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빨간 쿼카의 병가일지

EP.13- 나는야 황태될 거야~

by 볼 빨간 쿼카
동이 트기 전 하늘 색깔이 예쁘다

새벽 6시, 동이 트기 전 우리는 모여 강릉으로 출발한다. 차가 밀리기 전에. 오늘의 여행 메이트는 아주 오래된 병가메이트이자 에피소드 10에 출연한 친구 C와 전근오기 전 같이 근무했던 친구 D이다. 우리 셋은 전 근무지에 비슷한 시기에 발령받아 같이 근무했고 친구가 되었다. 모이기로 한 장소로 가기 위해 비몽사몽 졸린 눈을 부여잡고 집을 나서는데 1층 공동현관을 나서는 순간 추위에 눈이 번쩍 뜨여 잠이 싹 달아났다. 오늘이 이번 주 중에서 가장 추운 날이다. 꺄, 그나마 강원도라서 따뜻한 것이 최저기온 영하 1도라고 한다. 단단히 입는다고 입었는데 가리지 못한 손과 얼굴이 너무 춥다. 이렇게 까지 추워도 되나? 우리 여행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하며 부랴부랴(라고 하지만 다른 이들의 시선에선 아주 천천히였을 가능성이 높다.) 친구 D의 차를 탄다. 오, 다행히 차 안은 따뜻하다. 엉뜨(차에서 좌석에 온기가 올라오도록 하는 차량기능)를 켜니 얼었던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다. 차가 있을 때 좋은 점은 이럴 때 더욱 느껴진다. 아침부터 서두른 덕분에 밀리지 않고 일찍 도착했다.

고소한 맛이 일품인 초당 순두부

우리의 첫 일정은 아침 겸 점심 먹기다. 메뉴는 강릉에서 유명한 순두부였다. 이전에도 강릉여행을 할 때 와 본 식당을 갔는데 안 와본 사이에 많이 바뀌었다. 줄을 서서 대기하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원격으로 줄서기하는 시스템이 생겼다. 예전에는 대기했다가 들어가서 주문했다면 이제는 원격줄서기할 때 미리 주문해 둔다. 대기하기 위해서 연락처를 입력하고 얼큰한 짬뽕 순두부와 담백한 초당 순두부 중에 고르고 모두부를 더 주문할지 말지 고민하여 대기를 완료했다. 예전보다 찾는 사람이 더 많아진 느낌이다. 우리 앞에 50팀이 대기하고 있던 터라 차에 돌아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대기팀은 많지만 생각보다 순환이 빨리되어 30분 정도 기다리니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테이블이 세팅되고 주문했던 음식이 5분 안에 착착착 나온다.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낸 건지 상상도 안된다. 매운 걸 잘 못 먹기도 하고 담백함을 즐기고 싶었던 나는 초당순두부 백반을 주문했는데 두부 자체로 간이 잘 되어 있어 간장을 뿌리지 않아도 맛있었다. 사이드로 나온 비지찌개도 맛있고, 부추나물도 맛있었다. 오늘 부추로도 나물을 무칠 수 있다는 것과 두부가 엄청 포만감을 주는 음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배가 부른 우리는 근처를 산책하고 다음 일정인 흑임자라떼가 유명한 카페에 가기로 했다. 카페 오픈시간이 11시인데 인기가 많은 카페여서 남은 시간을 산책하다가 11시에 바로 오픈런하기로 했다. 그런데 주변에 어느 곳을 산책해야 할지 잘 몰라서 다음 일정 장소가 근처라고 하기에 우선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산책하며 걷고 있는데 이럴 수가! 10시가 조금 넘었는데 사람들이 벌써 줄을 서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11시에 오픈런하려던 우리는 오픈 전 웨이팅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나와 친구 C는 줄을 서고 친구 D는 식당에 있는 차를 끌고 오기로 했다. 따끈한 순두부를 먹고 추운 길에 서 있자니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하는 황태가 된 느낌이었다. 그래서 친구 C와 함께

“우리 이왕 될 거면, 잘 얼고 잘 녹아서 멋진 황태가 되어보자.”라고 다짐했다.

카페를 기다리며 계단을 스텝박스 삼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몸에 열을 내며 햇빛은 따뜻하지만 바람이 매서운 날씨를 버텨보았다. 혼자였다면 기다리지 못했을 시간과 날씨를 친구들과 함께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보냈다. 우리가 잘 얼었을 때쯤 카페 여는 시간이 되었다. 이제 카페에 들어가 몸을 녹이며 쫄깃쫄깃함을 더할 시간이다. 흑임자라떼 3잔과 밤슈, 옥수수슈를 하나씩 주문하고 자리를 잡았다. 앞에 한옥 식당 기와가 잘 보이는 멋진 뷰였다. 여름에는 한옥의 툇마루에서 착안하여 만든 바깥 공간에서 먹기도 한단다. 지금도 뷰가 참 멋진데 여름에 툇마루에 앉아 먹는 즐거움은 또 다르겠지? 계절이 바뀔 때 다시 한번 와보고 싶은 카페였다. 뷰를 감상하며 있다 보니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이 흑임자라떼를 줄 서서 먹는 걸까. 궁금했던 나는 테이블에 쟁반을 놓고 앉아 흑임자라떼를 요리조리 살펴본 후에 한 모금 바로 마셔보았다. 오! 눈이 반짝 뜨이는 맛이다! 이 눈이 반짝하는 맛은 뭐지? 다시 한번 라떼를 관찰해 보았다. 위에 설탕이 반쯤 녹은 알갱이와 갈색으로 녹아내린 설탕들이 보인다. 오! 위에 아마도 토치로 녹였을 설탕층이 눈을 반짝하게 만드는듯하다. 흑임자크림은 고소한 맛을 가득 담고 단 맛은 설탕층으로 내서 중간엔 고소한 맛, 마지막엔 단 맛을 맛보며 눈이 반짝! 하고 떠진다. 다른 곳에서 맛봤던 흑임자라떼와 다르다.

우리 모두가 찍는 흑임자라떼 ㅎ.ㅎ

“기다린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라고 친구들과 만족하며 흑임자라떼와 슈를 먹었다.

이후 일정은 숙소 체크인을 하기 전까진 특별히 없었는데 날이 추워 근처 온천에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바닷가 근처에 잠시 주차하며 바다를 잠시 구경하며 5분 얼렸다 차에서 녹이기를 반복했다. 이렇게 여러 번 얼고 녹다니 멋진 황태가 될 것이 분명하다. 온천에서도 멋진 황태되기는 멈추지 않았다. 온탕에 들어가 몸을 녹였다가 냉탕에 가서 다시 몸을 얼리고 다시 온탕에 가고를 반복하며 온천을 즐겼다. 냉탕 온도는 20도였는데 바깥에 있을 때보다 훨씬 따뜻한 온도였다. 물론 온탕에 들어갔다 들어가면 좀 추웠지만, 온탕에만 있으면 얼굴에도 열이 올라 힘든 나에게는 온탕, 냉탕을 반복하는 것이 훨씬 좋았다. 온천을 하고 단지 바나나우유를 먹고 싶었는데 다 품절됐다고 한다. 안타까워라.

온천욕으로 뽀얘진 우리들은 이제 숙소 체크인을 하기로 했다. 숙소는 시골 할머니댁에 놀러 온 느낌이 나는 정겨운 숙소였다. 다만, 화장실이 조금 추웠는데 우리는 온천에서 씻고 와서 다행이라며 우리의 완벽한 일정에 감탄했다 ㅎㅎ. 저녁 먹기까지 1시간 30분 정도는 자유시간을 갖기로 했는데 친구 C와 나는 조금 자기로 했고 친구 D는 처리할 일이 있어 카페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누웠는데 생각보다 잠이 안 와서 브런치 글을 썼다. 위에 첫 번째 문단은 저녁 먹기 전에 쓴 글이다. 글을 쓰다 보니 저절로 눈이 감겨서 첫 번째 문단을 마무리하고 정말 무아지경으로 잠들었다. 친구 C가 깨워주지 않았다면 나는 내일까지 계속 잤을 것 같다. 간신히 일어나서 저녁을 먹고 바닷가를 산책하며 다시 몸을 얼리고 숙소에 돌아와 지글지글한 바닥에 몸을 녹였다. 돌아오는 길에 지역 막걸리인 ‘강릉 막걸리’를 사 온 우리는 강릉 막걸리의 매력에 빠졌고 적당히 마시며 시답잖은 소리도 하고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 C와 말도 안 되는 영어로 대화도 하고 웃겼다. 그러다 잠시 술 깰 겸 밤바다 산책을 나가고(우리 숙소의 가장 좋은 점은 바다가 정말 걸어서 2분 거리라는 것이다.) 잠옷 패션인지라 조금은 이상했을 옷을 입고 사진을 찍으며 우리끼리 낄낄거렸다. 날씨가 추워서 잠도 깨고 술도 깨고 몸이 얼 때쯤 부랴부랴 숙소로 돌아왔다. 우리를 반기는 지글지글한 바닥, 행복하다.

황태가 되기 위한 오늘의 마지막 얼림, 밤산책

이렇게 행복하게 즐겁게 얼었다 녹으며 황태의 삶을 간접체험한 우리는 내일은 텔레비전에 많이 나오는 머슬비치가 가까이 있으니 아침 산책 겸 그곳에 가보기로 하고 누웠다. 할머니댁 같은 지글지글 끓는 방이 인상적인 우리 숙소는 불을 끄면 완벽한 암막이 되는데 그래서인지 정말 푹 자고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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