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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 빨간 쿼카 Dec 22. 2023

볼 빨간 쿼카의 병가일지

EP.19- 따뜻하게 입는 법을 잊어버렸어!

‘따뜻하게 입는다고 입었는데 추워!!’

친구 G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 내가 밖에 나오자마자 한 생각이다. 어제 미세먼지가 끼고 밤에 비(어떤 곳은 우박이었다고 한다.)가 잠시 내리더니 기온이 급격히 내려갔다. 일기예보에서도 오늘부터 한파일 것이라 이야기하고 재난 문자에서도 길이 얼어있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알려준다. 이런 사실을 다 알고 나름 따뜻하게 입는다고 챙겨 입었는데 춥다. 싸매지 못한 곳들에 추위가 몰려온다. 그곳들로부터 한기가 몸속으로 들어온다. 약속장소까지 걸어갈까 생각했던 나는 바로 마음을 바꿔 대중교통을 타기로 했다. 부랴부랴 버스에 타니 그래도 몸이 좀 녹는다. 지난주 토요일에 한파가 온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다시 한파라니! 슬프다. 하지만 또 절기상 입동이 지났으니 이렇게 추운 것이 맞는 건가 싶기도 하다. 친구 G가 만날 장소를 실내로 제안한 덕분에 버스에 내려서 G를 만나기 전까지 밖에서 기다리지 않고 안에서 따뜻하게 기다릴 수 있었다. 기다리는 중에 내 앞에 걷기 시작한 지 몇 개월 안 된 것 같은 어떤 아이가 천천히 자기 속도에 맞춰 걸어내고 있기에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때 주변에서

“쿼카, 쿼카~”

라는 소리가 들려 아이의 가족이 아이를 부르는 줄 알고 저 아이 이름도 나와 같은 ‘쿼카’인 줄 알고 신기해하며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G가 나타났다. 아이의 가족이 아니라 G가 나를 부른 것이었다. G에게 저 아이 이름이 ‘쿼카‘인 줄 알고 신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며 웃었다. G와 나는 2023년 8월 어느 날에 교육지원청에서 운영하는 집단상담프로그램에서 만났다. 그 프로그램에서 만난 동료들을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은 만나는데, G와는 근무하는 지역이 같아 이번에 따로도 만나게 됐다. 이렇게 인연이 이어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남들의 장점을 잘 찾아주고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어주는 G를 알게 되고 인연이 이어져서 좋다.

G와 함께 이 근처에서 무엇을 하고 놀아볼까 생각하며 길을 걷는데 정말 정말 추웠다. G가

“그런데 작년에 최저 기온이 이 것보다 한참 낮았잖아? 그때는 어떻게 옷을 입었는지 모르겠어. 지금 이렇게 입어도 추운데.”

“맞아. 따뜻하게 입는 법 잊어버렸는데 어떡하지?”

지금이 따뜻하게 입는다고 입은 건데 더 추워지면 어떻게 입어야 할지 정말 암담하다. 우선은 싸매지 못했던 곳들(귀, 손)을 싸맬 아이템을 찾아봐야겠다.

약속장소는 G가 놀러 가고 싶다고 해서 왔는데 G는 이미 이곳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가고 싶은 식당도 추려왔다. 정말 정보력이 엄청났다. G가 유명하다고 알려준 베이글 집에서 간단히 베이글을 맛보고 솥밥으로 유명한 가게에 갔다. 어떤 솥밥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나는 집에서 잘해 먹을 수 없는 ‘도미 관자 솥밥’을 시키기로 했고, G는 이곳에서 도미 관자 솥밥을 많이 시킨다는 정보를 파악하여 ‘도미 관자 솥밥’을 시키기로 했다. 한상차림으로 나온 솥밥은 먹음직해 보였다. 도미 관자의 조합도 새로웠고, 솥밥에 그냥 따뜻한 물이 아닌 간이 된 육수를 넣어 숭늉을 만드는 것도 새로웠다. 건강한 밥을 먹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따뜻한 음식을 먹으니 속부터 따뜻해져서 밖에 나와도 좀 덜 추웠다.

배가 불러 근처를 산책하며 G가 소개해주는 맛있는 빵집, 쿠키가 맛있는 집을 구경했다. 이렇게 이곳을 잘 알고 있다니! 나도 나름 이곳을 많이 와봤다고 생각했는데 소개해줄 수 있는 것이 마땅치 않다. 즉흥적으로 다녀서 그런가. 무튼, G 선정 맛집들을 구경하며 다음에 와보고 싶은 곳들도 고르며 춥지만 춥지 않게 산책했다. 특히나 G가 소개해준 쿠키 맛집은 쿠키향으로 가득하고 오븐의 훈기가 느껴져 구경만 해도 행복함이 올라오는 곳이었다. G는 이곳 쿠키향 향수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며 이곳에 대한 애정을 듬뿍 느껴지게 말했다. 근처에 내가 좋아하는 빈티지 옷가게가 있어 그곳에도 들렀다. 사장님이 내가 지난번에 찾던 옷이 들어왔다고 연락을 주신 참이어서 그 옷도 구경할 겸 들렀다. 지난번에 사장님이 입은 티가 너무 예뻐 비슷한 것 들어오면 연락 달라고 했는데 새로 들어온 옷도 참 마음에 들어 바로 구매했다. 이곳에 있는 가게들은 사장님들의 애정과 진심이 느껴져서 좋다. 맞은편에 있는 카페에 가서 차를 한 잔 하며 G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맞은편 옷가게 안이 보여 다른 사람들은 어떤 제품을 사는지 구경하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집으로 갈 때에는 몸이 따뜻해져서 걸어가기로 했다. 걸어가는 길에 있는 가게들도 G가 소개해줘서 그냥 걸을 때보다 더 즐겁게 걸었다. G보다 내가 더 잘 구경하고 놀았다. 신기한 인연에서 편안해지는 관계가 되는 이 순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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