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하다 방귀 뀌어봤나요

by 몸을 쓰는 철학가
ChatGPT Image 2026년 3월 30일 오전 10_58_38.png

운동 전 점심으로 청국장을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부터 이미 모든 일은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게 참 단순하다. 청국장을 먹으면서도 나는 아주 태평했다. 단백질도 있고, 발효식품이고, 몸에 좋고, 장에도 좋고, 어쩌고 저쩌고.

늘 그렇듯 몸에 좋은 것과 사회적으로 안전한 것은 같은 뜻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날 나는 아주 비싼 수업료 대신 아주 민망한 경험으로 배우게 되었다.


운동하러 간 날이었다.

딱히 무리한 날도 아니었다.

평소처럼 몸을 풀고, 기구를 정리하고, 운동 루틴을 마무리하는 그런 평범한 날.

문제는 늘 평범한 날에 생긴다.

인생의 창피한 일들은 대개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설마 이런 일로?” 싶은 순간에 찾아온다.


그날 헬스장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정확히 말하면 음악이 나오긴 나오는데 아주 작았다.

운동하는 사람들의 숨소리와 말소리 그리고 기구 닿는 소리가 제법 또렷하게 들렸다.


게다가 우리 헬스장은 굉장히 소규모다.

넓고 북적이는 대형 헬스장이 아니라서

누가 어디서 뭘 하는지 대충 다 보이고,

작은 소리도 생각보다 쉽게 퍼지는 그런 공간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그날은 정말 민망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첫 번째 사건은 폼롤러를 정리하다가 일어났다.


폼롤러를 제자리에 갖다 두려고 허리를 살짝 숙였는데, 그 순간이었다. 정말 예고도 없이, 변명할 틈도 없이, 아주 짧고도 분명한 소리가 났다.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내가 낸 소리인가? 아닐 수도 있지 않나?

기구 소리일 수도 있고, 어쩌면 세상이 잠깐 나를 시험한 걸 수도 있고.


하지만 사람은 안다.

특히 자기 몸이 낸 소리는

세상 누구보다 자기가 제일 잘 안다.


맞았다.

그것은 내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폼롤러만 유난히 정성스럽게 정리했다.

마치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폼롤러 정리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제발 아무도 못 들었기를.


그런데 이런 바람은 대개 두 번째 사건의 예고편일 뿐이다.


짐볼을 정리하다가 두 번째가 터졌다.


정확히는, 짐볼을 밀어 넣는 순간

내 몸도 무언가를 함께 밀어냈다.


이번에는 첫 번째보다 조금 더 분명했다.

부정할 수 없는 어조였다.

“네, 맞습니다. 방금도 저였습니다.”

내 몸이 아주 솔직한 성명서를 낸 느낌이었다.


나는 그 순간

접시물에 코 박고 싶다는 말의 진짜 뜻을 이해했다. 그냥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

아주 잠깐이지만 작은 접시만 있으면 거기에라도 얼굴을 묻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하필 그날 헬스장 음악은 왜 그렇게 작은지.

이럴 때만 세상은 꼭 내 편이 아니다.


넓은 공간이었다면 어딘가에 섞였을지도 모를 그 소리가, 그날은 유독 선명하게 내 쪽에서 출발한 사건처럼 느껴졌다. 민망함에도 공간감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여기서 끝났으면 그날은 그냥 조금 민망한 해프닝으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가끔

한 번의 실수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나는 화장실로 걸어가다가 세 번째를 뀌었다.


이쯤 되면 실수도 아니고 흐름이다.

서사다. 기승전결 중 ‘전’이 아니라 거의 ‘결’에 가까운 완성도였다.


걸어가다가.


정말이지 그 장면이 제일 슬펐다.

폼롤러를 정리하다가, 짐볼을 정리하다가, 그래, 그건 몸의 각도나 힘의 문제였다고 치자.

그런데 화장실로 걸어가는 중에 또 한 번이라니. 이건 내 몸이 나와 협의 없이 독자 행동을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려고 애썼다. 아무렇지 않은 사람처럼 걷고,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시선을 정면에 두고,

이 세상에 방금 세 번이나 방귀를 뀐 사람이 아니라 그저 물 마시러 가는 사람 1처럼 행동했다.


그게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품위 유지 방법이었다.


이상하게도 사람은 정말 창피하면 오히려 더 태연한 표정을 짓는다.

안 그러면 무너지니까.


마음속에서는 이미 난리가 났다.

끝났다.

오늘 운동은 망했다.

앞으로 이 헬스장 못 오는 거 아닌가.

회원권 남은 기간은 어떻게 하지.

이 구역 사람들 머릿속에 나는 이제 어떤 사람으로 저장되는 걸까.


게다가 헬스장이 작으니 어디 숨을 데가 없었다. 대형 헬스장에서는 각자 운동하느라 바쁘고 소리도 여기저기 흩어질 텐데,

이 작은 공간에서는 괜히 내 창피함만 더 또렷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무도 신경 안 썼을 수도 있는데 나만 혼자 헬스장 전체의 고요를 등에 지고 있는 기분.

그게 더 사람을 작아지게 만든다.


그런데 얼굴은 세상 침착했다. 오히려 너무 침착해서 누가 보면 내가 그날 헬스장 운영자라도 되는 줄 알았을 것이다. 폼롤러 상태도 확인하고, 짐볼도 정리하고, 시설 점검 후 화장실로 이동하는 관리자처럼.


물론 속은 아니었다.

속은 이미 울고 있었다.


부끄러운 순간에는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왜 하필 청국장을 먹었을까.

왜 하필 오늘 음악이 이렇게 작을까.

왜 하필 내 몸은 이렇게 성실하게 결과를 내는 걸까.

왜 하필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일까.


그리고 결국 마지막에는

이런 생각까지 도착한다.


나이를 먹는 건가.


이게 참 웃기다.

방귀를 세 번 뀌고 나서 도달한 결론이

소화나 장 건강이 아니라 노화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라는 게.


그런데 정말 그런 마음이 들었다.

예전에는 몸이 좀 더 사회적이었다고 해야 하나. 최소한 공공장소에서 이 정도까지 솔직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몸이 점점 내 체면보다 자기 사정을 먼저 말하는 것 같았다.


배가 부르면 부르다 하고,

아프면 아프다 하고,

피곤하면 피곤하다 하고,

가스가 차면… 그건 굳이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말 안 해도 되지 않나 싶은데

몸은 또 자기 할 말을 한다.


어쩌면 나이를 먹는다는 건 몸이 점점 더 정직해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젊을 때는 어찌어찌 감추고 버티고 억누르던 것들이 이제는 “왜?” 하고 되묻기 시작하는 것이다.


참는 건 네 사정이고,

나는 지금 내 일을 하겠다는 식으로.


생각해 보면 웃긴 일이다.

어른이 되면 점점 더 품위 있고

단정한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현실은 헬스장에서 청국장의 여파를 온몸으로 수습하는 사람이 된다.

삶은 왜 이런 식으로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신기한 건,

그날 집에 와서 한참 지나고 나니 민망함보다 웃음이 더 크게 남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정말 접시물에 코 박고 싶을 만큼 창피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싶고,

누가 들었을까 싶고,

다신 그 시간대에 운동하나 봐라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 장면이 자꾸 웃겼다.


폼롤러를 정리하다가 한 번.

짐볼을 정리하다가 한 번.

화장실로 걸어가다가 한 번.


너무 완벽한 삼단 구성이었다.

마치 누가 짜놓은 코미디 같았다.

웃기려고 한 것도 아닌데 몸이 혼자 너무 정직하게 상황을 연출해 버린 것이다.


게다가 배경은 조용하고, 음악도 작고, 헬스장도 작은 공간. 민망함이 퍼질 데도 없고 숨을 데도 없는 무대였다. 지금 생각하면 조건이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웃기다.


사람은 자기 인생의 민망한 장면을

바로 그날에는 비극처럼 느끼지만,

며칠만 지나면 제일 좋은 이야기 소재가 되기도 한다. 특히 웃픈 일들은 그렇다.

그날의 나는 죽고 싶었지만,

오늘의 나는 그 얘기를 하며 웃고 있다.


그 차이가 회복인 것 같다.


살다 보면 품위 있게 넘길 수 있는 날보다

어이없게 버텨야 하는 날이 더 많다.

우아하게 정리되는 날보다 “아, 진짜 왜 하필” 하며 얼굴을 감싸 쥐게 되는 날이 더 많다.


그런 날에도 결국 우리는

아무렇지 않은 척 물을 마시고,

아무렇지 않은 척 정리정돈을 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집에 돌아온다.


그리고 나중에야 안다.

아, 그것도 사는 거였구나.


조금 창피하고,

많이 웃기고,

그 순간엔 죽고 싶었지만

돌아보면 남는 건 결국 “진짜 별일 다 있었다”는 웃음이다.


이제는 누가 내게 운동하면서 제일 힘든 게 뭐냐고 물으면 근육통이나 유산소를 말하기 전에 잠깐 청국장을 떠올리게 된다.


운동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점심 메뉴와의 협업일 수도 있다는 걸 나는 몸소 배웠다.


그리고 언젠가 또 비슷한 일이 생긴다면,

물론 그 자리에서는 또 죽고 싶겠지만,

아마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할 것 같다.


그래, 인생이지 뭐.


우리는 생각보다

대단한 실패보다

이런 사소하고 민망한 순간들로

더 인간다워지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 좀 창피한 일이 있었다면

너무 오래 이불 킥하지 않아도 된다.

삶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예상 못 한 방식으로 소리를 낸다.


문제는 그 소리 자체가 아니라

그 뒤에도 운동복을 챙겨 입고

다시 헬스장에 갈 수 있느냐일 것이다.


부끄럽지만 철면피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그날의 나를 이제는 조금 칭찬해주고 싶다.


어쨌든 나는 도망치지 않았고,

세 번이나 겪고도 쓰러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 일을 이제는 웃으며 꺼낼 수 있게 되었으니까.


나이를 먹는다는 건

어쩌면 덜 창피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창피한 일을 겪고도 결국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게 좀 웃프고, 많이 웃기고,

그래서 더 우리 사는 이야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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