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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도 남들 의식해야 하나요?

온 사방에서 힐링이라는 주제의 콘텐츠들이 폭포수처럼 매일 쏟아져 나옵니다. 대형 서점에는 마음을 위로하는 감성 에세이들이 공간 한가운데를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이런 콘텐츠들은 하나같이 제목들이 이렇게 외치는 것 같습니다. "난 너를 위로할 거야. 그러니 어서 날 선택하렴"


너투브에서는 오늘도 대기업 정도는 때려치우고 제주도라도 가야 뭔가 인생의 진리를 깨달을 것 같고, 방방곡곡 맛집에 가서 먹방 정도는 해야 인생의 맛을 누리는 것 같아 보입니다. SNS에서 우리는  매일같이 자신이 얼마나 잘 살고 있지 보려 주려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힐링을 하러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엄청나게 열심히 돈을 모읍니다. 그런 고생한 자신을 힐링하기 위하여 여행을 떠나고, 그리고 다시 돈을 벌기 위해 고생을 합니다. 고생한 나를 위하여 선물을 하고, 그걸 벌기 위해 또 고생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힐링이라는 허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위하여 우리를 오히려 소모하고 있습니다.  


경쟁사회에서 밀리고 상처 받은 우리들이 스스로를 치유하는 방법조차도 남을 의식하여 경쟁적으로 몰입하고 있습니다. 왜 사회는 나를 '획일화된 관습'을 강요하는가 외치면서도, 우리는 획일화된 관종의 관습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힐링도 경쟁적으로 해야 하고, 힐링하는 방법도 유행을 타야 하는 세상, 그걸 만든 건 우리 자신들입니다.  


책과 글도 독자에게 경쟁적으로 이렇게 이야기 하기 시작한 지 오래인 듯합니다. "응 맞아. 모든 것은 너 때문이 아니야. 그러니 지금보다 더욱더 힘차게 힐링을 하렴. 넌 너무 열심히 살 뻔했잖아". 위로를 주는 내용의 책과 글들도 트랜드가 있어 보입니다. 열심히 읽어 보지만, 사실 제목과 표지 외에는 그다지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마치 병원에서 의사가 "스트레스받지 말고 푹 쉬세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 것 같습니다. 마치 나도 아는 이야기를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서 듣는 그런 말 말입니다. 



오래전 제가 어느 기업에 취업 면접을 보러 갔을 때 그곳 사장님이 저한테 스트레스 관리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책을 읽고 내용을 요약해 두는 것이 취미라고 했더니, 그게 무슨 취미냐고 스스트레스를 풀려면 뭘 해야 하는지 설명을 하며 자신의 경험을 면접보다가 말고 말합니다. 그래서 속으로 저는 말했습니다. "제 스트레스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나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 뭔가 남들이 보았을 때도
근사해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을 버리는 것이 어떨까요? 


우리는 남들 의식하며 사니라 스트레스받고서는 다시 그걸 힐링한다고 하면서 남을 의식하는 방식을 따릅니다. 남들보다 더 잘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경쟁하듯이 말이죠. 생각해보니 이런 글을 쓰고 앉아 있는 저도 SNS에는 근사한 사진들만 올려놓고 있었습니다. 어쩌다 한번 하는 것을 마치 늘 누리는 일처럼 보이려고 말이죠. "허세"와 "엿보기"라는 인간의 본능을 정확히 간파한 인별그램의 혜안이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을 치유하는 법을 배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남들이 어떻게 생각을 하던지 의식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꼭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뭔가 의미있는 시간이 되는 것은 아닌지 않을까요? 시간과 기억은 모든 사람에게 지극히 주관적인 것입니다. 내가 만족하고 행복하면 그만인것이지, 남들이 그걸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의식하면서 자신을 진정 평안하게 만들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저는 가끔 힘들고 너무 지친다고 생각할 때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저를 가장 빨리 미소짓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모든 것을 떠나서 나를 가장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히 따져 보았습니다. 뭘 굳이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이 그저 내가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따져보니 하루의 일상중에 그런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처음 마시는 커피의 맛, 뜨거운 물로 하는 샤워, 매일 아침에 일터로 나갈 수 있다는 감사함, 교통사고 후유증이 사라진 아침.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를 미소짓게 만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는 잠든 내 아가의 냄새를 살며시 맡고 있으면 세상 그 어떤 휴양지의 공기보다도 나를 치유하는 듯했습니다. 지금은 다 커버린 아이들이지만 아가 때의 그 냄새는 평생 잊을 수가 없을 듯합니다. 힘들 때마다 아가의 부드러운 머릿결에서 맡던 그 냄새를 떠올리고 그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저를 치유합니다. 이렇게 나만이 나를 치유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늘려 보고 싶습니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이 한 권 두권 책장에 채워질 때 그것들을 만지고 있으면 행복해집니다. 부자가 된 기분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펜으로 쓴 손글씨가 가득 채워진 노트가 하나씩 늘어날 때 마치 명작을 한 권 써낸 사람처럼 뿌듯합니다. 이런 소박한 나만의 루틴이 나를 치유해 나가도록 할 겁니다. 



동네 산책로를 열심히 걷고 뛰는 것으로 나를 치유하려고 합니다. 옷이야 맨날 입고 있는 것이고, 운동화도 마침 있으니 몸만 움직이면 되는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적어 보는 것도 치유가 되는 것 같습니다. 마침 키보드도 있고 노트북도 하나 있네요. 


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나한테 그것들은 꽤 근사한 일들입니다. 그리고 나를 오늘도 치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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