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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기록 May 09. 2019

엄마의 엄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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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 안녕하세요.

그곳에서는 잘 지내고 계시나요?

저는 지금 당신의 딸과 함께 일본의 어느 작은 섬에서 4주간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토록 오랜 기간의 여행을 엄마와 함께라니, 사실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이 현실 같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래도 꽤나 즐기고 있답니다. 당신의 딸이 이렇게나 모험심이 강하고 여행을 좋아했던 것을 알고 계셨나요? 혹시 당신을 닮은 건가요? 이렇게 긴 시간 동안 24시간 내내 붙어있으니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게 돼요. 그중 최근 들어 자꾸 외할머니 당신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아무래도 저 역시 '엄마'가 될 준비 중이어서 그런 걸까요? 어린 혜영의 모습은 어땠는지 궁금했어요. 어린 혜영도 바다를 좋아했는지, 지금처럼 나무를 좋아했는지, 생각해보니 외갓집 화단엔 수많은 화분들이 가득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꽃을 좋아하는 건지, 엄마를 닮은 건지, 아빠를 닮은 건지, 와 같은 것들요. 당신의 여리고 어린 딸은 어느새 곧 당신의 나이에 가까워진답니다. 그런 딸이 대답했어요. "우리 엄마, 아빠는 바다 같은 건, 여행 같은 건 가본 적이 없어서 좋아했는지 안 좋아했는지 몰라. 뭘 좋아하셨던 걸까"라고요. 그 대답을 듣는데 가슴이 조금은 아파왔어요. 그래서일까요. 당신의 딸은 당신이 뭘 좋아했었는지 알지 못한 채 그 답을 알고 싶어 모든 것에 관심을 보이고 애정을 가지는 건 아닐지, 당신과 해보고 싶었던 것을 나와하고 있는 건 아닐지, 하는 생각도 조금 들기 시작한 거요.


솔직히 말해서 저는 너무 어렸을 때라 당신이 잘 기억나질 않아요.

선명한 기억이라곤 금암동 그 빨간 대문 집과 맞은편 큰 집을 빌려 집 장례를 치를 때, 쉬지 않고 퍼지던 향내음과 통곡소리만이 전부입니다.

대신 희미한 기억은 있어요. 엄마 몰래 쥐어주던 알사탕이라던가, 아궁이에 불을 지피던 뒷모습, 그리고 대청마루에 저를 앉혀두고 맞은편에서 손빨래를 하시며 웃으시던 장면들 같은 거요.

저는 말을 잘할 수 없는 나이였으니 당신과의 대화도 남는 게 하나도 없군요. 대신 말을 할 수 있게 된 나이에 외갓집에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당신들을 두고서 이런 말을 쉴 새 없이 하던 기억은 나요. "엄마, 우리 집에 언제가? 빨리 가자" 그러면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그래, 늦겠다. 어서 가라"하며 아쉬움은 보이지 않은 채 얼른 엄마와 저를 돌려보내곤 했어요. 그때는 왜 몰랐을까요. 엄마도 엄마와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외할머니라는 분이 저에게는 참 따뜻한 기억이면서도 낯선 느낌입니다. 사실 외할아버지와의 추억은 어느 정도 있는데, 할머니랑은 그다지 추억이 없는 것 같아요. 외할아버지는 저를 자전거 뒷자리에 앉히고선 금암동에서 덕진동까지, 혹은 모래내시장에 데리고 나가시길 좋아하셨죠. 하얀 바지에 하얀 구두를 신고 멋진 중절모를 쓰시고선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셨던 기억이 나요. 어딜 가나 "우리 외손녀야, 예쁘지?"자랑하셨던 것도 기억나고요. 그 시간에 외할머니 당신은 아마도 방을 쓸거나, 부엌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계시거나, 그 대청마루 맞은편 수돗가에서 흰색 세탁물을 손으로 빨고 계셨겠죠.


외할머니. 죄송합니다.

엄마와의 시간을 많이 남기지 못한 게 꼭 제 탓인 것만 같아요. 어렸을 때 외갓집에 자주 놀러 갔다,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제와 커서 들어보니 2주, 길면 한 달 이렇게 외갓집에 제가 맡겨졌다고 해요. 아마도 오빠와 제가 연년생이라 맞벌이 부부셨던 부모님, 나이 든 할머니가 저희 오누이를 한 번에 키우는 게 힘드셔서 그랬었나 봐요. 그때, 이모도 결혼하기 전이라 제가 꼭 이모와 같이 잤다고 해요. 그러고 보면 흰색 레이스 커튼 사이로 햇살이 떨어지던 나무 가구들로 둘러싸인 작은 방이 생각나요. 그게 이모 방인 거죠? 엄마는 결혼을 하고 나서야 더 외할머니와 가까워졌나 봐요. 왜, 그런 말 있잖아요. 딸이 '엄마'가 되면 그제야 더 엄마와 친해진다고. 아마도 저로 인해 더 그런 마음이 생겼을 텐데요. 저는 친가에서는 항상 두 번째였어요. 제일은 아들이라, 오빠에게 밀려 이쁨도 덜 받고 매번 비교당하고 그랬거든요. 실제로는 아니었을지라도, 최소한 제 기억에는 그래요. 전 항상 천덕꾸러기 취급이었고, 오빠는 의젓한 '오빠'였던. 그런데 왜 그 꼬맹이는 자기를 그렇게나 차별 없이 예뻐해 주던 외갓집에서의 시간보다 얼른 '집'에 가고 싶어 했던 건지 조금만 지루해지면 "집에 가자!"라고 엄마한테 칭얼대기 일쑤였죠. 어쩌다 아빠도 함께 방문했을 때면, 제가 그렇게 칭얼대면 곧바로 "그래, 이만 장인어른 장모님 쉬시게 우리 가자"하고 거들었어요. 아빠의 배려였을지라도 엄마와 엄마의 엄마, 아빠한테는 퍽 서운한 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서른둘을 먹은 지금에서야 듭니다.


당신께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살아계실 때 해드렸으면 더 좋았을 테지만, 그때는 제가 꼬마였으니까 봐주세요. 당신의 딸을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의 엄마를 나에게 보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저렇게나 천진하고 맑고 지혜로운 여자로 길러주심에 감사합니다. 그녀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아껴주시고 돌봐주셨음에 감사합니다. 꼭 한 번 안아드리고 싶은데, 어쩔 수 없네요. 사실 외모로는 이모가 외할머니와 똑 닮았어요. 엄마는 외할아버지와 조금 더 가깝고요. 그래도, 어느 한 부분만큼은 엄마에게 외할머니 당신의 어딘가가 똑같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 눈동자라던지, 귓불이라던지, 따뜻한 심성 같은 거요. 그러니까 저는 당신의 딸을 꼬옥 안으며 당신의 일부분을 뜨겁게 안겠다고 생각하겠습니다. 할머니도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신다면 느껴주세요. 30대가 되어버린 철없는 외손녀가 당신의 딸을 통해 당신을 안아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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