햇빛 같은 것이다.
진정성.
그리고 멋진 하루를 창조할 수 있는 에너지가 따르기를.
메시지를 보며 다시 한번 되돌아보기.
있는 그대로를 비추고 흡수하는 것들, 그리고 그에 필요한 진정성을 위해
매 순간 본성을 다듬는다.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이 자연스러운 긍정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
지난밤 꿈에 요가 선생님이 나왔다.
사적인 교류나 특별한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아님에도 문득 꿈에 나오실 줄이야.
평소처럼 수련을 하고 뒷정리를 하는데 선생님이 악수하듯 내 손을 잡고 가볍게 흔들더니
“일을 더 줄일 수는 없는 거죠?”라며 웃으셨다.
당황스러웠다.
일을 너무 적게 하는 걸까 라는 고민을 하던 차였기에.
수련에 좀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셨을까?
아니면 노동시간에 대한 조정을 어떻게 해야 할까 싶던 나의 마음이 투영된 걸까.
8.19
끊고 싶지 않은 흐름이 생겼다.
꾸준히 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것들.
‘해야지’가 아니라 ‘하고 싶어서’로 시작된 것들.
당분간은 이 흐름을 위해 이곳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
마음을 편하게 하는 공간에서,
마음을 돌볼 수 있는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 날들.
-
진심이 담긴 사진들을 누군가에게 공유하고, 부디 좋은 에너지가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을 덧붙인다.
8.20
늘어지게 누워있다 느지막이 일어나는 날들.
한 때는 늦게 일어나는 게, 잠을 많이 자는 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게 아까운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섬으로 돌아와서부터는 안 될게 뭐 있나라는 생각을 하니
그때부턴 붙잡고 있던 것들도, 신경 쓰이던 것들도 오히려 조금씩 멀어져 간다.
-
지난 새벽에 우리 동네로 태풍이 정면으로 지나갔다는 소식.
잠결에 비바람이 치는 것을 본 것 같기도 하다.
그 와중에 꿈속에선 국적도, 나이도, 직업도 알 수 없는 사람들 속에 섞여
방을 구하고 있는 내가 보인다.
어떤 방은 침대가 없고, 어떤 방은 구조가 복잡하다.
태풍은 태풍대로, 내 운명은 내 운명대로 갈 길을 가고 있다.
8.21
성취감이 주는 힘은 미루거나 모른 척 하려던 나를 충분히 반성하게 한다.
꾸준함이 주는 변화와 그렇게 쌓여가는 힘을 미세하고도 천천히, 깊게 느낄 수 있는
수련의 날들을 경험하고 있다.
-
지금 즐길 수 있는 것, 지금 느낄 수 있는 것,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그저 마주해야지.
이런저런 이유를 앞세울 틈도 없이 발과 마음을 움직여 어느새 그 자리에 서있을 수 있도록.
더 많이 할 수 있을 때 더 많이 하고, 선택할 수 있을 때 마음껏 선택하면서.
8.22
앞뒤 맥락이 어떻든, 맨 정신이든 아니든
누군가에게 아름다움과 멋진 것에 대한 찬양을 듣는다는 건 언제나 감사한 일이다.
많이 달라졌음에도 누군가가 나의 지난날을 아름답고 멋진 사람이었다 말해 줄 수 있다는 건
큰 감동과 함께 지금의 삶에 확신을 더할 힘을 실어준다.
알고 지낸 시간보다 보지 못한 시간이 훨씬 더 길어진 이 시점에서
그 친구의 기억엔 여전히 그때의 내가 선명하게 남아있나 보다.
진심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까.
사람을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잊게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는데.
나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들이 그런 당연한 시간을 뛰어넘고
잔잔히 새겨져 있는 것 같아 더 소중해졌던 밤.
8.23
삶의 곳곳엔 쉽게 넘어지지 않도록 크고 작은 장치들이 숨어있다.
그럴수록 나의 애매하고 허술한 지금을 사랑하게 된다.
그래야만 할 것도, 조급해야 할 것도 없기로 마음먹은 지금이기에.
그런 것들이 때때로 다가와도 개의치 않았다.
이곳에 놓이기 위해 발을 옮겼고, 평온한 마음과 자유로운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자본과 노동을 조절하고 있다.
예전과는 환경과, 상황, 마음가짐이 다를 수밖에.
그러니 확신이 서지 않는 것도, 앞으로를 더더욱 알 수 없는 것도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8.24
방 안의 평균온도가 2도 정도 내려갔다.
애꿎은 창문만 열고 닫으며 밤잠을 이룬 지 몇 주만이다.
숫자로는 겨우 2도가 내려간 셈인데 지난밤엔 창문을 괴롭히지 않고 충분히 잠을 잤다.
문득 지구가 떠오른다.
겨우 2도에 잠을 자고 못 자고 가 달라지는 나인데,
가늠조차 되지 않는 크기의 지구에게 2도는 얼마나 큰 변화이자 고난일까.
숨이 막히고, 몸을 뒤척이고, 냉수를 들이켜는 나에겐 바닷바람과 선풍기바람이라도 있었지만
지구는 어디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까.
여전히 여름을 사랑하지만 마냥 뜨거워지는 공기를 즐거워만 할 수 없는 것 같아 서늘해지는 밤.
8.25
어디서, 누구에게 태어날지는 어쩌다 정해졌을지언정
어디서, 어떻게 눈을 감을지는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생애가 되기를.
바닷가를 걸으며 행복해하는 날들이 많아졌고,
흥미롭지 않은 것들을 억지로 해나가는 일이 거의 사라졌다.
노동을 조절하며 마음의 여유가 채워졌고,
그 에너지가 스치듯 만나는 사람들에게 편안히 전달되기를 바란다.
-
모쪼록 잘 정리되어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곳에 자리를 잡고,
좀 더 가볍게 세상을 돌아다닐 수 있기를.
‘자리를 잡다’와 ‘돌아다니다’가 공존하는 삶을 꿈꾼다.
8.26
호르몬의 변화도, 정리되지 않은 것들도, 우울한 에너지도
켜켜이 쌓아 올린 나의 행복을 쉽게 방해하지 못했다.
-
자리에 앉아 진득하게 집중하는 일이 글을 쓰는 행위 자체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아무렇지 않게 글을 써 내려가기엔 나의 산만함이 함께 한다.
‘호흡’과 ‘집중’에 관한 키워드를 끌어당겨봐야지.
8.27
작은 꽃 한 송이와 커피를 사며 누군가에게 전해지기까지의 그 과정과 시간이
즐겁고 행복했던 날.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훨씬 더 큰 것 같다.
-
공들인 것에 대한 것과 동들이지 않은 것에 대한 반응이 뒤바뀔 때가 있다.
어쩌면 힘을 뺀 것이 더 편안하게 전달되는 걸 지도 모르겠다.
공들인 것들은 힘이 너무 들어가서 미처 메시지가 닿지 못한 걸까.
8.28
오늘 나는 두 번의 비명을 질렀다.
선명하고 커다란 무지개를 보았을 때 한번,
믿을 수 없을 만큼 쏟아지는 별을 마주했을 때 한번.
앞만 보고 길을 걷던 내게 누군가의 손짓이 알려준 무지개였다.
두 눈이 멀쩡해도 놓칠 뻔했던 순간을 덕분에 놓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분무기로 물이라도 뿌리듯 별이 쏟아지는 것을 보며 저절로 나왔던 탄성은
때마침 고개를 들어 올린 나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였다.
자연은 매 순간이 최고의 영화다.
자연dms
8.29
잠을 자는 중에도, 깨어있는 중에도 무언가 조금 달라진 기분.
말로는 설명되지 않지만 느낌만은 뚜렷한 날들.
수련을 하던 어느 날엔 내 호흡을 바깥이 아닌 몸속으로부터 진하게 느꼈고,
아무도 없는 밤거리와 숲길을 지날 땐 언젠가 만나게 될 고요하고도 아름다운 세상을
미리 만나본 듯했다.
자본을 채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들이 있음을 날이 갈수록 더 깊게 마주친다.
지금의 이 상태를 이어가려면 어떤 것을 더 많이 내려놓아야 할까.
8.30
여기저기에서 트랙터로 밭을 다진다.
체감온도는 아직 여름인데 시기상으로는 조용히 계절이 바뀌고 있나 보다.
아무래도 시간의 속도가 빠르긴 하다.
떠오르는 대로 행동하고, 좋아하는 것만 했는데도 물리적 시간은 따로 여유공간이 남지 않는다.
많이 느슨해지고, 많이 게을러진 요즘.
8.31
끊임없이 최소한의 삶을 궁리하게 되는 날들.
얼마를 버느냐를 내려놓고, 그 대신 무엇을 얻고 있느냐를 떠올려봤다.
매일이 다른 바다와 하늘을 가까이에서 실컷 바라보는 것,
적당히 사람을 마주하고, 하고 싶은 만큼 수련을 할 수 있는 것.
몸과 마음이 전보다 훨씬 더 편안하다는 것,
좋아하는 것들을 자주 마주친다는 것.
‘돈’이라는 물질적 결과물 대신 다른 것들을 더 많이 벌고 있음을 깨닫는다.
나를 더 진정성 있고 단단하게 채워주는,
나의 감정을 점점 더 깊고 자연스럽게 만들어주는 것들을 얻고 있다는 것을.
느긋함을 배우고, 스스럼없이 세상과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의 여유를 조금씩 더 넓혀가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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