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괜찮은 척, 계속하고 있습니다”
나만 힘든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누군가는 더 나은 직장을 가고, 누군가는 예쁜 집을 구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SNS 속 그들은 오늘도 반짝이고 있는데,
나는 겨우 하루를 견뎠다.
누가 보기에 괜찮아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겨우 숨만 쉬며 버티고 있다.
어떤 날은 출근 전에 울었다.
책상 앞에 앉아서도 계속 어지럽고,
가끔은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이게 다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걸 병원을 다녀오고 나서야 알았다.
그런데 말이야,
이 모든 걸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살아야 했어.
사회는 솔직함보다 기능을 원했고,
회사는 감정보다 성과를 원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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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친구들, 아무 말 없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
나는 한동안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도망치고 싶어서.
아무와도 연락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사라지고 싶었다.
그런데도, 그 녀석들은 변함이 없었다.
“야, 피시방 ㄱ?”
톡 하나가 띡 왔다.
읽씹 했다. 그런데도 또 온다.
“칼바람 한 판만 하자.”
나는 칼바람이 뭔지도 몰랐다.
그냥 불려 갔다.
“야, 너 칼바람 할 줄 모르지?”
“그냥 따라와, 이거 쉬워.”
어버버 하고 있으면,
“야, 일단 스킬부터 써봐.”
“아 씨 X, 궁은 그렇게 쓰는 거 아니다!”
“ㅋㅋㅋㅋ 또 죽었네 아휴 ㅋㅋ”
혼나면서도,
가끔 킬이라도 뜨면
“오? 오늘 좀 하는데?”
“야, 우리 팀 희망이네.”
그렇게 놀리면서도 띄워주는 친구들.
어느 순간부터
나도 그 게임을 진짜 즐기고 있었다.
이제는 내가 먼저 “칼바람 ㄱ?” 하고 톡을 보낼 때도 있다.
오래된 친구들이란,
그렇게 내 삶 안으로 스며들어 있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우리는 여전히 가끔 만나서
같이 밥을 먹고, 피시방을 가고, 당구를 치고.
그냥 실없는 농담을 던지고,
군대 이야기나 옛날 얘기로 시간을 보낸다.
다른 건 다 변해도,
이 관계는 그대로다.
어디에서도 힘들다고 말할 수 없을 때,
그냥 “야, 게임 한 판 하자.” 하고 찾아갈 수 있는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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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친구들도
인생에서 진짜 힘든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다.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우리는 별다른 말 없이 다 모였다.
누가 먼저 연락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하나둘씩 장례식장에 나타났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할 말을 잃고 앉아 있었다.
“야, 괜찮냐?” 같은 말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누군가 국밥을 한 숟갈 떴다.
그리고 별거 아닌 소리를 툭 던졌다.
어이없다는 듯 다들 피식 웃기 시작했다.
조금씩 분위기가 풀렸다.
우리는 울지 않았다.
“힘내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예전처럼,
늘 그랬던 것처럼
그 친구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건,
그 친구에게도, 우리에게도
최선의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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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서는 이를 ‘감정 노동’이라 부른다.
하버드대 연구에 따르면
‘겉으로 괜찮은 척’하는 감정 억제는
신체 피로뿐만 아니라
‘정체성 소진’을 유발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괜찮은 척하며 버틴 하루는
절대 가벼운 하루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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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 글을 읽는 너도
버티는 게 너무 힘들다면,
네 곁에도 아무 말 없이
함께할 누군가가 있을지 모른다.
때로는 위로라는 게,
“괜찮아”라는 말보다
“야, 피시방 ㄱ?” 같은 말로 다가올 때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오늘도,
너만의 방식으로
한 판 더 버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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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버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