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그래서 예민한 걸 어떡합니까

처음에는 그저 부담스럽고 달갑지 않게 느껴졌었습니다. 비록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았지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행동이나 말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예의가 없거나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나 자신이 생각하는 어느 선을 쑥쑥 넘어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떤 말을 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생각할까 무의식적으로 먼저 자기 검열을 한 후에야 비로소 반응하는 버릇이 있는 예민한 나에게는 그런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좋아 보일 리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충분히 내가 생각을 하고 반응을 할 여유를 주지 않고, 즉각적으로 나에게 뭔가를 묻거나 부탁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점점 그런 스타일의 사람들이 부러워졌습니다. 남들보다 꽤 효율적으로 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일도, 그리고 과거의 일을 생각하고는 후회를 하는 일도 적어 보였습니다. 


그것은 매우 뛰어난 장점입니다. 같은 시간을 살아도 남들보다 에너지 소묘량이 적어 보입니다. 예민한 사람들처럼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필요 이상으로 자신의 행동을 자책하는데 소모되는 감정과 생각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효과적으로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뜬금없이 과거의 일이 생각날 때마다 자신을 자책하며 에너지를 소모하는 사람들과 비교해서 소위 털털해 보이는 사람들은 매우 효과적인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자신 외에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일조차 다시 회상하고 부끄러워하고, 그걸 굳이 다시 꺼내 들어 괜찮다고 스스로 토닥거리는 예민한 사람들에 비해서 몇 배 더 에너지를 덜 소모하며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에너지의 소비를 오랜 기간 동안 측정한다면 그 양이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살다 보니 사람들은 별로 다른 사람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남들을 의식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통제하려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럴수록 무디고 털털한 사람들이 부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별로 예민하지 않은 사람들은 별로 후회하지 않고 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후회할 일을 많이 만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저 과거의 일에 그냥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냥 몸에 뭍은 먼지나 낙엽을 툭툭 털어 내듯이 본인에게 따라붙은 기억들을 쉽게 털어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해 보이는 것이 신기해 보였습니다.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예민한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은 굳이 그렇게 까지 생각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을 합니다. 누군들 남이 말하듯이 그렇게 피곤하게 살고 싶겠습니까? 그냥 타고난 것이 그런 것이 그런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키가 작은 사람들에게 좀 더 키가 키워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손발이 작은 사람에게 좀 더 크게 만들어 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타고는 성격을 고치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사는데 지장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면 굳이 억지로 다른 사람처럼 되려고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냥 타고난 대로 살면서 다만 좀 더 강점을 더 살릴 수 있는 것이 더 나아 보입니다. 


예민한 성격이 가지는 장점과 혜택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훨씬 섬세하고 용의주도하고 그리고 공감능력도 뛰어납니다. 예민한 감각이 필요한 일들은 얼마든지 있고, 어떤 일을 추진하는데 훨씬 더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것을 떠나서, 성격의 유형에는 우열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저 어떤 상황에 따라 그때 마침 더 유리한 조합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란 수백만 가지의 우연과 만남이 뒤섞인 조합의 연속이고, 그 속에서 자신의 어떤 점들이 자신의 인생을 훌륭한 방향으로 이끄는지는 그것은 신만 아는 것일 겁니다. 


타고난 예민한 성격이 문제가 있으니 고쳐야 한다고 생각은 정답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예민하지 않고 무디고 털털한 사람들이 더 나아 보인다는 것도 주관적 관점에서 일 것입니다오른손잡이가 굳이 왼손잡이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가끔은 왼손도 쓰는 것을 배우려고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그저 버리고 싶은 습관이 있을 뿐입니다. 


예민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본인의 단점으로는 아마 이런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갑작스러운 기억 송환"과 뜬금없는 "자기 질책"의 버릇'입니다.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과거의 일을 갑자기 생각해 내고는 그때 왜 그렇게 했을까 자신에게 질책하는 이 못쓸 습관 말입니다. '내가 왜 그랬지?', '그때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지?', '그때 이렇게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때 그 사람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런 말들을 습관적으로 계속 반복해서 떠올리는 것 말입니다.  


물론 이런 습관이 장점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한 정도가 아니라면 어느 정도 건설적인 자기 성찰이 될 수 있습니다. 좀 더 신중한 판단을 하게 되어 충동적인 결정을 막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던지 좀 더 긍정적인 해석을 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덜 예민하도록 해보자는 이야기는 열정적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고, 대충 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도 아니며, 또한 불필요한 것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내가 잘못된 것이니, 이를 고쳐서 옳고 바른 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더 효율적인 것을 선택하자는 것입니다. 내가 예민한 것을 인정하되, 그것이 틀린 것이 아니고 좀 더 나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새로운 습관에 도전을 해 보자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에는 옳고 그름의 문제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좋던지 덜 좋던지를 선택하는 질문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전 04화 어딜 가도 이상한 사람들은 왜 꼭 있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