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어딜 가도 이상한 사람들은 왜 꼭 있을까?

우리들 주변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늘 존재합니다. 통계적으로 100명 중 4명은 심각한 수준으로 다른 사람과의 공감능력이 현저하게 낮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 비율이라면 직원이 200명인 회사에서는 8명이 좀 많이 이상한 사람일 수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평상시에는 별로 이상한 것을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성은 교육의 힘으로 또는 사회적 통제로 평상시는 내면에 깊이 잠들어 있다가, 어떤 상황에서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그 특성이 튀어나오는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이런 특성은 좀처럼 변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성인이 된 이후, 특히 장년의 나이가 되면 이미 오래전에 굳어진 이런 성향이 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죠. 


'평생 O아이 보전의 법칙'이란 말을 아주 오래전에 제가 같은 회사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때 딱딱한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재미있는 말로 처음 만들어서 말했었습니다. 이 말의 뜻을 풀어서 말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평생 살면서 만나야 할 이상한 사람들의 전체 총량은 어쩌면 운명처럼 정해져 있을지 모른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지금 여기서 만난 이상한 사람이 싫어서 다른 곳으로 피해 간다 하더라도, 거기서도 똑 같이 이상한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피하지 말고 싸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차라리 지금 이상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 나중에 만나야 할 이상한 사람들을 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물론 신입사원들에게 재미있게 말하려고 지어낸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처음 하고 나서 십여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어느 조직, 어느 계층에도 꼭 이상한 사람들이 있더란 이야기입니다.  


 평상시에도 이상한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 직장에서 어떤 사람이 이상한 사람인지 정의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상시에는 전혀 문제가 없이 멀쩡합니다. 그러다가 특정한 어떤 상황이 되면 자신의 본래의 성격들이 튀어나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에 그 사람이 평상시는 괜찮은데, 이럴 때만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합니다. 아무리 이상한 사람도 항상 똑같이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이 문제를 일으킬 때를 기준으로 해야 합니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심지어 분노조절에 문제가 사람들도 자신이 편할 때는 다른 사람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좋을 때의 모습을 기준을 삼으니 자꾸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그냥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회사라는 곳이 선택된 사람들, 즉 일정 수준의 교육을 받고,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선발되어 일하는 곳이라 일반적인 확률보다는 이상한 사람이 있을 확률이 낮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회사에서도 이상한 사람들은 적잖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서 상처 받고 있습니다. 어쩜 우리가 상처를 주는 그 이상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이상한 사람들을 알아보는 눈과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맞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냥 참고 피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은 아닙니다. 이런 이상한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에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피하는 것을 경험할수록 더욱 자신의 행동에 자신감을 가지고 정당화시킵니다. 


이상한 사람들을 알아보는 눈과 맞설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사람을 나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특정한 어떤 상황에서 이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못되게 굴 확률이 54%이고, 저 사람은 남들에게 선한 행동을 할 확률이 76%, 뭐 이런 식으로 측정하기도, 수치화 하기도 불가능합니다. 


우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과 악의 경계선으로 나누기 불가능한 애매한 경계선상에서 행동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더군다나 남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정작 남에게는 해를 끼친 사람들은 그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혼자서만 괴로워하고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 


몇 년 전 '미움을 받을 용기'라는 책이 장기간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습니다. 좋은 책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그 책이 유독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장기간 베스트셀러였다는 것입니다. 


이는 두 나라의 독특한 사회문화에서는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 하지 못하고, 혼자서 인내하고, 보이지 않는 관습에 순종하는 것을 요구받는 보편적 정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되물어 볼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누군가 내가 당연히 가져야 할 내 권리의 선을 넘어오는 사람에게는 분명하게 경고해야 합니다. 남에게 강하게만 행동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 권리를 침해하는 사람들에게만 강해져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이상한 사람들을 만났을 때 상처를 받지 않고 당당해지려면 우리 스스로가 자존감을 강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약해지고 불안정할 때에 우리는 쉽게 다른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지배당합니다. 


"아뇨. 제 생각은 다릅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지에 대해 제가 여쭤볼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제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간단하게 말하고 넘어가실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선을 넘어오는 사람들에게 망설임 없이 이렇게 되물어야 합니다. 우리에겐 그럴 권리가 있고, 우리에게 합리적인 행동을 하지 않은 상대방은 그 이유를 설명할 의무가 있습니다. 


어차피 참고 피해봐야 어딜 가도 이상한 사람들은 또 있기 마련입니다. 여기서 맞서지 못한다면, 다른 곳에서도 또 피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한번 마주한 두려움은 더 이상 두려움이 되지 못합니다. 이상한 사람들로부터 우리의 권리와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일에 더 이상 망설이지 말아야 합니다.


참 그리고 한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식스센스의 브루스 윌리스가 결국 나중에 보니 00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반전이 있듯이, 우리가 위에서 말한 그 이상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자신은 전혀 모르고 살 수 있습니다. 


내가 그토록 피하고 싶은 이상한 사람이, 알고보니 나였고, 다른 사람이 그토록 피하려는 사람이었다는 반전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전 03화 직장에서 사람에게 상처 받는 분들에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