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캐스트어웨이라는 영화를 보고 있었다. 외로움에 대한 영화였다. 순간 왜 모든 사람들에게 외로움이란 해결되지 않는 문제일까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나에겐 외로움이란 뭘까 생각했다. 나는 내 세계를 충분히 알아주는 사람이 없을 때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누군가의 세계는 어렵다. 현재 주변을 인지하고 있는 그 초점, 그런 현재를 만든 과거의 경험, 그 경험을 구성하도록 한 개인의 기질과 성향, 내/외부와의 소통 방식 등 많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나는 늘 한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정말 어렵고 복잡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장기간의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고, 누적된 시간과 소통의 조화로 상대에 대해 겨우 한 두 가지를 알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표면적으로 보아서는 한 인간에 대해서 거의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언제나 나에게 누군가를 알아가는 일이란 영원한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고, 누군가에 대해 잘 안다는 문장을 내뱉는 건 나무나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사람에 대한 이런 내 믿음이 나를 필연적으로 외롭게 만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누군가를 이해하고 있다는 깊이의 기준을 낮추면 더 인생이 쉬워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떤 일을 하는지, 머리 색은 무엇인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뭐 그 정도만 알아도 “와 당신은 나에 대해 (혹은 나는 당신에 대해) 정말 잘 아는군요!”라며 웃을 수 있다면 인생이 다섯 배 정도는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자꾸 깊어져서 자신만의 뾰족한 기준을 가지게 되면 그 날카로움이 자신을 향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바라게 됐다. 누군가 내가 좋아하는 음식 한 두 가지, 좋아하는 작품 한 두 가지를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상대가 이미 나를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쉬운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그래서 내 세상에 내 세계를 충분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는 생각 속에 살 수 있기를 바라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