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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사람에게 상처 받는 분들에게

왜 우리는 항상 상처 받고 후회하는가?

 직장 생활에서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나의 삶에 끼치는 영향은 엄청납니다. 업무 자체보다는 사람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는 더욱 크고, 상처가 깊고, 회복이 더딥니다.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는 사회경력이 아무리 풍부하고, 사람들을 많이 만났더라도, 항상 사람을 아프게 합니다. 특히, 자신이 진심으로 호의를 베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호의를 받았던 사람에게서 얻게 되는 상처는 더욱 큽니다. 


 상대가 나를 그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대하다가, 더 이상 얻을 이익이 없다고 생각된 후 차갑게 변하는 것을 경험하기도 하고, 습관적으로 쉽게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경험할 것입니다. 


 아무리 외면하고 애써 태연한 척을 해도, 매일 보기 싫은 사람들을 매일 보고 살아야 하는 고충은 실제로 경험하지 못하면 짐작조차 하기 힘듭니다.


 오랜 기간 동안 관찰할 수 있었던 직장생활에서 사람들이 많이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할 거라고 믿는 것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더욱이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 역시 부질없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이기적이고, 배타적이며,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사람이 내리는 결정이나, 품게 되는 감정은 의외로 스스로 설명하지 못할 만큼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살면서 그냥 감정과 본능이 가는 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다 할 이유 없이 막연하게 타인에 대한 경계심과 적대감을 가집니다. 그리고 그것이 본인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나, 과거의 마음의 상처와 융합이 되면 크게 증폭됩니다. 다시 말해서, 누군가에게는 그냥 싫은 사람, 그냥 왠지 꼴 보기 싫은 사람은 늘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어떤 경우는 그냥 싫은 대상을 정해 놓고, 그러고 나서 그 상대의 나쁜 점을 그때부터 찾기 시작하기도 합니다. 이 의견에 동의하기 힘든 사람이라면, 인터넷 게시판에 있는 댓글들을 10분만 읽어 보시면 됩니다. 거기서 서로 싸우는 사람들의 말들 사이에는 어떤 논리와 근거가 있지 않습니다. 익명성 뒤에 숨어서 악담을 하고 물어뜯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험담을 즐겨하는 사람들은, 마치 인터넷에 댓글을 달듯이, 자신의 험담이 들키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평상시 멀쩡한 사람들도 익명성이라는 가면을 쓰는 순간 무자비한 맹수가 됩니다. 


 회사라는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 입사한 사람은 어느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침입자로 무의식 속에 간주될 수 있습니다. 본능적으로 경계하고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팩트와 추측을 적절히 섞어서 험담을 하기 시작합니다. 


 새로 입사한 사람은 그 조직 구성원 사이의 보이지 않는 관습을 잘 모르고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알게 되더라도 굳이 그런 관습에 따르고 싶지 않아 거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누군가의 경계심에 불을 붙여서 험담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기존에 오래 근무했던 직원들 사이에서도 갈등은 흔하게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는 무리를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끊임없이 그 무리와 소통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합니다.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들도 싫어하게 만드는 일에 끊임없이 집착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누군가를 싫어하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을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도 저 사람이 왜 싫은지 설명하기 힘들지 모릅니다. 시간이 지나면 미워하기 위한 이유를 만들기 위해서 미워합니다. 


그런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 사람들은 멘탈이 아무리 강해도 지치기 마련입니다. 바로 옆자리에서 자신을 싫어하고, 또 자신도 싫어하는 사람들과 매일 같이 근무하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시킵니다.   


그리고 착한 사람일수록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자책하게 되면서 더 에너지를 소비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으로 자신의 삐뚤어진 마음을 위로받는 삐뚤어진 사람들인 것입니다. 

 어차피 나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일부 사람은 나를 싫어할 것이니, 그냥 신경 쓰지 말고 내 맘대로 살자는 말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고도 어쩔 수 없다면, 이것에 상처 받지 말자는 의미입니다. 


미움을 받은 용기는 상대에 따라 반드시 필요합니다. 


교묘하게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짐작 이상으로 주변에 많습니다. 자신의 할 일을 후배들에게 은근슬쩍 넘기는 사람들, 자기가 책임질 일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일에는 절대 나서지 않는 사람들은 직장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의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 상황이 되기 전까지는 그런 행동을 할 것을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평상시 친근하게 지내는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조차도 서로 친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해도 된다고 스스로 확신하기 때문에 별로 죄책감은 없습니다. 그들은 오랜 기간 동안 천천히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들의 행동들은 친근감, 신뢰감, 동정심, 소외감 등을 적절히 섞어가며 이용합니다. 서서히 그들의 요구에 익숙해지고 나면, 그들이 원하는 프레임에 갇히게 됩니다.  


 직장에서 친한 선배라는 이유로, 친한 동료라는 이유로 선을 넘는 부탁을 계속하거나, 아니면 상대방에서 부담이나 더 나아가 불이익을 주는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호의를 가지고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일이 반복됩니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그들의 부탁을 정중하게 거절하더라도, 야박하게 친한 사람의 도움 요청을 거절한 야박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예를 들어 이런 소리 한 번은 들어봤을 것이다. “우리 사이에 이 정도 부탁을 할 수도 있지 않나?”, “뭘 이런 일로 그렇게 정색을 하고 이야기를 해요?”, “지금까지 별말 없다가 왜 갑자기 이러세요?”. 이런 말들을 들으면, 우리는 또 마음이 약해져서,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는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을 하게 됩니다.


  사실 자신의 감정이나 막연한 기분을 말로 설명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런 말들로 상대방과 논쟁을 해서 이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상대방의 부탁을 거절하기 위해, 자신의 입장을 해명하는 말이 길어질 수 있습니다. 그럼 다시 상대는 우리의 논리적 허점을 파고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자꾸 지나치게 부탁을 해오는 사람들에게는 단호하게 말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죄송한데 그건 곤란할 거 같습니다. 제가 다른 일이 있어서요 “, “제가 왜 그 이유까지 설명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다니 대리님 좀 특이하신 거 같아요" 등 다소 상대가 당황할 수 있는 답변이 되더라도, 분명한 선을 그어 놓은 필요가 있습니다. 


 남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에 능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을 상대가 미안하게 만드는 기술이 있습니다. 또한, 자신을 무시당한 억울한 사람으로 어필하거나, 상대를 몰인정한 사람으로 교묘히 몰기도 합니다. 


 그래서 조직 내에서 동료나 선배의 부탁을 예의 없이 거절한 후배라는 험담 프레임에 빠지지 않게 슬기롭게 대처해야 합니다. 부서 내에서 신뢰할 수 있는 다른 선배를 찾아서 자신의 힘든 점을 상담하는 방법이 가장 좋습니다. 같은 이유로 곤란을 겪는 사람이 또 있다면 같이 조언을 구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상식을 벗어난 무리한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내용을 간단하게라도 계속해서 업무수첩에 시간과 장소, 내용 등을 메모해 놓는 것이 좋습니다. 


 무리한 부탁을 교묘하게 반복하는 것은 그냥 그들의 습성이고 본능입니다. 그리고 유감스럽지만 그들의 생존력과 처세술은 매우 뛰어나고, 선한 사람들은 늘 그들의 호구가 됩니다. 


좋은 동료가 되는 것과,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좀 이해하기 힘든 말이 되겠지만, 엄밀히 말해서 좋은 동료가 된다는 것과 가까운 친구가 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직장 동료끼리 퇴근을 해서도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도 같이하고, 점심도 같이 먹고, 저녁이나 술도 가끔 같이 합니다. 


 점점 퇴근 후에 직장 동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급감하고 있지만, 그래도 가끔은 퇴근하면서 직장동료들과 치맥을 하며 회사 꼰대님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재미는 없어지기 힘들 것입니다.  

 

 특히, 회사나 조직의 크기가 크지 않은 곳은 더욱 이런 공동체 문화가 강합니다. 어떤 때에는 필요 이상으로 굳이 공개하고 싶지 않은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어쩌다 하게 되고, 굳이 끼고 싶지 않은 저녁 자리에도 앉아 있어야 하는 경우도 많아집니다. 프라이버시를 지키고 싶은 일정한 거리를 무시하고 불쑥 들어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성과를 내야 하는 회사라는 조직에서 좋은 동료는 자신의 일을 잘 해내고, 팀에 큰 도움이 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과 친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이끄는 사람일지라도, 자신이 맡은 일에 자주 문제가 발생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이 일로 영향을 받는다면, 좋은 동료가 아닙니다.  


 더군다나 지금은 서로 모여서 일을 하는 시대는 갔습니다. 원격으로 일을 하면서, 필요한 사람들만 필요할 때 모여서 일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갑니다. 일은 좀 못해도 사람이 좋으면 그냥 넘어가던 그런 시절은 이미 끝난 지 오래되었습니다. 


우리는 회사에서 너무 인간관계에 너무 집착하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자신의 일도 잘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중요시 여긴다면 모르겠지만, 자신의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남의 일에 매우 관심을 가지고 간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참으로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에 이상하리 만큼 집착하고, 그런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려고 합니다. 특히 우리는 부정적인 의견을 너무 자주 어필하거나, 다른 사람들에 대한 비판을 즐겨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멀리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참 아는 것도 많습니다. 회사에 과거에 있었던 일들, 다른 부서나 사람들에게 있었던 일들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퇴사하고 나간 직원들의 근황까지도 너무 잘 알고 지냅니다. 


 이런 사람들은 새로 누가 입사를 하거나 전입을 오면, 반가워합니다. 여러 가지 일들을 돕기도 하고, 밥도 사면서 호감을 얻고, 그러고 나서 자신이 알고 있는 소위 좋은 정보들을 알려주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려 합니다. 


 이런 마당발들과 너무 많이 어울리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는 일정 거리를 두기가 힘들어지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합니다. 다음 험담의 대상은 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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