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한

마음들

by 지훈

며칠 전, 친구가 말했다.

“넌 말보다 표정이 더 솔직해.”


그 말을 듣고, 이상하게 마음이 쿡 찔렸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이미 다 들킨 것 같아서.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말하지 않는 쪽을 택한 적이 많았다는 걸.

말이 돌처럼 가라앉아 버린 날들.

무거운 진심을 품은 채 아무렇지 않게 웃던 순간들.


사실, 그 시절엔 말을 꺼낼 용기가 없었다.

“힘들다”라고 말하는 것조차 어색했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건 민폐 같았고,

울컥하는 감정을 보이는 건 철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냥, 삼켰다. 말보다 침묵이 편했다.


하지만 감정은 참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말하지 못한 마음은 몸속 어딘가에 고인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터져 나온다.

그날이 바로 내게는 ‘무너진 날’이었다.




그날은 공연 연습과 회사

야근 사이에 끼어 있던 날이었다.

배역 오디션 준비와 현생의 압박이 겹쳐

몸도 마음도 이미 지쳐 있었던 순간.


책상 앞에 앉아 멍하니 대본을 보다 말고,

갑자기 눈물이 뚝, 하고 떨어졌다.


연기 때문도, 대사 때문도 아니었다.

그냥 너무 지쳐서, 너무 외로워서,

버티는 내 모습이 안쓰러워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사실 나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다.

강한 척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해보기도 하고,

“나 요즘 좀 힘들어”라는 말을 연습해보기도 했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그 연습이 나를 살렸다.




자기 객관화는 그런 것 같다.

내 마음의 소리를 무시하지 않고,

어느 지점에서부터 힘들어졌는지를 살펴보는 일.


때론 휴식도 단순한 쉼이 아니라,

나를 돌보는 점검의 시간일 수 있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는 원동력은

크고 멋진 동기부여가 아니라,

내 마음을 꾸준히 들여다보는 작은 연습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모든 과정을 ‘나답게’ 이어가는 것.

남의 속도에 휘둘리지 않고,

내 마음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걷는 일이다.




지금도 여전히 말하지 못한 마음은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된 지금,

나는 예전보다 훨씬 단단하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말하지 못한 마음을 품고 있다면,

오늘 하루, 그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조금씩, 천천히.

우리의 속도로.

그러면 분명,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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